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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살이/세상사는 이야기 2 My Way

최강지진 체험기-길기만 했던 24시간

by 깜쌤 2016. 9. 13.

 

2주일에 한번씩 병원에 모여 아는 분들과 저녁 공부를 하는 모임 가지기를 꽤 오래전부터 했다. 어제가 바로 모임을 갖는 그날이다. 공부를 마친 뒤 늦은 식사를 하기 위해 용강국밥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 집 국밥은 깔끔하기로 소문나있다. 모임때마다 먹는 것은 따로돼지국밥이다. 

 

 

음식이 나왔길래 부추를 새우젓으로 간을 맞추고 부추를 넣어서 살짝 익힌 뒤 국물을 몇숟갈 입에 넣고 있는데 엄청난 소리가 엉덩이를 들썩거리게 만들었다.

 

 

시멘트길이나 아스팔트 도로를 파내기 위해 착암기나 초대형 굴착기를 도로에 꽃고 '드드드드드'하는 소리와 함께 파내는 그런 소리가 바로 옆에서부터 나기 시작하더니 이내 엉덩이 밑을 지나 확산되기 시작했다. 

 

 

나는 순간적으로 두가지 생각을 떠올렸다. 엄청난 지진 아니면 이웃도시 어디가 핵공격을 받은 것이라고 상상했다. 정말 짧은 순간에 떠올린 생각이었다. 

 

 

그때가 7시 44분경이었는데 짧은 순간이나마 '누가 이 밤중에 무식하게 대형공사를 시작하지' 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순간 초대형 지진일 것이라는 느낌이 강력했기에 식사를 하다말고 밖으로 뛰쳐나가 상황을 살펴보았다. 

 

 

용강국밥집의 음식은 맛있고 정갈하기로 소문이 나 있지만 나는 순식간에 입맛과 밥맛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 다음에 밀려온 것은 두려움과 공포였다.

 

 

땅이 흔들리고 건물이 격심하게 흔들린 것도 무서웠지만 땅 밑에서 솟아나와 사방을 울리며 귓전을 때린 그 소리가 내면속에 도사린 공포심을 불러 일으킨 것이 더 두려웠다. 

 

 

"이 정도로 격심하게 흔들렸으면 우리집은 어떻게 되었을까?  아내는?"

그런 생각이 나자 갑자기 불안해졌다. 집으로 전화를 해보았더니 연결이 되지 않았고 휴대전화를 해봐도 아내가 받질 않았다. 식당의 텔레비전을 살펴보았는데 별다른 자막이 뜨지 않았다. 스마트폰으로 인터넷 접속을 해봐도 눈에 띄는 뉴스가 뜨질 않았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다른 분의 휴대전화기에 재난안전청에서 보낸 문자가 뜨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초대형 지진이 엄습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같이 식사를 하셨던 분들도 이내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는 식사가 끝나는대로 각자 집으로 향하셨다.

 

 

놀랍게도 진앙지가 경주남서쪽 10킬로미터 부근이라는 뉴스가 나오기 시작했다. 거기라면 지금 사진에서 보는 왼쪽 끝부분일 가능성이 높았다. 

 

 

 

나는 그제서야 안심이 되기 시작했다. 내남면이라면 원자력 발전소가 위치한 지역과는 제법 떨어진 곳에 있기 때문이었다. 이 정도면 천우신조라고 해야한다. 양남쪽이라면 상상하기조차 하기 싫은 끔직한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빨간색 점 : 2016, 9,12 지진 진앙지

초록색 점 : 원자력 발전소 인근지역 - 일부러 정확하게 표시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아주셨으면 한다.   

 

 

                                              <내남면과 인접한 경주시 율동부근의 모습>

 

나는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폭발사고를 상기했다. 젊은이들 가운데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폭발사고를 아는 이가 있다면 내가 상상했던 것이 무엇인지 조금은 이해하지 싶다. 잠시 위키 백과의 글을 앞머리 부분만 인용해보기로 하자.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 또는 체르노빌 참사

 

(영어: Chernobyl disaster)는 1986년 4월 26일 1시 24분(모스크바 기준 시간)에 소비에트 연방 우크라이나 SSR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에서 발생한 폭발에 의한 방사능 누출 사고를 말한다. 이 사고로 발전소에서 누출된 방사성 강하물이 우크라이나 SSR벨라루스 SSR, 러시아 SFSR 등에 떨어져 심각한 방사능 오염을 초래했다. 사고 후 소련 정부의 대응 지연에 따라 피해가 광범위화되어 최악의 원자력 사고가 되었다.

 

간략히 앞부분만 인용했지만 이 사고로 전세계는 공포에 떨어야했다. 최근에 벌어졌던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한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의 경우를 떠올리면 되겠다.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폭발사고에 대해 더 알아보고 싶은 분들은 아래 주소를 눌러서 방문해보기 바란다.

