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깜쌤의 세상사는 이야기 : '난 젊어봤다' - 자유 배낭여행, 교육, 휘게 hygge, 믿음, 그리고 Cogito, Facio ergo sum
  • 인생 - 그리 허무한게 아니었어요. 살만했어요
배낭여행기/19 유럽-동남부:발칸반도 여러나라(完

두브로브니크 샅샅이 뒤지기 3

by 깜쌤 2019. 10. 8.


자, 이제 그 유명한 올드타운 안으로 들어가는 거야. 예전에는 다리 밑에 물을 채운 해자가 있었어. 저 성문을 필레 게이트라고 부르는데 두브로브니크 올드타운 관광의 시작점이고 종점 구실을 하지.



견학을 마치고 나오는 초등학교 아이들이 재잘거리며 우리 곁을 스쳐 지나갔어. 아이들은 그저 귀여워. 성문 부근에는 관광안내소도 있고 시내버스 정류장도 있지. 당연히 관광버스 주차장도 있고 말이야.



필레 문으로 들어가는 짧은 다리 위에서 바다쪽을 본 모습이야. 지금은 나무가 자라고 있지만 예전에는 바닷물이 채워져 있었을거야. 이런 곳이 해자 구실을 했었지.




성문 모습이 특이하지? 성문에 걸린 이런 다리를 도개교라고 해. 성안에서 도르래 시설을 이용해서 다리를 들었다가 내렸다가 하는 것이지.




성에서는 일정한 시간에 성문을 닫고 외적들로부터의 침입을 막기 위해 도개교까지 들어 올려버렸어. 그 시각을 알리기 위해 종을 울리기도 하고 북을 치기도 했어. 종을 매달아둔 건물을 중국에서는 종루라고 불렀고 큰 북을 걸어둔 건물을 고루라고 불렀어. 


  

서양이나 동양이나 성벽은 두텁게 하는 것을 기본으로 했고 성문 구조는 복잡하게 만들어서 공격해온 적군들이 쉽게 성내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설계를 했다는 것쯤은 상식으로 알고 있겠지? 여기도 예외가 될 수 없었지. 


 

필레문을 들어서면 앞으로 쭉 뻗은 도로가 보일거야. 성안에는 차량 통행이 금지되어 있어서 보행자들의 천국이라고 볼 수 있어.



쭉 뻗어있는 그 거리를 스트라둔이라고 부르는데 베네치아 말로 '큰 거리'라는 의미를 지녔다고 해.



스트라둔 스트리트는 서쪽의 필레 문과 동쪽의 루사 광장사이를 연결하고 있는데 길이가 292 미터 정도 된다고 해.  



필레문을 들어서면 둥근 지붕을 지닌 구조물을 만날 수 있는데 영어로는 '유대인(=유태인)의 샘'이라는 의미를 지닌 Jewish fountain이라고 불러.



사람 얼굴 형상의 조각물에 수도꼭지를 박아두어서 물이 흐르게 해두었어.




오노프리오 분수라고도 하지. 성안 주민들에게 식수 공급을 위해 서기 1440 년에 만들었다고 해.



현지인들은 Onorfijeva fontana(오노프리예바 폰타나) 정도로 발음한다고 해.



우리는 돌아올 때 스트라둔 스트리트를 걸어보기로 하고 일단 옆으로 새기로 했어. 골목 구경을 해야 직성이 풀리기 때문이지. 


 

이런 데서는 길을 잃어주는게 도시에 대한 예의일지도 몰라.



도시 분위기를 살피는데 골목 탐방보다 더 재미있는 일이 있을까?



비가 오락가락해서 그런지 사람들마다 우비를 꺼내입었고 손에는 우산을 들었어.



대리석을 깐 바닥이 비에 젖어 반들거렸어.



별별 가게가 다 있더라고. 이 나이에도 캔디 가게에 눈길이 가는 것을 보면 단것에 대한 본능을 아직도 가지고 있다는 말인가봐.



누가 현지인이고 누가 관광객인지 구별할 길이 없었어.



골목에서 예배당을 발견했어.



안들어가볼 수 있겠어? 실내는 작아서 아담 사이즈 정도였지만 단정하고 아름다웠어.


