과메기 문화관 부근의 카페로 다시 돌아가는 길입니다.
문화관 부근 집들마다 담벼락에 그려진 벽화가 산뜻했습니다.
따뜻한 햇살이 마구 쏟아져 들어오는 창가가 그리워졌습니다.
그래서 이층으로 올라갔습니다만....
내가 자리에 앉고 얼마 되지 않아 이 카페의 단골인듯한 할머니들이 들어왔습니다.
그러더니 이내 큰 소리를 수다를 떨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재빨리 자리를 비켜주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겠다 싶었습니다.
일층에 쫓겨(?) 내려와 창가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렇게 커피 한잔의 여유를 즐긴 뒤 골목으로 나갔습니다.
이젠 아래 세계로 내려가야지요.
내가 다시 걸어야할 골목을 미리 살펴두었습니다.
아까 골목의 반 정도는 미리 살펴보았기에 이번에는 조금만 더 보면 될 것 같습니다.
항구가 발밑에 보입니다.
천천히 걸어내려갑니다.
아이의 모습에서 아련한 그리움이 묻어나네요.
계단길을 보니 신사(神社)로 오르는 길임이 확실합니다.
왜인들 냄새가 물씬 풍겨났습니다.
한때는 이 거리를 왜인들이 활개치며 다녔을 겁니다.
나는 다시 한번 더 골목 탐방에 나섰습니다.
게이샤 커피?
게이샤 커피는 일본 기생 커피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게이샤 커피는 명품 커피로 입소문이 자자하죠.
사람들이 몰려오니 골목에 생기가 살아나면서 다시 부활한 듯합니다.
젊은이들이 제법 보입니다.
어디가서 점심을 먹어야 할 터인데 말이죠.
사람이 많이 몰리는 곳은 싫었습니다. 싫었다기보다 제가 의식적으로 피했다고 하는 게 맞는 말이겠지요.
손님이 뜸한 현지인 식당에 가서 쇠고기 국밥을 먹었습니다.
그런 뒤에 다시 한번 더 골목 구경에 나섰습니다.
자전거는 한쪽 구석에다가 세워두었습니다.
여기 집들은 모두들 어지간하면 이층집이더군요.
벽을 보면 왜식인지 아닌지 쉽게 구별할 수 있습니다.
창문도 쉽게 구별할 수 있는 기준이 됩니다.
이런 가옥의 주인은 물어보지 않아도 일본인들이었습니다.
나는 요즘 바다 건너 섬에 사는 그들을 왜인들이라고 불러주고 있습니다.
한때는 그들과 화해하고 용서해주며 약간은 잘 지낼 수 있겠다 싶었지만 이젠 그런 희망을 버렸습니다.
혐한에 찌든 그들을 상대할 필요가 없겠다 싶습니다.
이런 왜색 건물은 아예 헐어버리면 좋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역사의 아픈 기억을 위해서라도 보존해두어야 한다고 봅니다.
우리 젊은이들을 위해서 말입니다.
제가 어렸을 땐 일본말을 참 많이 사용했습니다.
도시락이라는 말보다는 벤또라는 일본말을 더 많이 사용할 정도였습니다. 학창 시절에만 해도 언제 이런 왜놈 말들이 다 사라질까 하고 염려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사는 지방 사람들 모두가 토착 왜구로 취급받고 있더군요. 그런 식으로 편 가르기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 구역질이 납니다.
"여명의 눈동자"! 워낙 드라마를 보지 않는 편이니 어떤 드라마였는지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제 평생에 드라마를 끝까지 본 것은 세편 정도에 지나지 않습니다.
"동백꽃 필 무렵"이라는 드라마도 있었던가 봅니다.
그런 드라마가 방영된 것이 불과 일 년 반 전의 일이었던가 보네요.
이 건물은 한때 이발소였던가 봅니다.
내가 사는 동네에서도 이발소가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대게가 들어오는 곳이 구룡포라는 말이 있더군요.
옷을 빌려 입는데 저 정도의 금액이 필요하군요.
골목 안에서 햇살이 점점 사라져 가고 있었습니다.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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