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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살이/옛날의 금잔디 Long Long Ago (고향)

영원히 사라져버린 내성천 상류의 풍광을 그리워하며 2

by 깜쌤 2019. 12. 18.


이 사진들은 2010년 5월 6일, 무섬마을에서부터 평은역으로 걸어가며 찍었던 사진들입니다.



그때쯤엔 영주댐 공사가 확정되어 강변의 나무들을 베어내던 때였지 싶습니다.



강변가의 밭에서 일하시던 농부의 등어리에 깊은 슬픔이 배여있는듯 합니다.



금광2리 금강마을 옆자락으로 이어지는 산길에는 다시는 못돌아올 길처럼 슬픔이 내려앉아 있었습니다.


  

그때, 세계적인 절경 가운데 하나가 사라져간다는 것을 깨달았어야하는데 저부터도 미련했기에 깨닫지를 못했습니다.



동강에 댐을 건설하겠다는 계획은 불화같은 반대여론 때문에 무산되지 않았습니까?



조직적으로 저항하지 못했던 것이 아직도 후회스럽습니다.



 내성천 상류가 동강보다 못한 것이 무엇하나 있던가요?



우리 모두가 깨닫지를 못했던 겁니다.



이제와서 돌이켜 생각해보면 아쉽고 원통할 뿐입니다.



개발론자들의 눈에는 이런 모래가 돈으로만 보일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낙원같은 풍경을 우리의 어리석음으로 사라지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 이들의 미래를 내다볼 줄 아는 수자원의 중요성을 이야기합니다. 


 

맞습니다. 저도 그런 것 정도는 환하게 아는 사람입니다.



사라지는 곳이 아프지 않은 데가 어디 있겠습니까만 문제는 입지 선정일 겁니다. 


 

없애놓고 보니 더더욱 아쉬워지는 곳이죠. 


 

제가 지금 소개하는 곳은 사라진 절경 가운데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지도를 가지고 확인해보면 알겠지만 여긴 물줄기가 몇번이나 구비구비 감돌아나가는 곳입니다.



내성천에는 그런 곳이 여기 뿐일겁니다.



회룡포도 있지 않느냐고 강변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거긴 구비가 한두곳 뿐입니다.



그런 것으로 입씨름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입씨름은 절대 사절합니다.



다 끝나버린 일인데요....



나는 다만 기록으로 남겨 후세사람들이 판단해주기를 기다릴 뿐입니다.



누가 잘하고 잘못했는지 판단 자료로 남겨놓는 것 뿐입니다.



이런 풍광을 우리가 물속에 묻었노라고 증거를 제시하는 것 뿐이죠.



1960년대 중반에는 여기까지 은어가 올라왔습니다.



자라도 살았고 잉어도 있었으며 징거미 새우와 가재도 가득했습니다.



도랑에는 민물 새우도 가득하게 살았습니다.



평은역 모습입니다.



물론 이 기차역도 물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제 블로그 (고향) 옛날의 금잔디 라는 카테고리에 철거되는 평은역 모습도 남겨두었습니다.



다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습니다.



일제 강점기 말, 중앙선이 만들어질 때 평은역도 만들어졌습니다.



당시 금강마을과 구마이 동네에 살았던 선조들은 내성천 가의 옥토가 사라지는 것을 슬퍼하셨지 싶습니다.



어쩌면 몇몇 분들은 철로 건설을 반대하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철도를 건설하는 것과 댐을 건설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라고 봅니다.



한일 시멘트 공장이 있던 터에는 구마이(=구만이) 마을이 있었습니다. 철도관사도 같이 있었지만 말끔하게 다 사라져갔습니다.



이사를 간 뒤에 기억에서 사라지기전에 그림 지도를 그려놓았던 것이 남아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때의 일이었습니다.



나는 구마이 마을 고개를 넘어 정상 부근에서 기프실(=깊은실) 마을을 살폈습니다. 이 마을도 물속으로 사라져들어갔습니다.



평은초등학교(=평은국민학교)도, 평은우체국도, 평은면사무소도, 평은지서도, 기프실 마을에 몰려있었습니다.



그렇게 덧없는 꿈처럼 사라져간 것이죠. 모든게 꿈인듯 합니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