 

잠시 머물렀다가 손바닥만한 마당으로 돌아나왔지.



 야옹이 두마리가 우릴 배웅해주더라고.



고양이들의 배웅 인사를 무시할 수 없어서 다시 한번 더 뒤돌아본 거야. 예배당 모습이 꽤나 정갈했어.



전봇대가 없으니 골목이 얼마나 깔끔한지 모르겠어.



비오는 날이어서 그랬을까? 가게 안내를 겸한 가로등을 켜둔 가게들이 제법 있었어.



"이제 크리스마스까지는 단지 223일 밖에 남지 않았어요"

이런 가게에서는 일년 내내 성탄절 용품들을 파는 것 같았어. 기발한 상술이지.





성안에는 전통 시장도 있어. 군둘리치 재래시장일 거야.



그렇다면 두브로브니크 성당이 가깝다는 말이겠지.




시장 부근을 벗어나서 살짝 높은 지대로 올라가보았어. 뒤로 보이는 산이 스르지 산이야.




내 예상대로 성당이 나타났어.



성 안에는 성당이 하나만 있는게 아니야. 성당 앞에 너른 광장이 있더라고.



성당 맞은 편 카페에는 비가 와서 그런지 손님들이 많지 않았어.



우린 계단 부근에서 이른 점심을 먹었어. 아까 캔디가게 부근 피자 가게에서 피자 한조각을 30쿠나 주고 사서 작은 배낭에 넣어왔었거든. 30쿠나면 우리 돈으로 5,400원 정도야. 이 정도면 비싼 거지.



그런 뒤에는 다시 골목구경에 나섰어. 길을 못찾은들 관계 없어. 좁은 성 안이니까 헤맨들 얼마나 헤매겠어?



성안은 돌 천지야. 건물도 돌이고 바닥도 눈에 보이는 사방이 돌이잖아? 거기다가 돌머리를 가진 나까지 더 보탰으니 완전 돌판인 거지.



 돌 골목 돌 계단 한구석에서 레이스를 팔고 있었어. 내가 더 젊었더라면 관심을 가질 수도 있었겠지.



"가장 멋진 경치를 보며 차가운 음료 한잔 어때요?"  유혹적인 문구에 끌려 골목으로 끌려 걸어가다가 돌아섰어.



 

참 매혹적인 문장이었지만 이젠 그런 유혹을 이겨낼 수 있는 나이가 된 거야.



 


이런 골목으로 이루어진 시가지는 요새나 다름 없어.




 

사방이 그런 식으로 이어져있었어.



베네치아보다 더 교묘하게 만들어진 것 같았어.



여기도 한때는 베네치아 공화국의 해외기지 역할을 했었어. 말이 났으니 말인데 중세 베네치아 공화국의 위력은 어마어마했다고 봐야해. 그냥 단순한 도시국가가 아니었던 거야.



베네치아는 언론과 출판 및 종교의 자유가 완벽하게 보장되어 있던 중세판 싱가포르였다고 보면 돼. 싱가포르가 중국이나 인도와 전쟁하면 승리할 수 있겠어? 약간 과장해서 말한다면 그런 무지막지한 일을 벌일 줄 알았던 나라가 베네치아였던 거지.



근거가 있는 이야기냐고? 인구 14만 정도의 해상 도시 공화국 베네치아가 당시에 벌써 인구 2천5백만 이상을 자랑하던 거대 영토형 국가인 오스만 투르크와 몇 차례나 전쟁을 벌인 사실이 분명히 있지.   



비록 에스파니아(신성 로마 제국)와 연합하여 벌인 전쟁이긴 했었지만, 임진왜란 발발 21년 전인 1571년에 레판토 해전에서 오스만 투르크 해군에게 완벽한 승리를 거둔 사실은 너무나 유명하잖아?



당시 두브로브니크는 라구사 공화국이라는 이름을 지닌 상업도시국가였는데 오스만 투르크 제국에 연공금을 바치면서 상업의 자유를 보장받고 그 터전 위에서 번영을 누렸던 거야.



이런 거대한 구조물을 남길 수 있었던 데에는 그런 역사적인 배경이 깔려있다는 사실을 놓치면 안되지 싶어. 우린 다시 거대한 건물 앞으로 나왔어.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