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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17 베트남-월남의 달밤 1(完)

마침내, 하롱베이 2 - 인도차이나

by 깜쌤 2017. 9. 1.

 

카트린(까뜨린느) 드뇌브 1943년 10월생이다. 그러니 이제는 일흔이 훌쩍 넘었다. 

 

 

 

갑자기 생뚱맞게 낯선 이름을 들고나오니 어리둥절할 수도 있겠다. 그녀는 프랑스인이다. 그녀가 나온 대표적인 영화로는 <셀브르의 우산>같은 작품들이 있다. 왼쪽의 포스터는 영화 <세브린느>다. 젊었던 날 나는 그녀를 상당히 좋아했다. 그녀의 사진들을 보면 무엇인가 연상되는게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 널리 알려진 또 다른 그녀의 대표작은 <인도차이나>다. 1992년 작품인데 그해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외국어 작품상을 수상한 영화다. 영화 <인도차이나>에 하롱베이가 등장한다.

유투브에 가서 검색해보면 <인도차이나>의 멋진 장면들이 제법 많이 소개되어있지만 저작권 문제로 직접 올려드리지 못하는 것이 유감스럽다.



 

뜬금없이 카트린 드뇌브 이름을 들먹였는데 영화속에 등장하는 하롱베이의 장면들은 하나같이 영화처럼 예쁘다.

 

 

내가 드뇌브, 그녀를 처음 만나 것은 1970년대 초반이었던 것 같다.

 

 

드뇌브를 닮은 듯한 여자 아이를 알고(?) 있었기에 특별히 관심을 가졌던 것이다.

 

 

그동안 세월이 엄청 흘렀다.

 

 

살아오면서 나는 참 많은 영화에 관심을 가졌다.

 

 

수없이 많은 영화를 통해서 이런저런 배우를 만나보았다.

 

 

예쁜 여배우들도 많았지만 카트린 드뇌브는 특별히 기억에 남았다.

 

 

<인도차이나>에 하롱베이가 등장하고 있으니 그녀도 촬영을 위해 하롱베이에 와보았을 것이다.

 

 

다시 여행 이야기로 돌아가자. 우리가 탄 배는 이 외딴 리조트로 접근해들어갔다. 

 

 

 그리고 틀림없이 프랑스인이라고 생각되는 한쌍을 태웠다.

 

 

그들을 태우고 배는 다시 돌아나왔다. 

 

 

약간 나이가 들어있었지만 여성분은 젊었을 때 한 미모 정도는 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 여성 관광객으로부터 카트린 드뇌브적인 요소를 발견할 수 있을까 싶어 슬며시 곁눈질해보기도 했다. 선글래스는 그럴 때 참 편하다.

 

 

카트린 드뇌브가 주연한 영화중에 내가 특별히 좋아하는 영화는 <셸부르의 우산>이다.

 

 

영화속에는 대사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노래로만 영화가 진행되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프랑스의 항구도시 셀부르에 반드시 가보아야만 한다.

 

 

생각은 그렇게 하면서도 프랑스 수도 빠리만 달랑 찍은 것이 너무 아쉽다. 

 

 

 이젠 그녀도 늙었고 나도 많은 세월을 보냈다.

 

 

내가 평생을 두고 은근히 그리워했던 또 다른 여자 아이 그녀도 늙었다.

 

 

그게 인생이다.

 

 

2017년 8월의 마지막 날, 그러니까 바로 어제 나는 대구를 다녀왔다.

 

 

자식 문제때문에 마음이 짠해져있을 친구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동대구역 근처의 신세계 백화점에 들어가 책 두권을 샀다. 

 

 

 그 중 한권이 <좋은 생각> 9월호다. 44,45쪽에는 어디선가 읽어본듯도 하고 들어본듯도 한 그런 사연이 한편 실려있었다.

 

 

서울에 사시는 '이 누구누구'님은 아들이 어렸을 때 폴란드 바르샤바에 살았다고 한다.

 

 

옆집에는 눈매가 선한 나이 지긋한 여자 의사가 살았단다.

