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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로 안동에서 경주까지 2

by 깜쌤 2017. 5. 10.

 

젊었던 날 나는 저 철교위를 달리던 기차에서 떨어져 죽을 뻔 했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 아찔해서 식은 땀이 다 날 지경이다.

 

 

나중에 개인적인 신앙 체험에 얽힌 이야기를 꺼낼 때 그 사연을 자세히 이야기하기로 하자. 지금은 그럴 여유가 없다. 

 

 

그리 오래 산 인생은 아니지만 나는 별별 일을 다 경험하고 살았다. 특히 신앙에 관한 이야기를 하라고하면 흥미진진한 소설책 한권은 충분히 쓸 수 있을 정도로 온갖 다양한 일을 겪었다.

 

 

나는 철교밑을 살핀 후 옛 도로를 찾아나섰다. 새로 만든 도로가 워낙 잘 되어 있어서 길이 어느쪽으로 연결되는지 잘 모를 지경이었다.

 

 

원래는 오늘 목표가 영천까지였지만 오후 1시경에 출발했으니 의성군 탑리를 지나서는 어디라도 들어가서 머물러야 할 것 같았다.

 

 

나는 암산유원지 옆 도로가에 자전거를 잠시 세웠다.

 

 

저만치 앞쪽에 자동차가 통과할 수 있는 아주 짧은 터널이 보였다.

 

 

오른쪽 강변 너머는 캠핑장인가보다.

 

 

눈앞에 보이는 개울은 미천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사방이 신록이었다. 연두색으로 물든 산천이 풋풋하고 싱그러운 아름다움을 자랑질 하는듯 했다. 

 

 

이 부근 절벽에 측백나무 숲이 있어서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암산유원지 건너편으로 멋진 길이 새로 나버려서 자동차로 휙하고 지나치는 곳이 되었지만 한때는 여기 인기가 제법 좋았다.

 

 

겨울날 얼음이라도 두껍게 얼어버리면 멋진 얼음판 놀이터로 변신하기도 했다.  

 

 

나는 천천히 터널을 통과했다.

 

 

 터널을 빠져 나와서 자전거를 세우고 뒤돌아보았다.

 

 

송화가루가 날려서 물에 떠있었다.

 

 

나는 다시 페달을 밟았다.

 

 

무릉을 지났으니 다음 목표는 운산이다.

 

 

엣날 5번 도로는 교통량이 적어서 라이딩하기에는 그저 그만이었다.

 

 

새로 만든 도로와 겹치는 부분은 옛길을 살려두어서 농로겸 자전거도로로 사용하는가보다. 

 

 

중앙선 철길이 도로를 따라오고 있었다.

 

 

중앙선 철길이 전철화되고 복선화까지 이루어지면 옛 철길은 어떤 운명을 맞을지 궁금해진다. 

 

 

굴다리를 지나 일직초등학교 앞을 지나쳐가기로 했다.

 

 

시내버스 정류장 유리 뒤로 학교 운동장이 보였다.

 

 

일직초등학교다.

 

 

한때는 안동군에서도 제법 큰 학교에 들어갔다.

 

 

이제는 행정구역도 바뀌면서 안동시로 되었지만 그래도 시골은 시골이다.

 

 

자동차 대기공간이 비행기 격납고처럼 보였다.

 

 

일직면사무소 방향을 향해 달려야하는데 길을 잘못 들고 말았다.

 

 

5번 국도 옛길치고는 폭이 좁다고 여기면서도 계속 달려나갔다.

 

 

길가로 모내기용 모판이 보였다.

 

 

색감이 너무 좋아 연신 감탄을 했다.

 

 

이런 동네라면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면서도 뭔가 찜찜해서 주민에게 물어보았더니 길을 잘못 든게 확실했다. 나는 다시 돌아나갔다.

 

 

이제 바른 길을 찾았다. 작은 산 언저리를 타고넘었더니 일직면소재지가 바로 나타났다.

 

 

면소재지에는 장터가 있는 법이다. 포장마차 이름이 특이하다. 몽실이 핫도그!  어린이로서 몽실 언니를 모르면 대한민국 어린이가 아닐 가능성이 높을 정도로 유명한 이름이다.

 

 

<몽실 언니>를 쓴 권정생 선생이 일직면사무소 부근의 조탑동에서 오래동안 사셨다. 

 

 

일직면사무소에서 조탑동까지는 제법 멀긴 해도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이니만큼 권정생 선생도 어쩌면 한번씩 이 길거리를 들락거리셨을지도 모른다. 

 

 

중국집이 보였다. 초등학교 저학년때였으리라. 어머니를 따라 기차를 타고 운산장에 와서 자장면을 처음 먹어본 기억이 난다. 나는 괜히 중국집 간판을 유심히 살폈다. 그땐 자장면 기다리는 시간이 왜 그리 길었던지.....

 

 

나는 장터 쉼터에서 자전거를 세워두고 잠시 쉬었다.

 

 

청소년기때 이 부근에 사는 친구와 친하게 어울려다녔다. 나중에 구미에서 교장까지 지냈다고 하던데 그 친구의 집도 이 부근에 있었기에 중학교 시절에 한번 놀러간 적이 있었다. 

 

 

 친구의 형이 육사를 나와 군장교 생활을 했다고 들었다.

 

 

 이제는 폐역이 된 운산역을 향해 달려가보았다.

 

 

집 한채가 허물어져가고 있었다.

 

 

기차통학을 하던 어느 여름날 아침이었다. 무엇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농약을 마셔버려서 게거품을 물고 축 늘어진 아가씨를 안고 눈물 범벅이 되어 기차에 오르며 마구마구 울어대었던 아가씨가 생각났다. 아마 언니가 동생을 안고 기차에 올랐으리라. 

 

 

그 장면이 내 기억 깊숙한 곳에 각인되어 있어서그런지 잊혀지지 않는다.

 

 

모두들 가난해서 그랬던 시절이어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사람마다 기가 막힐 정도로 억울하고 슬픈 사연들을 안고 살았다. 

 

 

 그게 응어리져서 한이 되었던가보다.

 

 

나는 담벼락에 붙어서서 역구내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추억 하나하나가 다 옛이야기로 변한 지금이지만 돌이켜보면 가슴아픈 일이 너무 많았다.

 

 

기차역에 얽힌 사연들이 없는 사람도 많겠지만 매일 기차역을 드나들어야했던 나에게는 풀어놓을 이야기가 참 많이 간작되어 있다.

 

 

들어갈데 다 들어가보고 사진 찍을 것 다 찍어가면서 달리다보면 오늘은 도대체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래도 자주 있는 일이 아닌만큼 나는 천천히 가더라도 사진을 찍어가며 가고 싶었다. 멀리 운산역이 보인다.

 

 

작은 개울가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달려서 조금이라도 빨리 5번 국도로 돌아가야만 했다.

 

 

운산역을 건너편 옆으로 남겨두고 속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산밑에 자리잡은 교회도 시장거리도 다 남겨두었다. 어차피 가지고 갈 수 없는 존재들이니까 남겨두어야하는 것들이지만 대신 사진으로 담아가면 된다.

 

 

가로수 한그루마다 까만 염소가 한마리씩 매여있었다. 목줄이 너무 짧아서 숨이라도 막히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해가며 달렸다. 달리면서도 살필 건 다 살피고 눈길 줄건 다 준다. 

 

 

5번 국도를 따라 조금 내려가다가 다시 도로가 시골마을에 들어가보기로 했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