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림 마을에도 친구들이 몇명 있었다.
이제는 얼굴뿐만 아니라 이름까지도 까마득하다.
친구의 어르신이 이장을 하셨던 것은 확실한데..... 성씨가 권씨였던 것까지는 확실하지만 그 다음은 모른다.
그 어르신의 얼굴 모습이 눈에 삼삼하다. 멀리 새로 이설한 중앙선 철길이 보인다.
가뜩이나 촌에 사람이 없는데 몇개 있던 마을마져도 사라져버렸으니 사람 그림자가 있을리 만무하다.
댐 부근에 만들어놓은 오토 캠핑장이 활성화되면 이 마을 사람들이 농산물 정도는 팔 수 있으려나싶지만 그럴 가능성은 별로 없어보인다.
도로가에는 올해 거둔 나락이 햇살에 말라가고 있었다. 요즘 젊은이들이 나락과 쌀을 구별할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
우리 귀에 익숙했던 말들조차 이제는 생소해져간다.
개울 건너편에 인공폭포를 만드는 모양이다.
절벽을 제법 깎아낸듯하다.
내성천은 이런 절벽 밑에 널린 모래밭을 안고 흘렀다.
건너편 골짜기에는 아직도 소식을 주고받고 사는 친구가 살았던 마을이 있었다. 놋점이라는 마을이다.
나는 놋점이라는 이름을 가진 마을이 존재했던 골짜기를 통과해서 새로 낸 도로로 올라갔다.
원래는 이런 마을이었다. 호수는 적어도 사람들은 진솔했다. 놋점은 영주에서도 오지마을이었다.
이젠 동네사람들도 다 옮겨갔다. 물론 보상은 받았으리라. 사진속의 제일 오른쪽 봉우리를 깎아 인공폭포를 만드는 중이다.
참으로 친했던 친구는 이 동네에 살았다. 고등학교때 그 친구가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들었다.
어느해 겨울에 찍어두었던 사진 한장이 남아있었다. 친구 집이 어디쯤인지 이젠 기억도 나지 않는다.
모래가 그렇게 고왔던 내성천이었지만 이젠 다 헛것이 되었다.
미림마을에서 놋점으로 들어가는 내성천에는 현대식 다리가 걸쳐져 있었다.
모래들이 다 사라진 내성천 한쪽 절벽에 인공폭포를 만들지만 어디 옛날 아름다움만 같으랴?
원래는 이렇게 곱던 모래가 가득했던 곳인데........ 인공폭포를 만드는 자리는 사진 속에 보이는 절벽부분이다.
이런 사진을 찍어두지 않았더라면 기억조차 잃어버릴뻔했다.
세계적으로 보기 힘든 고운 모래가 가득하던 강에 댐을 건설했다. 나는 관계자들의 그 놀라울 정도로 무지막지한 발상에 할말이 없어 어이를 잃고만다.
댐은 사진 오른쪽, 도로를 반듯하게 잘라낸 봉우리가 있는 바로 그 지점에 만들어져있다.
이렇게 말이다.
댐을 기준하여 위 아래로는 내성천이 구비구비 산을 감돌아가며 흘렀다. 저 멀리 산을 파낸 곳 오른쪽에 작은 고개를 넘어가는 길이 보인다. 그 고개너머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가 있었지만 그곳도 이미 다 사라져버렸다. 나는 오늘 그 고개너머까지 걸을 생각이다.
개발이라는 미명아래 우리는 수없이 많은 귀중한 자연을 파괴시켜나갔다. 그래서 얻은 것은 땅값상승과 약간의 보상금뿐이었다.
영주댐은 바로 이 자리에 서있는 것이다. 얼마나 멋진 절경을 없애버렸던가 말이다.
사진 오른쪽에 보이는 절벽이 위쪽 사진에 나타나있다.
이만큼 지나고보니 다 꿈인듯 하다. 그랬다. 인생은 한바탕의 꿈이었다.
나는 예전 마을이 있던 자리로 가보았다. 마을은 사라지고 오토 캠핑장이 들어섰다.
농지가 있던 곳이 캠핑장으로 변해버렸다. 바로 위 사진처럼 옛날에 찍어둔 놋점 마을 모습은 아래 글상자 속에 들어있다.
우리는 달구지와 리어카 대신에 자동차를 끌고 다니게 되었다.
그리고 더 빨리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그 모든 변화가 반세기만에 이루어졌다.
너무 많이 변했다.
변해야산다고 하지만 자연만은 최대한 그대로 두었으면 좋겠다.
자작나무 몇그루가 논이 있던 자리에 심겨져 있었다.
골짜기 안으로 포장도로가 늘씬하게 뻗어있었다.
9년전에 이런 사진이라도 찍어두지 않았더라면 생각조차 나지 않을뻔했다.
골짜기에는 실개천이 이어지고 있었다.
어른들이 지게를 지고 넘어다녔던 산허리에 도로가 길게 누으면서 멱을 끊고 산을 넘어갔다.
진월사로 올라가는 산길 초입은 이제 찾을 길이 없다.
9년 전에 여길 왔을땐 간신히 기억해내서 산길을 오를 수 있었다.
이젠 기억해줄 사람도 그리 많지 않으리라.
만든지 그리 오래되지도 않았을 다리 상판 목재가 그새 뜯겨져나가고 있었다.
나는 오토 캠핑장 구역으로 서둘러 걸었다.
내가 가진 시간이 그리 많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무엇이 있었을지도 모르는 낯선 사람들이, 차를 끌고 와서 이용할 것이다.
이런 도로와 시설물 하나 밑에 얼마나 많은 사연들이 묻혀 있는줄을 그 누가 알겠는가 말이다.
사람들은 자기가 좋으면 다 좋은 줄 안다.
남의 사연보다는 내 사연이 더 소중하고 가치있는 법이다.
세월이 흘러가고나면 우리 모두의 사연들도 다 묻혀지고 잊혀질 것이다. 그게 인생이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