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양반이 입을 열어 말만하면 표가 우수수 떨어져 나간다는 집권 여당의 간판 누구누구씨가 최근들어서는 너무너무 고마워졌습니다.
그 양반과 무슨 감정이 있느냐고요? 정치 이야기는 거의 입에 안 담고 사는 사람이 바로 저같은 사람인데 무슨 감정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왜 고마워하느냐고요? 그 양반 덕분에 선생들 정년이 3년이나 앞당겨졌고, 또 비슷한 부류의 몇몇분 덕택에 개돼지 붕어 가재같은 무지렁이 삼류 따라지 인생이 은퇴생활을 조금 더 일찍 누리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요즘 개학없는 영구적인 방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위에서 언급했던 그 양반이 추진했던 개정된 법에 의해 나는 그 분들이 정한 정년보다 3년 일찍 현장에서 뛰쳐나왔습니다.
정년을 앞당기지 않았더라면 지난달 말에야 겨우 은퇴를 할 수 있었을 겁니다.
명예퇴직으로 인한 조기 은퇴후 수입이야 절반 밑으로 줄었지만 퇴직금을 포기하고 연금생활을 하는 중이니, 어찌보면 나같은 사람은 정말 별볼일 없는 사람이기도 하지요.
오해를 막기 위해서 한마디 해두는데요, 공무원이나 교사는 연금을 선택하면 퇴직금을 포기해야 합니다. 어떤 이들은 퇴직금도 받고 연금도 받는 것으로 오해를 하시기도 합디다만, 우리 나라가 퇴직자들에게 퇴직금도 챙겨주고 연금도 줄 정도로 돈많은 국가는 분명 아닐 것입니다.
물론 연금을 받기 위해서는 세부적인 조건에 동의해야만 합니다. 저는 퇴직금 전액을 포기하고 연금을 받기로 했습니다. 계산을 해보니까 퇴직후 연금을 받아가며 무조건 십년 이상을 살아주어야만 포기했던 제 퇴직금을 거의 찾아 먹는 셈이 되더군요.
그러니까 저는 지금 제 퇴직금을 연금으로 받고 있는 중입니다. 이런 사실을 잘 모르시는 분들은 연금생활자를 보고 엄청 흉을 보더라고요.
저는 젊었던 날, 첫달 월급부터 봉급의 7% 이상을 퇴직금으로 떼였습니다. 그때는 규정이 그랬으니까 넣고말고할 여지가 없었습니다.
이동네에서 결혼 전까지 하숙생활을 했었습니다.
예배당이 보입니다. 그때는 당연히 신앙생활을 하지 않았었지요.
시내에서 자전거를 타고 이 동네까지 슬금슬금 찾아갔었습니다. 영구 방학중이니 시간이 남아돌았기 때문입니다.
이 장소에 학교가 있었습니다만 건물은 다 사라지고 다른 시설로 바뀌어져 있었습니다.
처음 학교에 발을 내디딘 이후로부터 수십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제 머리에도 서리가 하얗게 내렸네요.
참으로 여러 면에서 정말 많이 부족한 제가 크리스찬으로 바뀐지 33년이 지났으니 새생활을 시작하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지요. 요즘은 신천지때문에 정상적인 신앙인들조차 욕을 얻어먹는 세상이 되었으니 너무 송구스럽고 부끄럽습니다.
이 저수지에서도 2월 하순에 얼음낚시를 하려다가 죽을 뻔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게 총각 시절에 있었던 이야기죠. 그 땐 2월 중순에도 저수지에 얼음이 꽝꽝 얼었었습니다. 삼한사온이 엄격하게 잘 작동되던 시절이었으니 가능한 일이었겠지요.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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