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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깜쌤의 세상사는 이야기 : '난 젊어봤다' - 자유 배낭여행, 초등교육, 휘게 hygge, 믿음, 그리고 Cogito, Facio ergo sum
  • 인생 - 그리 허무한게 아니었어요. 살만했어요
사람살이/세상사는 이야기 2 My Way

살아난 것이 기적입니다

by 깜쌤 2018. 8. 24.


8월 9일 목요일 아침, 자전거를 가지고 영주행 기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것은 접이식 자전거이니 기차에 싣는 것은 문제가 없습니다. 아침부터 하늘에는 구름 한 점조차 없어서 엄청 더울 것이라고 짐작했습니다. 



거의 정오가 되어서야 영주역에 도착해서 자전거를 조립한 뒤 국도를 따라 영주댐을 향해 달렸습니다. 모래가 한없이 고왔던 내성천 상류에는 엄청난 나랏돈을 들여 댐을 만들었으나 심한 녹조현상때문에 물을 모두 빼내어버린 영주댐이 있습니다. 댐 부근 여기저기를 살피고나서는 무섬마을로 갔습니다.  



무섬마을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뒤 건너편의 조제리를 지나서는 내성천을 따라 달렸습니다. 둑길 중간에 비포장된 부분이 나타나기도 했습니다만 워낙 경치가 좋으니 지겨운 줄을 모르고 달렸습니다.


세계적인 비경이라고 여겨지는 모래강인 내성천의 숨겨진 명소를 살펴가며 저녁 무렵에야 예천에 도착했습니다. 내성천 구간을 살피며 여행한 이야기는 현재 연재중인 제주도 자전거 라이딩 글이 끝나면 자세하게 쓸 생각입니다.


  

예천은 양궁과 곤충으로 유명한 지방도시입니다. 한국 여자 양궁의 개척자인 김진호 선수가 예천 출신이죠. 



숙소예약을 해두지 않고 갔으니 숙소부터 찾아야했습니다. 접이식 자전거 뒤에 일인용 텐트와 자전거 라이딩용 배낭을 싣고 갔기에 여차하면 내성천 모래밭에서 야영을 할 생각이었습니다.



저녁으로 감자탕을 사먹고나서는 부근 모텔에 들어갔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모텔에 혼자 들어간 것은 이번이 두번째였습니다. 지난 7월에 남도 자전거여행을 할때 목포에서 모텔에 들어가보고 나서는 처음이네요. 


 

내 인생을 엉망으로 만들어버린 사건 가운데 하나가 집안형편 때문에 내가 원하지도 않았던 대학에 갔다는 것이었습니다. 인생에 대한 시야와 견문이 극히 좁았던 시골뜨기의 어리석은 생각에 사로잡혀있었던 나는 공부를 멀리하고 막가는 심정이 되어 술로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런 나를 불씽히 보고 참된 신앙인으로 만들기위해 많은 정성과 노력을 기울였던 옛 친구를 8월 10일 목요일 낮에 만나기로 약속해두었던 것이죠. 하지만 인생살이는 참으로 묘한 것이어서 그 친구는 교직의 길을 걷지않고 세상적으로 끝발있고 힘있다고 소문났었던 검찰사무직 공무원이 되어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세월이  한없이 흐르고나서 알게 된 사실인데 그는 믿음생활에서 멀어져있었습니다. 그동안 한두번 통화는 하고 살았지만 이번에 문경에서 가까운 예천까지 왔으니 한번 만나보고 권면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길래 만나기로 약속도 하고 시간까지 정해두었던 것입니다.     



예천에서 그가 살고있는 문경시 점촌까지는 그리 먼길이 아니었습니다. 예천을 대표하는 내성천 강변의 관광명소라면 아무래도 회룡포를 꼽아야할 것 같습니다. 나는 회룡포를 거쳐서 가기로 마음먹고 네이버지도를 열어서 자전거길 검색을 해두었습니다. 


일단 문경 점촌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가다가 중간 어디쯤에서 지방도로 점어든 뒤 내성천으로 나가면 회룡포에 닿을 수있도록 되어있었습니다.     



아침은 예천 재래시장에서 콩나물 국밥으로 해결했습니다.



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었기에 편의점에 들러 일회용 비닐 우의를 구해서 배낭에 끼워두었습니다.  



지도에서 확인해둔대로 예천에서 문경으로 이어지는 34번 도로를 따라 달렸습니다.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갓길이 선명하게 잘 그어져있었고 갓길폭도 그런대로 괜찮았기에 안심하고 달렸습니다. 


