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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깜쌤의 세상사는 이야기 : '난 젊어봤다' - 자유 배낭여행, 초등교육, 휘게 hygge, 믿음, 그리고 Cogito, Facio ergo sum
  • 인생 - 그리 허무한게 아니었어요. 살만했어요
우리나라 안 여기저기 돌아다니기/나라안 여기저기 in Korea

영주에서 봉화까지

by 깜쌤 2019. 1. 14.


마을 곳곳에서는 고택 수리가 한창이었습니다.



나는 골목으로 이리저리 자전거를 타고 다녀보았습니다.



마을 안길이 제법 넓었습니다.



흙담과 하얀 회벽을 지닌 건물의 조화가 아름답습니다.



마을 입구에 우물터가 있었습니다.



지붕을 덮은 우물입니다.



기둥이 굵었습니다. 여긴 물이 좋은가봅니다.



바래미 마을이 있는 이 동네를 행정구역상으로는 해저1리라고 부르는가 봅니다. 


 

전통마을 분위기와는 그다지 잘 어울리지 않는 색깔있는 지붕을 가진 집도 몇채 섞여있었습니다. 


 

아무렴 어떻습니까?



바래미 마을을 떠나기가 아쉬웠습니다만 주어진 시간이 그리 넉넉하지 못했기에 마을을 벗어나기로 했습니다.



나는 영주를 향해 달렸습니다.



문단역 부근에서 자전거를 세워두고 내성천으로 나가보았습니다.



그 아름답던 모래밭들은 많이 사라지고 갈대와 억새가 섬을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글을 쓰는 오늘 낮에는 봉화가 고향인 분과 이야기를 나누어보았는데 그동안에 문단역 앞 내성천에서 수많은 모래를 퍼내갔다고 했습니다.



일흔이 다 된 어른의 회고를 들으니 마음이 짠해져왔습니다.



여기서 바라본 경치는 카프카즈 산맥속의 어느 산골짜기 모습을 보는듯 합니다.



나는 아련한 향수를 느꼈습니다.



벼들은 가축들 먹이가 되길래 비닐로 꽁꽁 싸서 논에 던져두었습니다. 



기차가 지나갔습니다.



봉화를 벗어나 다시 영주 시내로 들어섰습니다.




실개천에도 모래가 곱게 깔려있었습니다. 갈겨니같은 것이 보이기도 해야하는데 녀석들은 벌써 어디론가 숨어버린 것 같습니다.



시가지로 들어와서는 옛날 영주역이 있던 터에 가보기로 했습니다.  



옛날 영주역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것은 초등학교 시절 이후로는 처음인것 같습니다. 그러니 도저히 위치를 기억할 수 없었습니다.



초등학교 다닐 때 한번씩 엄마와 아버지의 손을 잡고 역주역 부근의 찐빵집에 갔던 기억이 납니다만 어디쯤인지 도저히 기억할 수가 없었습니다. 길가 빵가게에서 빵을 조금 샀습니다.



찐빵을 사주셨던 아버지와 손잡고 갔던 엄마는 이제 이세상 사람이 아닙니다. 중국집 벽에 붙여놓았던 삼국지 등장인물들의 그림과 만주식 변발을 했던 통통한 어린아이의 모습이 벽에 걸려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영주역이 있었던 곳을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찾아가보았습니다만 위치를 확인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떤 이들이 말하기를 365시장이 있는 이곳이 옛날 영주역터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1967년에 현재의 위치로 기차역을 옮겼다고 합니다. 나는 영주역을 향해 페달을 밟았습니다.



철교밑을 지나갑니다. 봉화로 가는 선로와 안동으로 내려가는 선로가 이 부근에서 갈라졌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모든게 다 옛날에 꾸었던 덧없는 백일몽이 되었습니다.



신영주교회에 잠시 들어가보았습니다.



거기에는 그럴만한 사연이 있습니다만 여기에서는 밝히기가 곤란하네요.



다시 영주역으로 돌아왔습니다.



플랫폼에 나가서는 자전거를 접어서 기차에 올랐습니다.



하루 종일 내 발이 되어준 자전거가 고맙기만 합니다. 이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교통사고를 당했었습니다. 



 

기차는 영주댐 부근으로 지나갑니다. 영주댐 공사로 인해 그렇게 모래가 곱고 아름답던 내성천 상류가 폐허로 변했습니다.



안동이 가까워집니다. 영주와 안동은 가슴속에 많은 사연을 쌓아두도록 만든 도시들입니다.



나는 조금씩 졸기 시작했습니다. 기차는 하염없이 남쪽을 향해 내달리기만 했습니다.

끝.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