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장대에 올라보기로 했다. 경주에 살면서도 올라본 적은 드물다.
금장대 가는 길가에는 못보던 비석이 서있었다.
명기 홍도라는 분에 대한 추모비였다. 모든 재산을 나누어주고 마흔 다섯에 죽었다고 하니 애닳픈 마음 그지 없다.
조선시대에 기생이었다면 그녀는 사회 최하층을 이루던 신분에 속했다고 볼 수 있다.
기생은 천민계급 가운데 하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의 의로움 때문에 이름이라도 남겼다.
배를 보자 가요계의 전설로 남은 이미자씨의 <황포돛대> 생각이 났다.
마지막 석양 빛을 기폭에 걸고
흘러 가는 저 배는 어데로 가느냐
해풍아 비 바람아 불지를 마라
파도소리 구슬프면 이 마음도 구슬퍼
아~ 어데로 가는배냐 어데로 가는배냐
황포 돛대야.
순풍에 돛을 달고 황혼 바람에
떠나 가는 저 사공 고향이 어데냐
사공아 말 해다오 떠나는 뱃길
갈매기야 울지마라 이 마음이 서럽다
아~ 어데로 가는배냐 어데로 가는배냐
황포 돛대야.
그런 노래가 있었다는 것을 지금 세대들이 어찌 알랴?
나는 강변으로 천천히 걸어나아갔다.
잠시만 걸으면 금방 목적지에 이를 것이다.
철쭉이 피어있었다.
진달래와 철쭉은 다른 종류다.
진달래꽃은 먹을 수 있어도 철쭉꽃은 먹을 수 없다.
철쭉꽃을 따먹을 경우 심하면 사망에 이를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한다.
우리가 잘 아는 영산홍이나 연산홍은 철쭉에 속한다고 봐도 틀린 말이 아니다.
철쭉을 원예화시킨 품종의 종류는 엄청 많아서 일일이 다 헤아릴 수 없을 지경이다.
온 세상에 연두빛이 가득했다.
경주시가지 가를 흐르는 강이 형산강이다. 경주시민들은 이 부분을 서천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나는 갈림길에 섰다. 왼쪽으로 가면 금장대로 이어지고 오른쪽으로 그대로 가면 암각화가 나온다.
나는 암각화가 새겨진 바위가 있는 절벽으로 이어지는 길을 택했다.
애기청수 절벽 한쪽에는 선사시대 암각화가 남아있다.
암각화니까 당연히 바위에 새겨져 있다.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그림이 새겨져있는 것이다.
학자에 따라 견해가 조금씩 차이가 나는 모양이지만 청동기후기나 철기초기의 유물로 추정된다고 한다.
언제부터 언제까지가 청동기시대이고 철기시대라는 식으로 엄밀히 구별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두고 판단하면 된다.
문자가 없던 시기였으니 그림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그림을 두고 해석도 분분한 것으로 알고 있다.
암각화가 있는 바위 부근에서 보면 경주 예술의 전당이 건너편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절벽쪽으로 더 나아가면 위험하다.
나는 다음 행선지인 금장대로 방향을 틀었다.
아까 왔던 길로 잠시만 돌아나가면 된다.
갈림길에서 이번에는 위로 오른다.
멀리 경주 남산이 길게 누웠다.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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