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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18 일본 자전거 여행-간사이(完)

교토 뒤지기 - 동지사대학 가는 길

by 깜쌤 2019. 2. 8.


애국시인 윤동주를 모르는 사람이 있으랴? 교토까지 왔으니 윤동주시인이 대학을 다녔던 교정을 꼭 가보고 싶었다. 대학교에 찾아가서 윤동주 시비를 확인해보는 것은 한국인으로서의 의무로 여겨졌다. 윤동주라는 이름을 처음 듣는다고? 서시라는 시로 유명한 분이다. 




서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 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지도로 확인해보았을땐 그냥 직진만 하면 되었는데 어디선가 길을 잘못 들었던게 틀림없다. ㄱ사장이 방향을 확인해보더니 우리가 목표지점에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다고 했다. 나한테 주어진 길을 부지런히 자전거 타고 달려가야하는데.....



기억을 더듬어 되돌아섰다. 그리고 정확한 방향을 찾아나섰다. 아래 지도를 보기로 하자. 지도를 클릭하면 확대된 모습으로 다시 뜨게 된다.  




1 - 청수사 (=기요미즈데라)

2 - 남선사 (=난센지)

3 - 철학의 길

4 - 은각사

5 - 어소 (일왕이 살던 곳)

6 - 동지사대학 (=도시샤 대학, 윤동주정지용 시인이 다닌 대학)

7 - 금각사

8 - 용안사 (=료안지, 가레산스이로 유명한 곳)

9 - 니죠성 ( 에도 막부 당시 쇼군이 교토에 왔을 때 잠시 머무르던 곳)



위 지도를 가만히 살펴보면 은각사에서 도시샤(동지사대학)가는 길은 직선이나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실수를 해버렸으니 이 정도가 되면 길치나 마찬가지다. 이제는 폐선이 되어버린 철도 옆을 지났다.



느닷없이 우리 앞에 나타난 것은 커다란 신사였다. 앞쪽에는 신사 입구가 맞은 편에는 거대한 도리가 보인다. 알고보니 거기가 헤이안 신궁(平安神宮)이었다. 헤이안 신궁은 1895년 교토(=헤이안)천도

1,100주년을 기념해 만들었다고 한다. 역사는 비록 긴 편이 아니지만 교토를 수호한다는 5대 신사로 자리매김하고 있단다.   



정상적인 길을 찾았더라면 우리들은 헤이안 신궁 너머 위, 북쪽 도로를 달려야 했지만 아래 남쪽 도로로 나와버린 것이다.  



헤이안 신궁은 일왕 간무를 모신 곳이라고 전한다. 인터넷에서 일왕 간무에 대한 자료를 찾아와서 인용해보았다. 일본인들은 천황(=덴노)이라는 표현을 고집하지만 그건 그들 생각이고 나는 고집스레 일왕이라고 불러준다. 평소에 느끼는 기분같아서는 왜왕이라고 불러주고 싶지만 그래도 조금은 더 참고 있으련다.



자료의 출처 :  위키백과 https://ko.wikipedia.org/wiki/%EA%B0%84%EB%AC%B4_%EC%B2%9C%ED%99%A9



간무 천황( 桓武天皇 (かんむてんのう),  737년 ~ 806년 음력 3월 17일 (양력 4월 9일), 재위: 781년~806년)은 일본의 제50대 천황이다. 고닌 천황백제인의 후손 다카노노 니이가사(高野 新笠)의 아들이다.

794년 도읍을 나라(奈良)에서 헤이안쿄로 옮겨 헤이안 시대(平安時代)를 열었고 이후 교토는 1000여년에 걸쳐 일본의 수도가 되었다.


 


우리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했기에 다시 방향을 찾을 수 있었다. 자전거를 타고 오는 노인을 보고 나는 영화 <시네마 천국>의 포스터를 떠올렸다. 헤이안 신궁 맞은 편에 보이는 붉은 색 도리는 높이만 해도 24미터나 된다.




잠시 휴식을 취했다가 다시 서쪽으로 달려나갔다.



