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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16 중국-대륙의 오지:중경,귀주,광서(完)

봉황고성 9 - 다시 성안으로

by 깜쌤 2016. 11. 23.


부성문(阜城門)은 봉황성은 서문에 해당한다. 나는 지금 부성문 앞에 서있다. 이 문을 들어서야 봉황고성안의 나머지 부분을 감상할 수 있다.



좌우는 해자로 연결되어 있다. 성문 앞은 돌로 포장해버렸다. 해자를 따라 민가가 형성되어있고 해자 옆으로 길이 나있었다.



성문 바로 옆에는 부성문객잔이라는 여인숙이 버티고 있었다.



성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가자 성벽으로 오르는 계단이 나타났다. 관광객들은 성문을 통과할 때 표를 보여주어야만 했다.



성문 안 광장 한가운데 커다란 봉황 한마리가 비상준비를 끝내고 서있다.



봉황성의 상징물이리라.



상상속의 동물을 현실화시켜 잘도 만들어두었다. 중국인들이 너무 좋아해서 죽고 못사는 상상 속의 용도 멋들어지게 만드는 사람들인데 봉황 정도를 못만들까?



봉황고성은 4A급 경관구다. 그러니 나름대로는 유명세를 내고 있는 곳이라고 봐야한다.



나는 방금 전에 빌 브라이슨이 쓴 <발칙한 유럽산책>이라는 책을 다 읽었다. 그가 쓴 여행기 속에는 너무나 절묘한 풍자와 비틀기가 가득해서 지루한 줄을 모른다. 


 

거기에 비하자면 내가 끄적이는 이런 여행기는 완전 3류 따라지다.



내 여행기 속에는 어설프기 짝이 없는 사진이 그 분이 쓴 책보다 조금 더 많이 들어있을지는 몰라도 아무 재미도 없는 3류 하빠리 글이어서 공개하기가 부끄러워질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를 써가며 여행기를 남기려는 이유는 '나라고 하는 인간이 이런데를 와보았으며 이렇게 살았소'라고 하는 절규 때문이다.



마두장을 닮은 벽면에 봉황성이라는 글씨가 박혀있었다. 이런 장소에 저런 식으로 턱 버티고 서 있을 정도면 저명인사의 글씨이리라. 



가까이 가보니 총리 주용기의 글씨였다. 그가 호남성 장사 출신이니 호남성의 자랑인 봉황고성에 그의 글씨를 남기는게 호남인들의 자랑일 것이다. 호남인이라고 하니 대한민국의 어느 지방분들이 자기들 욕이라도 하는가 싶어 도끼눈을 뜨고 째려볼까 싶어 은근히 두렵다.



나는 호남인들의 자랑이자 자긍심의 상징이기도 한 심종문의 옛집 앞에 버티고 섰다. 구경을 하긴 해야겠는데 아쉽게도 문이 잠겨있는 것 아닌가?



심종문과 황영옥, 모택동과 유소기 등은 모두 호남인들이다.



심종문은 <변성>이라는 작품으로 노벨 문학상 언저리까지 접근했던 인물이다.



문제는 내가 그의 작품을 읽어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나라는 인간이 중국문학에 워낙 어두우니 변명할 말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번 여행을 통해 그의 이름만이라도 알게 되었으니 천만다행이다.



시기만 달랐을뿐이지 심종문과 같은 거리를 걸었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나는 기쁘다. 



골목에 어두움이 서서히 내려앉고 있었다.



겨울날씨여서 그런지 어스름이 밀려오자 더더욱 추워지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가게마다 불이 켜졌다.



사람들이 분주히 오가는 돌로 포장한 골목에도 어둠이 슬그머니 다가오고 있었다.


 

가게에서 중국춘란을 보다니....   영락없는 중국 춘란이다. 한때는 중국 춘란을 정신없이 구입하여 길렀었다. 그 서늘한 향기에 반해서 말이다.



악기가게인가보다. 여인은 안에 숨어서 연신 작은 북을 두드리고 있었다.



봉황에는 묘족이 제법 산다. 그래서인지 묘족이 운영하는 가게들이 다문다문 나타났다. 묘족이 만든 자수품인가보다.



묘족 집안에서 만들어파는 술인지도 모르겠다.



타강에서 잡아올린 조개들일까? 나는 골목구경하느라고 연신 한눈을 팔았다.

 

 

우체국 표시가 있길래 들어가서 우표를 찾았더니 없다고 했다.

 

 

전흥서 고거라....

 

 

청나라때 사람으로 무공을 세웠던 모양이다. 

 

 

민물 새우였을까?

 

 

 바다에서 워낙 먼곳이니 여기까지 흘러들어올 리가 만무하다.

 

 

골목에는 별별 먹거리들이 가득했다.

 

 

누가봐도 두부다. 하지만 취두부는 아닌듯 하다.

 

 

묘가족의 두부인가보다.

 

 

나는 터키 냄새가 슬금슬금 풍기는 케밥 비슷한 먹거리를 하나 사기로 했다. 

 

 

젊은 남자가 즉석에서 만들어주는데 아무리 봐도 케밥이건만 묘족 전통음식으로 선전하고 있었다. 가격은 10원이었다.

 

 

 

위구르인 비슷한 외모를 가진 남자가 이 음식에 흥미를 느끼는지 살펴보고 있었다.

 

 

이리저리 걷다보니 다시 홍교부근으로 나왔다.

 

 

홍교를 다시 건넜다.

 

 

벌써 저녁 6시가 되었다.

 

 

타강변을 따라 걸었다.

 

 

어디서 저녁을 먹고 들어가야할텐데....

 

 

아침에 건넜던 다리를 다시 건넜다.

 

 

강변으로 조명이 켜지고 있었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