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을 펴들고 궁전광장을 가로질러 안쪽 정원으로 들어갔다.
어마어마하게 긴 줄이 빗속에 만들어져 있었다.
우린 이런 줄에 설 필요가 없었다. 이미 티켓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입장구에 가서 표를 보여주자 쉽게 통과시켜 주었다. 그러나 그게 다가 아니었다.
보안검색대를 반드시 통과해야만 했다. 세밀하게 검사를 하기 때문인지 보안 검색대에는 사람들로 인산인해였다. 건장한 신체를 가진 조각상이 보안검색대를 통과하고자하는 사람들을 하나씩 세밀하게 꿰뚫어보고 있는듯 했다. 작은 가방이나 배낭은 휴태하고 통과하는것이 가능했지만 큰 사진기를 가진 사람들이나 조금 커보이는 배낭을 가진 사람들은 아래층 지하에 가서 짐을 맡기고 와야만 했다.
일행 가운데 한분이 카메라를 맡기는 과정에서 불미스러운 일을 당했다. 그 바람에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다. 짐을 맡기고자 할 때 주위 사람들에게 특별히 신경써야 한다. 전문적인 소매치기나 들치기들은 박물관내 지하의 물품 보관소와 검색대 부근을 황금어장으로 여기고 있는 듯 하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 궁금한가? 상상할 수 없는 기술과 수법을 지닌 인간들이 당신들의 주머니와 배낭을 노리고 있다는 사실만을 명심하자.
거기서 제법 많은 시간을 보내야했기에 오후 4시가 넘어서야 비로소 관람을 시작할 수 있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없었으므로 짧은 시간안에 최대한 많은 것을 보아야했다.
마음이 조급해졌다. 그렇다고 해서 뛰어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었으니 애가 탔다. 이럴 경우에는 명화나 걸작만 골라봐야 한다. 그게 최선의 방안이다. 하지만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건물 안에 바글거린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내부에 들어가서 첫번째 만나는 곳이 요르단 계단이라는 이름을 가진 장소인데 거기서는 화려함의 극치를 만날 수 있다.
공간의 크기와 흰색과 황금색의 어울림이 처음부터 관람객을 압도한다. 지금까지 여행을 다니며 여러 곳을 보았지만 박물관 입구가 이렇게 화려한 곳은 처음 보았다.
모두들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는 듯하다. 여기에만 매여있을 수가 없었기에 발걸음을 옮겨야만 했다. 당연히 그래야한다.
솔직히 고백하는 이야기지만 나는 어느 어느 방을 다녔는지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한다. 그저 발길 닿는대로 다녔다고 하는게 옳은 표현이리라.
그러다보니 제대로 본 것도 있고 놓친 것은 수도 없이 많다.
이런 곳에서는 러시아 황실의 부와 사치와 호사스러움의 참모습을 보는듯 하다. 농노제 바탕 위에서 귀족들과 황실은 상상할 수 없는 부를 누렸으리라. 사치와 환락과 사회구조상 모순의 결과는 러시아 혁명이었고......
수백명의 사람들을 너끈히 수용할 수 있는 굉장한 공간을 몇개나 지나쳤다.
우연히 마주친 창문을 통해 밖을 보았더니 중앙 정원의 모습이 보였다.
입장을 기다리는 어마어마한 긴줄 속의 군중들이 자기 차례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표를 사고 검색대를 통과하려면 오늘 폐관 시간이 다 될지도 모른다.
우리는 오늘 우리에게 돌아온 행운을 감사하며 부지런히 이방 저방을 옮겨 다녔다.
초상화가 가득 걸린 통로를 지났다. 이 많은 인파들은 어디로 향하는 것일까?
천장의 색상들은 거의가 파스텔 톤이었다. 바티칸 박물관을 보는듯 하다.
박물관으로 쓰이는 루브르궁과 베르사이유궁의 화려함과 비교하여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다.
어느 정도 구경을 하고 나자 감탄사가 사라져버렸다.
공간마다 천장화가 다 달랐다.
금으로 만든 것인지 금칠을 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이정도면 상상을 초월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닥 장식과 대리석 기둥들.... 벽면을 장식한 거대한 그림들....
샹들리에들.....
나는 회화(그림)와 조각을 포함한 미술 전반에 골고루 무지한 내 지식의 얇고 천박함에 통탄해야만 했다.
누구를 묘사한 것인지 누구의 작품인지 도통 알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확인한 바에 의하면 프랑스의 철학자 볼테르 상이다. 우동 장 앙투앙의 작품이라고 한다. - 2017. 5. 19 수정함.
조각상조차 나를 비웃는듯 했다.
유리창에 맺힌 빗방울들이 나를 서글프게 만들었다.
다른 창밖으로 참모본부 건물이 보였다. 아까 우리는 저쪽 실내를 먼저 둘러 보고 이쪽의 메인 빌딩으로 옮겨온 것이다.
짧은 시간에 워낙 많은 작품들을 봐서 그런지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잠시 동안의 휴식이 필요했다.
하나하나 재확인해보기 위해 수없이 많은 사진을 찍어두었다.
이 여행기에 올리는 것은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여긴 아마 보석들을 진열해둔 방일 것이다.
실루엣 상을 새긴 펜던트 같은 것들이 가득했다.
초호화 그랜드 피아노를 보면서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황실의 공녀가 친 것일까? 아니면 황후가 전용으로 사용했을까?
황가에서 사용하던 물품들인지 수집한 작품들인지 구별이 안된다.
어떤 회랑에서는 태피스트리만을 만날 수 있었다.
이 정도면 어마무시하다.
성경에 등장하는 괴력의 사나이 삼손을 묘사한 것일까?
또 어떤 방에는 크고작은 부조 작품들만 가득 들어있었다.
계단과 통로도 예외는 아니었다.
서양에서 수집했다는 느낌이 드는 것들이 있는가하면 동양적인 모습을 드러낸 작품들도 있었다.
나는 이런 작품들에서는 실크로드 상의 유명한 도시 돈황(=툰황)을 떠올렸다.
돈황을 거쳐간 서유럽과 러시아의 탐험대들의 무용담과 만행은 널리 알려져 있다. 일본인 탐험대도 한몫을 챙겨갔고.....
누가 봐도 서역 냄새가 나지 않은가?
이런 작품들에서는 아프가니스탄을 중심으로 한 중앙아시아적인 분위기가 가득 풍겨녀 나옴을 느낀다.
나는 수집품의 범위를 보고 두손을 다 들어버리고 말았다.
이 정도이니 모두들 에르미타주라고 하는가보다.
진열된 작품들의 수준이 이 정도라면 감추어둔 것은 어느 정도일까?
에르미타주의 소장품들 면면은 진정 어느 정도일까? 나는 그게 궁금해졌다.
그러다가 이 타일화 앞에서 나는 다시 깜짝 놀랐다.
이건 알렉산드로스와 다리우스 아니던가?
이수스 회전(會戰)을 묘사한 것인지 가우가멜라 회전을 묘사한 것인지 구별이 되지 않았다. 터키 이스탄불 박물관에서 이 타일화 속에 등장하는 장면과 비슷한 조각품을 본 기억이 있다. 감탄을 하며 한참을 쳐다보다가 3층의 어떤 방으로 갔는데 나는 정말 다시 한번 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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