교토 시가지 안에서 이런 호젓한 도로를 만나다니 그게 너무 반가웠다. 아래 지도를 보기로 하자.




사진을 클릭하면 크게 뜬다. 은각사와 동지사 대학교, 그리고 어소의 위치를 표시해두었다. 지도 제일 아래쪽에 헤이안 신궁이 살짝 드러나있다.



헤이안 신궁 남쪽에서 동서로 이어지는 길이 가모가와 동쪽의 니조거리다. 우린 어느새 가모가와 강가까지 와버린 것이다. 오히려 더 잘되었다.



우리는 강변 둔치로 이어지는 자전거길로 내려섰다. 이쯤에서 위에서 소개해드렸던 지도를 가지고 다시 한번 더 확인해보기로 하자.




교토시내에는 남북으로 흐르는 두개의 큰 물줄기가 있다. 히가시야마, 그러니까 동산쪽에도 하나의 강이 보이고 서쪽에도 또 하나의 강이 보인다. 이 두 물줄기는 교토 시가지 남쪽에서 하나로 합쳐져서 오사카 방향으로 흐른다. 나중에 우리는 그 강 옆으로 나있는 길을 따라 오사카까지 자전거로 이동하게 된다.



이쯤에서 정지용의 시 한편을 소개해보기로 하자. 제목은 압천이다.




                          압천(鴨川)

 

                                                                                               정지용

 

 

압천 십리벌에 

해는 저물어...저물어...

  

날이 날마다 임보내기 

목이 젖었다...여울 물소리...

  

찬 모래알 쥐여짜는 찬 사람의 마음

쥐어짜라. 바시어라. 시언치도 않어라.

  

역구풀 우거진 보금자리

뜸뿍이 홀어멈 울음 울고

 

제비 한쌍 떳다  

비마지 춤을 추어 

 

수박냄새 품어오는 저녁 물바람 

오랑쥬 껍질 씹는 젊은 나그네의 마음

 

압천십리벌에

해가 저물어...저물어...

 

 



'압'이라는 글자는 오리를 의미하는데 일본 식으로 읽자면 가모다. 압록강이라고 할 때 바로 그 '압'자다. 이 개울에는 예전부터 오리가 많이 서식했던 모양이다. 시의 제목을 압천이라고 했으니 일본인들 발음으로 하자면 가모가와가 된다. 



지금 우리 눈앞에 흐르고 있는 개울이 가모가와인 것이다.




가모가와 둔치로는 자전거 길이 남북 방향으로 곧게 나있었다.



물은 한없이 맑았는데 어린 시절에 흔히 볼 수 있었던 우리들 시골마을을 감돌아 흐르던 개울과 풍경을 떠올리게 했다.



인공적인 시설이라고는 다리와 자전거길과 군데군데 막아놓은 보 몇개 뿐이었다.



나는 묘한 향수를 느꼈다. 정지용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새록새록 솟아오르는 향수를 안고 달렸다.



둔치길을 달리면 신호등에 걸릴 일이 없어 좋았다.



일본까지 와서, 그들이 그렇게 자랑하는 천년고도 교토에서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모습을 어찌 상상이나 할 수 있었으랴?



빗방울이 슬슬 뿌려졌다. 토끼풀이 무리지어 자라면서 하얀 꽃을 흩뿌려놓았다.



상류쪽 두개의 물줄기가 마주치는 곳 부근에서 도로로 올라갔다. 이제부터는 서쪽으로 직진한다.

일왕이 머무르던 거처인 어쇼가 끝날 때쯤되어 드디어 목표물을 찾았다. 우리가 고대하던 동지사대학 서쪽 정문앞에 도착한 것이다.



대학 수위실에 목례를 하고 안으로 들어섰다. 한국인이라면 여기에 왜 오는지 그들도 너무 잘 알고 있다. 대학구내에서는 자전거를 타고 다닐 수 없다고 했다.



안으로 들어섰다. 여길 보려고 자전거를 타고 그렇게 힘을 다해 달려왔던가 싶었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