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다음 마을을 찾아가보았다.
아늑하다.
모래가 흐르는 개울만이라도 가깝다면 좋겠다.
모래가 흐른다는 표현이 말이 되느냐고 받아칠 이도 있을 수 있겠지만 사실이 그렇다.
모래는 물에 의해 흐른다.
바람에 의해서도 흐른다. 사막에서 직접 본 일이다.
나는 마을을 보고 돌아나왔다.
오늘 목표는 달성한 셈이다.
시간이 남았기에 다른 곳을 더 보기로 했다.
서후 금계리로 가는 길을 달리다가 종택을 발견했다.
홍살문이 보이는 곳 너머로 기와집이 숨어있었다.
뒷산은 높지도 않고 아담하기만 했다.
원주변씨 간재종택이다.
나는 처음에 한자를 얼핏보고는 난재종택이라고 읽을뻔했다.
정문 앞에 섰다. 접시꽃과 봉숭아같은 시골냄새나는 그런 꽃들이 나를 맞아주었다.
대문이 열려있었기에 다가가보았다.
얼핏 봐도 기품이 서려있음을 알 수 있다.
조심스레 마당에 들어섰다.
지금까지 봐온 종택과는 어딘가 분위기가 다르다.
세월의 흐름속에 안이 비어버린 고목과 회벽을 지닌 기와집, 그리고 단아함이 배인 마당이 단정함과 기품을 더해주는 것 같았다.
흰 머리카락을 가진 어른이 슬며시 다가오셨다. 잘 보고 가시라는 인사말을 남기고.....
언사에 기품이 넘친다.
강당처럼 생긴 정면 건물 뒤쪽에는 살림집과 사당이리라.
검게 변해버린 대청마루에는 세월의 더께가 내려앉아 무게감을 더해주고 있었다.
멋진 곳이다.
이런데서 차 한잔 정도 마셔가며 살면 좋겠지만 내 평생에 그런 복까지 받을 일은 없을 것 같다.
나는 간단히 보고 나가기로 했다.
간재 변중일 선생은 임진왜란때 공을 세우신 어른이라고 한다.
마당 앞에는 작은 정자가 있다.
아까부터 정자에서 쉬고 있던 동네 아줌마들은 트럭을 타고 오후 몫의 일을 하러 가버렸다. 모두 내또래는 될 것 같다.
나는 정자에 들어가보았다.
정자 바닥에는 휴식용 의자들과 화문석자리가 마련되어 있었다.
의자에 앉아보니 종택이 한눈에 들어온다.
소박하되 단아한 곳이다.
정자 밑에는 연못이 마련되어 있었다. 그러니 있을건 다있다는 말이다.
나는 조용히 물러나왔다. 잠시 쉬고가게 해준 주인장께 깊은 감사를 드리고 싶다.
시간이 많다면 더 자세히 살펴보면 좋으련만 그럴 여유가 없었다.
도로를 끼고 달렸더니 학가산이 보이기 시작했다.
금계리 학봉종택 못미쳐 바로 옆에서 겸와재라는 집을 발견했다.
조선후기를 살았던 겸와 김진형(謙窩 金鎭衡, 1801~1865) 선생의 가옥이라고 전한단다.
누가 초청하는 이도 없었지만 그냥 가기가 아쉬워서 마당으로 들어가보았다.
겸와재 툇마루 바로 앞에는 노란 백합이 피어있었다.
내가 와(窩)라는 글자를 처음 만난 것은 2014년 중국 복건성 무이산에서였다.
와(窩)는 움집을 의미한다. 이런 경우에는 겸손함을 나타내기 위해 일부러 골라썼으리라.
겸와재 바로 옆집이 학봉선생종택이다. 알고보니 겸와 김진형 선생은 학봉 김성일 선생의 10대후손이었다. 그 사실을 알고나니 겸와재의 위치가 이해되었다.
금계리 동네가 참으로 멋스럽다는 생각과 함께 예사 동네가 아니라는 느낌이 밀려들었다.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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