 

 

 

곧 이어 뉴스에서는 내남초등학교 부근이 진앙지라고 전하기 시작했다. 나는 내남초등학교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몇년전 그 학교의 초청을 받고 선생님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한적이 있었기에 학교모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초저녁이라고는 해도 이미 밤중이니 학교에 아이들은 없었을 터이지만 학교를 지키는 분은 혼비백산하셨지 않았을까 싶다. 같이 식사를 함께 했던 분들과 헤어지고 난 뒤 이번에는 내가 섬기는 교회가 걱정되어 찾아가 가보았다. 

 

 

이상이 없는듯 했다. 위 사진속에서는 눈이 내린 장면이지만, 실제 사건이 터진 어제 저녁에는 비가 슬슬 내리고 있었다. 나는 집으로 향했다. 멀리서 바라본 우리집은 아무 이상이 없는듯 했다. 아내를 안심시켜주고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데 드디어 본지진이 엄습했다. 

 

 

거실 바닥이 심하게 흔들린다는 느낌을 받자말자 곧장 밖으로 뛰어나갔다. 아내는 마음이 급했던지 신발도 신지않고 마당으로 내려섰다. 소방도로와 골목으로 동네사람들이 쏟아져나왔다. 모두들 놀라고 당황해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아이고 세상에. 뭐가 이런 일이 다 있노?"

"참말로 이래가 우찌 살겠노?"

그런 소리들이 골목을 메아리쳤다.

 

 

집이 흔들리자말자 밖으로 나왔기에 이번에는 첫번째 지진처럼 격심한 진동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실내에 머무르고 있었던 사람들은 극심한 충격과 흔들림, 그리고 더 큰 공포를 느낀듯 했다.

 

 

지진이 지나간 것으로 여기고 있다가 더 강력한 것으로 다시 얻어맞았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으리라. 순간적으로 심장이 뛰고 두려움을 느꼈지만 이내 마음이 평안해졌다. 본지진이 지나고 나자 나는 마음을 추스리고 2층 서재로 올라갔다. 

 

 

화분이 넘어져서 깨어져있었고 바닥에 소품 몇개가 나딩굴고 있었다. 이 정도 피해라면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지축이 흔들리는 느낌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원자력발전소가 안전하고 무너진 집이 없다는 것은 기적이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정도 물건을 정리하고 난 뒤 나는 10시 반정도가 되어 잠자리에 들었다. 의외로 마음이 평안했다. 아내는 벌써 자느냐고 성화였지만 나는 이내 깊은 잠에 떨어졌다. 아침에 눈을 뜨자 아내는 내가 코까지 골아가며 정신없이 자더라고 했다. 

 

 

2016년 9월 13일 화요일, 새날이 밝았다. 나는 출근길에 올랐다. 오늘까지 프리랜서 선생을 하기로 계약을 했기 때문이다. 그 다음엔 다시 실업자가 되는 것이다. 사실을 말하자면 나는 올해 1학기만 하더라도 세군데 학교에서 장기계약 제안을 받았었다. 하지만 내가 부드럽게 거절했었다.

 

 

아침 해가 새로 떴다. 새로운 태양이 다시 떠오른다는 것은 지구가 끝장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다. 오늘따라 하늘이 맑았다. 어제 저녁까지 비가 내렸기 때문이리라.

 

 

어제 밤의 극심한 공포와 두려움이 사라진 것이다. 마치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식으로 자연이 시치미를 뚝 떼는 것만 같았다.

 

 

백로인지 왜가리인지는 잘 구별이 안되지만 하얀 몸통을 가진 새들이 벌판에서 평화롭게 먹이를 구하고 있었다.

 

교실문을 열고 들어섰더니 피해현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물백묵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사물함 문이 열려 있었다.

 

 

학교 건물도 심하게 흔들렸다는 증거나 마찬가지다.

 

 

오늘을 마지막으로 헤어져야하는 아이들이지만 지진 피해를 이야기해보도록 했더니 모두들 술술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자기집 담장이 무너졌다는 아이도 있고 책장이 넘어졌다는 아이도 있었다. 물건이 깨어지고 기왓장이 떨어졌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그래도 다친 아이가 없었으니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일을 계기로 하여 모두들 자연의 엄청난 위력을 깨달았으리라.

 

 

                           <사진 속에 보이는 산이 경주 남산이다. 저 산 너머가 진앙지가 된다>

 

어제 저녁부터 오늘 저녁까지 참으로 길고 긴 24시간을 보낸듯 하다. 언제 또 다시 강력한 자연재해가 발생하여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소중한 평온함을 앗아갈지 모르지만 이시간 만큼이라도 평화로운 시간을 가진 것을 감사하며 하루를 접고 싶다. 어제 저녁부터 종일토록 안부전화를 해주신 여러 지인분들께 감사인사를 전한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