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죽기만큼 싫어하는게 갇힘과 간섭당함입니다. 선생을 하면서도 마지막 이십여년간은 어느 누구로부터도 - 특히 관리자인 교장, 교감으로부터 - 잔소리를 거의 듣지 않고 생활했었습니다. 자랑같지만 아이들을 확실하게 가르쳐주고 맡은 일을 성실하게 처리하였기에 가능했던 일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완벽하게 교사생활을 했다는 말은 아닙니다. 돌이켜보면 볼수록 많이 부족했고 모자랐기에 자랑보다는 부끄러움과 모자람이 더 많았던 삼류선생에 지나지 않았음을 깨닫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를 잘 아시는 분들은 거의 다 인정하시는 사실입니다만 갇혀있기보다는 평생을 자유롭게 떠돌아다니는 것을 즐기며 살아왔었습니다.
삼주일동안의 병원생활을 통해 배운게 많았습니다만 고통스러운 일도 많았습니다. 특히 괴로웠던 것은 공간의 제약과 소음이었습니다. 교양과 상식이 부족한 일부 환자분들이 만들어내는 소리와 하루종일 틀어놓는 텔레비젼에서 나오는 소리들은 나에게 고문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노트북을 가져다가 켜두고 이어폰을 귀에 꽂은 뒤 나만의 세계에 빠져드는 것이 그걸 이겨내는 유일한 방법이었습니다. 책읽기를 즐기는 나에게 여러가지 소리가 동시에 들려온다는 것은 나를 거의 미치도록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그런 상태에 있으면서도 그동안 읽지 못했던 책을 가져다 달라고해서 원없이 읽었습니다. 제가 다쳐서 병원에 입원했다는 사실을 성도님들이 아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만 사람 일이 어디 그렇습니까? 숨긴다고해서 숨겨질 일이 따로 있지 않겠습니까?
어떤 분은 병실에 찾아오면서 자기가 직접 만든 도시락을 가져다 주시기도 하더군요.
너무나 감사해서 할말을 잊어버릴 정도였습니다.
또 어떤 분은 어혈을 푸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면서 한약을 지어서 가져다주기도 했습니다. 사실 그런분들때문에 일찍 퇴원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가르쳤던 아이가 그 병원 간호사로 근무하고 있으면서 얼마나 따뜻하게 도움을 주었는지 모릅니다. 알게모르게 신경써주고 관심을 기울여주었습니다. 선생은 아이의 추억속에 좋은 모습으로만 남아야하지만 세월이 흐른 뒤 담임선생이 다친 모습을 보여줄 수밖에 없었으니 그것도 그리 아름다운 일은 아니라고 여겨지더군요.
오늘 오전에는 다시 병원에 진료를 받으러 가야합니다. 모두들 건강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병원관계자분들이 들으시면 정말 섭섭한 소리겠지만 안아프고 안다치고 살아가시기를 기원합니다. 건강하게 사는게 큰 복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던 지난 달, 8월이었습니다.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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