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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15 아르메니아, 조지아, 터키(完

터키 국부를 모신 아느트 카비르 1

by 깜쌤 2016. 9. 3.

 

늦은 점심을 먹어야했기에 어제 저녁을 먹었던 식당에 다시 갔다.

 

 

일행이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터키 식당에서 빵은 기본으로 준다는 사실을 기억해두자.

 

 

나는 어제 앙카라로 올 때 염호 부근 식당에서 사먹은 케밥을 다시 꺼내 먹었다. 케밥 덩치가 커서 어제 다 못먹고 남겼던 것이다. 

 

 

 철저히 절약하는 것이 몸에 배인 나는 그 정도 행동은 보통으로 한다.

 

 

어제 덜 먹고 남겨두었던 이란산 대추야자도 다 먹었다.

 

 

식당에서 서빙을 했던 이 청년은 고향이 이라크의 모술이라고 했다.

 

 

낯선 나라에서 잘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부디 터잡고 잘 살기 바란다.

 

 

케밥 종류는 참으로 다양하다. 식사 후 나는 호텔에 돌아와 잠시 쉬었다.

 

 

그런 뒤 다시 외출 준비를 했다.

 

 

오후 3시경에 약을 먹고 호텔을 나와 택시를 타고 아느트 카비르에 가보기로 했다. 요금은 15리라 정도가 나왔다.

 

 

아느트 카비르! 거기가 뭣하는 곳이냐고?

 

 

근대 터키를 건국한 케말 파샤의 시신을 안치한 곳이다.

 

 

쉽게 말하자면 터키 국부(國父)를 모신 곳이니 영묘라고 할 수 있겠다.

 

 

입구에서는 소지품 검사를 한다.

 

 

터키인들이 아주 신성시하는 장소이기 때문이리라.

 

 

입구를 통과하면 사자가 늘어선 '사자의 길'이 나타난다. 

 

 

엄청난 수의 터키인들이 경외심을 가지고 방문하는 장소이기에 인파로 들끓었다.

 

 

어디에나 철없는 아이들과 젊은이들이 있기 마련이다.

 

 

사자 등에 올가가는 아이들이 발견될 때마다 경비원들이 호각을 불었다.

 

 

여기가 바로 아느트카비르다.

 

 

다음 백과사전에서 그 기본적인 의미를 알아보았다.

 

 

 

아느트카비르(Anıtkabir)는 터키의 초대 대통령이자 전쟁 영웅인 무수타파 케말 아타튀르크의 영묘이다. 아느트카비르는 추모 묘(memorial tomb)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아느트카비르는 앙카라에 위치해 있다. 1941년 터키 정부가 개최한 무수타파 케말 아타튀르크의 묘를 만들기 위한 디자인 대회에서 선정된 건축가이자 교수인 에민 오낫(Emin onat)과 조교수인 아흐멧 오르한 아르다(Ahmet Orhan Arda)가 설계했다.

 

또한, 아느트카비르에는 터키 공화국의 두번째 대통령인 이스메트 이뇌뉘의 묘도 조성되어 있다. 이스메트 이뇌뉘의 묘는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영묘의 정 반대편에 놓여 있다. 아느트카비르는 1966년에서 1987년까지, 그리고 1997년부터 2009년까지 터키 리라 도면에 그려져있었다.

 

 

 

나는 이런 시설물을 보며 부럽다는 생각을 했다.

 

 

우린 국부고 뭐고 존경받는 인물이 없지 않은가?

 

 

지역감정과 편협한 자기 논리에 갇힌 사람들은 편을 갈라 상대방이 존경하는 인물을 깎아내리기에만 바쁜듯 하다.

 

 

이젠 지겹다. 좌우파의 대립논리와 극심한 지역감정!

 

 

그걸 지겹도록 우려먹고 이용해쳐먹는 더럽고 더럽고 추접스런 정치인들......

 

 

거기에 놀아나는 일부 철없는 사람들......

 

 

존경 받을만한 인물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인정하지 못하는 우리나라 현실이 서글퍼졌다.

 

 

터키는 다른 민족이 섞여사는 나라다. 

 

 

통합의 필요성 때문에라도 영웅 만들기가 필요할지 모른다.

 

 

나는 영묘 부근으로 다가갔다.

 

 

아느트카비르에 올라서면 앙카라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앙카라는 언덕에 자리잡은 도시다.

 

 

메마름이 가득한 도시지만 이 언덕에는 푸르름으로 채웠다.

 

 

영묘의 시설과 규모는 장대하지만 구조는 지극히 간단하다.

 

 

전면에 세운 기둥의 규모는 경비병과 비교해보면 간단히 짐작해볼 수 있다.

 

 

무슨 말인지는 모르지만 엄숙한 기운이 감돈다.

 

 

나는 위를 쳐다보았다.

 

 

글자를 따라가며 더 높이 쳐다보았다.

 

 

간단하고 단순하되 범상치 않은 아름다움을 지닌 구조물이다.

 

 

터키 국부로 추앙받는 그를 소개하려면 엄청난 양의 글이 필요할 것이다.

 

 

지겨움을 막기 위해서라도 위키 백과에서 소개하는 그의 일생을 가장 간략하게 알아보자.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Mustafa Kemal Atatürk, 1881년 5얼 19일 ~ 1938년 11월 10일)는 터키의 육군 장교, 혁명가, 작가이며 터키 공화국의 건국자이자 초대 대통령이다. 아타튀르크는 “터키의 아버지”를 뜻한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육군 장교였고, 오토만 제국의 패배 이후 터키 국민 운동 소속으로 터키 독립 전쟁을 주도하였다. 일찍이 청년 튀르크에서 활동하였으며, 갈리폴리 전투에서 영국과 프랑스 군대의 공세를 저지한 탁월한 장군이기도 하였다. 임기 중인 1938년에 사망하였다.

 

 

 

나는 안으로 들어갔다.

 

 

많은 이들이 그의 시신이 안치된 대리석 관 앞에서 경건한 자세로 관람하고 있었다.

 

 

바로 저 관이다.

 

 

경비병이 눈을 부릅뜨고 엄숙한 자세로 지키고 있다. 

 

 

남에게 존경받는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경멸의 대상이 되는 것보다는 존경을 받는 것이 훨씬 더 좋다는 것을 누구나 다 안다.

 

 

그런데 왜 존경받는 길이 그렇게 어렵고 힘들까?

 

 

사심없이 살고 공정하게 살며 남을 위해 살면 존경은 쉽게 따라온다.

 

 

나도 그 방법은 잘 아는데 실천이 어렵다. 그게 문제다.그건  어제의 내 문제였고 오늘의 내 문제이며 내일의 숙제이기도 하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