 

 

여의사는 자기 이웃에 사는 어린 한국인 남자아이에게 쿠키도 주고 초콜렛도 한번씩 주었던 모양이다.

 

 

어느 날 아이의 엄마는 아들이 먹고싶어하는 잡채를 만들었는데, 그 아들이 옆집에 사는 폴란드 여의사에게 잡채를 조금 가져다 드리고 싶어했다.

 

 

아들의 마음씨가 갸륵해서 잡채를 조금 보내드렸었다는데.....  잡채를 들고 여의사 집에 다녀온 아들의 말에 의하면 그 집에는 새가 많았단다.

 

 

그해 겨울 이 누구누구씨는 감기로 고생을 많이 했단다. 옆집의 나이든 여의사는 허브차를 꾸준히 끓여주셨단다. 

 

 

아이 엄마는 고마움에 한번 더 잡채를 만들어 가져다 드렸는데......

 

 

눈이 가득 내렸던 어느 날, 나이 드신 폴란드 여의사가 자기 집을 찾아왔더란다.

 

 

한글로 쓰인 편지를 번역해달라면서 말이다.

 

 

편지 첫머리에는 "친애하는 큰어머님께"라고 쓰여있었더란다. 

 

 

여의사가 젊었던 날, 그녀는 북한에서 폴란드 바르샤바 공대로 유학을 온 북한 대학생을 사랑했었단다. (당시의 폴란드는 소련의 위성국가로서 공산주의 경제체제를 가지고 있었다)

 

 

어느날 남자대학생은 북한으로 강제소환되어 돌아갔고 연락은 끊어졌단다.

 

 

몇년의 세월이 지난 후 어찌어찌하여 폴란드 여자는 북한 남자의 주소를 알아내어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석달 뒤 답장이 왔단다.

 

 

내용인즉 자기(북한 남자)는 이미 결혼했으니 좋은 사람 만나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란다고 했단다.

 

 

북한 대학생 남자가 새를 좋아했기에 폴란드 여자는 새를 키우기 시작했단다.

 

 

북한에 의약품이 부족하다고 해서 남자와 가족을 위해 꾸준히 의약품도 보냈다는데....

 

 

남자의 딸이 폴란드 여의사를 큰어머님이라고 부르면서 감사하다는 내용으로 편지를 보내온 것이었다. (편지의 내용을 그대로 옮기지는 않는다. 저작권이 문제될 수 있으므로.....)

 

 

"아버지와 큰어머님이 재회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편지에는 그런 말이 들어있었다고 한다. 

 

가슴이 먹먹했다. 이런 것이 바로 인생이리라.

 

 

딱 한번 살기에 더 아름답게 살아야하는 것이 인생이다. 

 

 

 어떤 이들은 한번 살기에 마음껏 쾌락을 추구한다면서 방탕하게 살기도 한다.

 

 

과연 무엇이 옳은 것일까? 나는 바르게 살고 의미있게 사는 길을 택해서 걸었다.

 

 

앙드레 지드의 소설 제목처럼 "좁은 문"을 선택해서 걸어온 것이다.

 

 

큰 바위섬 곁에 붙어선 작은 바위가 폴란드 바르샤바에 사는 늙은 여의사처럼 보였다.

 

 

내가 탄 배는 영화 <인도차이나>에 등장하는 배처럼 나아갔다.

 

 

위대한 반전영화 <사랑할 때와 죽을 때>의 마지막 장면이 떠 올랐다.

 

 

"사랑하는 이여, 그러면 안녕!" 이라고 하던 대사도 생각났다.

 

 

우리가 탄 배와 앞에 가는 작은 크루즈선은 앞서거니 뒤서거니하며 달려나갔다. 

 

 

길게 누운 저 섬에는 어떤 사연이 묻어있을까?

 

 

"단순히 경치를 바라보면 돈만 쓰는 관광이 되지만, 의미를 담아 사연을 가지고 바라보면 인생여행이 되는 법이다."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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