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칙적인 생활을 했던 유명한 철학자로서는 임마누엘 칸트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1724년 쾨니히스베르크(Königsberg)에서 출생했다.
오늘날의 러시아 영토인 칼리닌그라드 출신이다.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사이에는 러시아 영토가 자그만하게 끼어들어있다. 그곳의 중심도시가 칼리닌그라드다.
한때는 프로이센 공국의 수도이기도 했다.
칼리닌그라드의 위치를 표시해보았다.
프로이센은 오늘날의 독일이다. 독일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아시아 국가가 바로 일본이다.
19세기 중후반의 명치유신(메이지유신)이후 일본은 독일에 많은 유학생들을 파견했다.
임마누엘 칸트는 프로이센공국 사람이다. 그러길래 오늘날에는 독일 사람으로 쳐주고 있는 것이다.
그는 철학자로서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
칸트는 죽을 때까지 쾨니히스베르크에서 100마일 밖으로 나가본 적이 없다고 전한다.
칸트는 1804년 2월 12일 새벽 4시경에 죽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지막 말은 “Es ist gut” 였다. '그것으로 좋다'는 정도의 의미라고 한다.
칸트가 산책을 좋아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나는 지금 일본 교토에 있는 '철학의 길'을 자전거로 천천히 지나고 있는 중이다.
한자로 哲学の道 라 쓰고 데쓰가쿠노미치라고 읽는다고 한다.
일본의 철학자 니시다 기타로(西田幾多郞, 1870~1945)가 자주 산책했던 길로 유명하다.
그는 교토대학 철학부 교수였다.
그가 자주 사색하며 산책했던 길이었기에 '철학의 길'이라는 이름으로 유명해졌다.
길은 은각사 입구까지 연결되어 있다.
교토시내 동쪽 산밑으로 이어지는 길인데 물길도 함께 따라 흐른다.
길가는 제법 호젓해서 산책을 즐기기에 그저그만이다.
길가 여기저기 예쁜 카페들도 제법 있다.
벚꽃이 피는 시기에는 장관이라고 한다.
이런 길을 자전거로 가는데 커피 한잔 정도는 마셔주어야한다. 저번에 왔을 땐 걸어갔다.
커피숍에 들어갔다.
아메리카노 한잔을 시켜 마시면서 휴식을 취했다.
멋진 카페에서 커피 한잔이라도 마셔주어야 여행 다니는 기분이 든다.
반시간 정도를 쉬다가 다시 길을 나섰다.
이번 여행을 떠날 때 어떤 분이 거금 10만원을 쥐어주셨다.
그분이 주신 돈으로, 그 분 이름으로 우리 팀 멤버들에게 커피를 대접해드렸다.
마침내 은각사 입구까지 왔다.
교토의 명물 사찰로 금각사가 있다. 우리는 지금 금각사가 아닌 은각사 부근에 온 것이다.
금각사나 은각사는 일본 발음으로 거의 비슷하게 소리난다. 둘 다 긴카쿠지 정도로 소리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일본어에 어두운 내가 일본인들의 발음을 듣고 정확하게 구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에 가깝다.
금각사가 교토시 북서부에 있다면 은각사는 북동부에 있는 절이다.
자전거를 세워둘 공간을 찾아야했다.
은각사로 이어지는 골목길을 천천히 올라갔다.
마침내 찾았다.
자전거를 세워두고 자물쇠를 채워두었다.
입장권을 사야한다.
일단 문간으로 들어섰다.
길이 ㄱ자 모양으로 꺾여져 있었다.
나무가 벽처럼 늘어선 좁은 길을 지나야한다. 분위기가 좋았다.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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