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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로 청송에서 경주까지 4- 빙계서원과 빙계

by 깜쌤 2016. 6. 15.

 

나는 빙월루 앞을 지나 계단을 오른 뒤 공유청 건물쪽으로 다가갔다.

 

 

공유청 뒤쪽으로 가자 쪽문이 보였다.

 

 

저 문을 통과해서 안으로 들어가면 강당이 나오리라. 

 

 

그동안 꾸준하게 서원구경을 다닌 결과, 이제 서원의 대략적인 짜임새에 약간 눈을 뜨게 되었다.

 

 

석축을 쌓고 그 위에 중심이 되는 강당 건물을 지었는데 돌계단이 여러군데 설치되어 있었다.

 

 

빙계서원이라는 글씨가 새겨진 현판을 달고 있었다.

 

 

아까 보았던 빙월루 건물이다.

 

 

강당 좌우로 동재와 서재를 거느리고 있었다.

 

 

나는 빙월루 마루에 올라가보았다.

 

 

서원앞을 감돌아 흐르는 빙계가 저만큼 앞에 흐르고 있었다. 멋진 곳이다.

 

 

빙계는 서원 앞을 이리저리 감아흐르고 있었다.

 

 

서재쪽으로 내가 타고온 자전거가 보였다.

 

 

빙월루에서 다시 뒤로 돌아서서 강당을 바라보았다.

 

 

서재는 시습재라는 이름을 달고 있다.

 

 

그렇다면 동재는 학이재가 될 것이다.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에서 따온 말이라는 것은 어지간하면 누구나 다 아는 말이기 때문이다.

 

 

나는 강당으로 다가가서 현판을 살펴보고 싶었다. 강당 이름은 무엇일까?

 

 

서재 맞은편에 자라집은 동재 건물을 멀리서 살핀 뒤 돌계단을 올랐다.

 

 

강당 이름은 명교당이었다. 명교당 마루에 걸터 앉으려다가 참았다.

 

 

방금 내가 올라갔다가 내려온 빙월루가 앞에 있다.

 

 

동재 뒤로는 얕은 산이 가로막아섰는데 그 아래로 빙계가 흐르고 있었다.

 

 

 나는 명교당 뒤를 돌아서 사당으로 가보았다.

 

 

사당은 숭덕사라는 이름을 달고 있었다. 숭덕사로 오르는 돌계단은 셋이다.

 

 

산비탈을 이용하게 절묘하게 지었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이 건물들은 금세기에 들어와서 복원했다고 한다.

 

 

제일 처음에 건립한 것은 1500년대 후반이었는데 당시 이름은 장천서원이었단다.

 

 

빙계서원에서는 모재 김안국 선생을 봉향했는데 나중에 회재 이언적, 서애 류성룡, 학봉 김성일, 여헌 장현광선생을 모시게 되었다고 전한다.

 

 

내가 견문이 좁은 사람인지라 여헌선생은 어떤 업적을 남기셨는지 잘 모르겠다. 내 기억으로는 처음 듣는 성함이 아닐까 싶었기에 은근히 부끄러워졌다.

 

 

나는 다시 빙월루 앞을 지나 자전거 있는 곳으로 갔다.

 

 

빙계서원을 보았으니 이제는 빙계를 살필 차례다.

 

 

이곳을 흐르는 물줄기는 낙동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수많은 지류가운데 하나다. 

 

 

원래 이름은 쌍계천이지만 현지에서는 여기를 빙계라고 부른다.

 

 

아까부터 빙계, 빙계했으니 도대체 '빙'자가 무슨 의미를 가진 글자일까하고 궁금해하는 분이 있겠지만 짐작하신대로 글자는 얼음을 의미한다.

 

 

휴게소처럼 생긴 공간의 의자에 잠시 걸터앉았더니 앞에 보이는 나무판에 시 한 수가 적혀있었다.

 

 

이런 곳에도 틀림없이 물고기가 살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물고기를 잡아 배를 따는 분이 보였다.

 

 

계곡을 가로막은 큰 바위는 조선시대 중기의 대지진때 인근 산에서 굴러떨어진 것일까?

 

 

역사 기록에 의하면 대지진 후에 이쪽으로 물길이 생겨났다고 하는데.....  맞는 말인지 모르겠다.

 

 

작은 보를 만들고 그 위로 구름다리 비슷한 것을 만들어 걸어두었다.

 

 

도로는 깔끔하게 포장되어 있었다.

 

 

안내도를 보았더니 제법 볼거리가 여기저기 산재해있는 것 같았다.

 

 

하나하나 세밀하게 살필 여유는 없었기에 일단 풍혈과 빙혈부터 찾아보고 싶었다.

 

 

나는 바로 올라가지 않고 마을쪽으로 들어가서 접근해보기로 했다.

 

 

도로를 따라 동네 안으로 조금 더 들어갔다.

 

 

도로는 마을을 감아돈 뒤 상류쪽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위쪽 어딘가에 킴핑장이 있는가보다.

 

 

나는 돌담길이 이어진 마을 안길로 들어갔다. 길을 잃을 염려는 없었다.

 

 

모퉁이마다 빙혈로 가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집 마당에 텔레비전 브라운관이 줄을 지어 있었다.

 

 

이 집에 살던 분은 어디로 간 것일까? 폐가를 보면 마음이 아리다.

 

 

이런 길을 보고 싶었기에 빙혈로 바로 직진하지 않고 골목길로 들어섰던 것인데 결과적으로 바른 선택을 한게 되었다. 

 

 

 이제 여기만 오르면 될 것 같다. 도대체 빙혈과 풍혈은 어떻게 생긴 것일까?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