 

예천기차역을 지났습니다.



경북선 철로가 예천으로 이어지고 있었기에 기차역이 있다는 것은 미리 알고 있었습니다. 점촌까지 가서 친구를 만나본 뒤에는 기차를 타고 김천을 거쳐 동대구로 갈 생각이었습니다.  



예천군청 앞에서 교통신호등에 걸려 사진을 찍고 다시 달렸습니다. 그리고 유천면이라는 이정표를 보며 달린 것은 확실한데 그다음 눈을 떠보니 병원이었습니다. 나는 뒤에서 달려오는 자동차 소리도, 경적소리도, 엔진소리도 브레이크 밟는 소리도 전혀 듣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정신을 잃어버린 것이죠.


어제 8월 23일 낮에 다시 한번 교통사고 조사관님과 나눈 대화를 종합해서 판단해보면 사고경위는 다음과 같습니다. 나는 갓길을 따라 정상적으로 달리고 있었는데 1톤 트럭이 오른쪽 사이드미러로 나를 가격해버린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가해자의 트럭 오른쪽 사이드미러가 다 부서져있다는 것이 그 증거입니다. 


조사관의 표현에 의하면 가해자는 약간의 장애를 가진 장애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말이 조금 어눌하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약간의 지체와 정신장애를 지닌 분이 아닐까하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사고발생이후 지금 이순간까지 나는 가해자에 대한 어떤 악감정이나 미워하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사고 발생 시각이 아침 7시 55분 경이라고 경찰에서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보아 제가 예천 권병원에서 정신을 차린 시각을 가지고 대강 계산해보면 저는 거의 35분정도 의식을 잃고 있었던 것이죠. 119구급대원들이 나를 병원으로 옮겨주신 모양인데 전혀 기억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설단체에서 운영하는 앰불런스를 타고 생활근거지인 경주로 이송되어 왔습니다. 권병원에서는 엑스레이 사진을 찍고 자료를 모두 CD에 담아주었습니다. 병원관계자분들과 구급대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이쪽 병원에서 머리 부분을 MRI 촬영해본 결과 미심쩍은 부분이 있어서 조영제를 넣고 다시 한번 더 찍어야했습니다.


약간의 뇌출혈과 타박상 흔적이 있고 갈비뼈 두개가 부러지면서 피가 나와 늑막사이에 고여있다는 진단이 나오면서 전치 6주의 진단서가 공식적으로 발급되었습니다. 8월 21일 저녁에 외출허가를 얻어 집에 가서 다시 한번 더 자전거를 살펴본 결과 놀랍게도 자전거는 말짱했습니다.



하지만 헬멧을 세밀하게 살펴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헬멜의 옆부분과 앞부분에 심하게 긁힌 흔적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왼쪽 등어리의 갈비뼈가 부러지고 왼쪽 고관절부근과 허벅다리에 피멍이 가득한 것으로 보아 그쪽으로 나가떨어진것 같습니다. 온몸과 얼굴에도 수많은 상처가 발생했습니다. 끼고 있던 안경은 알맹이 하나만 남기고 사라져버렸습니다.


가만히 판단해보건데 헬멧을 쓰지 않았더라면 머리가 깨어져 현장에서 즉사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트럭의 사이드미러로 제 머리부분이나 등짝을 쳐버린 것 같은데 자세한 것은 잘 모르겠습니다. 이번 사고를 통해 안전장비의 효용성을 깊이 깨달았습니다만 결과적으로는 순간적으로 죽음 일보직전까지 끌려갔다가 기적처럼 살아났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사람의 목숨은 한순간에 결정되는 것 같습니다. 제가 섬기는 교회에 공식적으로 알리지 않았습니다만 알음알음으로 많은 분들이 병상으로 찾아와주시고 위로해주셨습니다. 생명은 하나님 뜻에 달려있음을 다시 한번 더 깨달은 귀한 사건이었습니다. 이번 일로 저는 확실하게 모두 네 번의 죽을 고비를 넘겼습니다. 위로해주시고 염려해주신 모든 분들께 고마움을 표하고 싶습니다.


퇴원날짜는 아직까지 정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몸 여기저기 찌뿌퉁하고 결리는 곳도 있기 제법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도 자동차를 타면 안전띠를 꼭 매시고 오토바이나 자전거를 탈 경우 헬멧을 반드시 쓰시기를 권해드립니다. 가해자분이 보험에 가입해있어서 천만다행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