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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여행 - 과메기의 본고장 구룡포를 가다 3

by 깜쌤 2021. 3. 9.

구룡포는 산비탈 바로 밑에 자리 잡은 어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산등성이에는 채소를 붙여먹을 수 있는 작은 텃밭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었습니다. 

 

 

 

 

골목을 깨끗이하고자 하는 흔적이 보입니다만.....

 

 

 

 

주민들의 협조가 더 많이 필요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산비탈에 붙어있다시피하여 모여있는 골목을 오르자 항구가 더 자세한 모습을 드러냅니다. 

 

 

 

 

빈집도 제법 보이네요.

 

 

 

 

여긴 예전에 담배가게였던가 봅니다. 

 

 

 

 

비닐 조각들이 어지러이 흩어져 있는 모습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우리들 의식 개혁이 더 필요한 듯합니다. 

 

 

 

 

낮은 주택가 너머로 현대식 건물이 자태를 드러냈습니다. 

 

 

 

 

언덕 위에는 예배당도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어촌은 원래부터 미신이 심한 곳인데 말이죠.

 

 

 

 

언덕 위에 오르자 바다가 확 다가왔습니다. 

 

 

 

 

새로운 신시가지를 조성하는 것일까요?

 

 

 

 

호미곶 방향입니다. 다음에는 저쪽 바닷가를 달려봐야 하는데 말입니다. 

 

 

 

 

구룡포 과메기 문화관 건물이네요.

 

 

 

 

출입문이 이쪽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아래로 내려가버렸습니다. 

 

 

 

 

1층에 입구가 있는 것으로 잘못 알았던 것이죠.

 

 

 

 

1층과 2층은 출입제한 구역이었습니다. 

 

 

 

 

헛걸음한 셈이 되었네요.

 

 

 

 

다시 아까 왔던 곳으로 돌아갔습니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출입구를 한 곳으로 통일시켜두었던가 보네요.

 

 

 

 

직원들은 친절했습니다. 

 

 

 

 

과메기 문화관이니 살짝 기대가 되었습니다만....

 

 

 

 

주제에 비해 관련 연구시설이나 안내는 조금 미흡한 듯했습니다. 

 

 

 

 

창틀 너머로 바다가 보입니다. 

 

 

 

 

터치 이라고 했으니 물고기들을 만져볼 수 있는가 봅니다. 

 

 

 

 

작은 녀석들이니 손을 넣어도 될 것입니다만 아래 사진에 보이는 녀석들은 위험할 것입니다. 

 

 

 

 

바로 이 녀석들입니다. 

 

 

 

 

몇년 전 방사능 물질 폐기장 시설에서 이녀석들에게 호되게 당한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손가락을 물려서 피를 흘려본 학습 경험이 축적되어 있었으니 망정이지 아니면 멋도 모르고 만지려고 시도할 뻔했습니다. 

 

 

 

 

학생들이나 아이들이 보면 좋아하지 싶습니다. 

 

 

 

 

바닷물 속에 잠수한듯한 느낌이 들도록 해두었습니다. 

 

 

 

 

시설에 비해 전시내용이 빈약하다는 느낌이 들었던게 아쉬웠습니다. 

 

 

 

 

아이들 입장에서 보면 다른 느낌이 들겠지만 말입니다.

 

 

 

 

구룡포 마을에 대한 안내가 시작되었네요.

 

 

 

 

나야 뭐 이런 전설을 잘 믿지 않는 사람이니 그냥 쓰윽 보고 넘어갑니다. 

 

 

 

 

다음 기회에는 호미곶을 자전거로 한바퀴 돌아야겠습니다. 

 

 

 

 

그런 곳도 있다는 말이지요?

 

 

 

 

구룡포의 역사가 소개되고 있었습니다. 

 

 

 

 

고래 사체 크기가 엄청 났었던가 봅니다. 

 

 

 

 

하여튼 구룡포는 왜정시대때 어업의 전진기지로 상당히 유용했다는데 왜인들에게는 일확천금을 할 수 있는 곳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 한국인들에게는 악몽 같은 시절이었겠지요.

 

 

 

 

이런 교련복이 생활복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우리들의 학창시절이 바로 그랬었습니다. 주로 1970년대였었지요.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