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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16 중국-대륙의 오지:중경,귀주,광서(完)

황비홍과 서비홍

by 깜쌤 2016. 6. 2.

 

황비홍(黃飛鴻)! 간자로는 黄飞鸿이라고 쓴다. 우리식으로 읽으면 황비홍이지만 중국 표준어로는 후앙페이홍으로 소리나지 싶다. 중국 남부 사람들이 쓰는 광동어 발음으로는 홍페이훙 정도가 되지 않을까? 

 

 

왜 갑자기 뜬금없이 황비홍이 등장하는가 싶어 어이없어 하는 이가 있을지도 모른다. 황비홍은 실존인물이다. 영화 매니아로서 황비홍을 모른다면 틀림없이 이티(ET)이리라.

 

 

2016년 1월 15일 금요일, 아침으로 쌀국수를 먹었다. 호텔을 옮겨볼까 싶어서 이강변에 있는 고급호텔을 알아보았더니 380원을 불렀다. 이강을 내려다보며 낭만에 젖어볼까 했는데 비싼 가격때문에 포기했다.

 

 

관전가(官前街) 앞 쌀국수 집에서 국수를 먹었다. 관전가니까 부근에 관청이 있다는 말이다. 실제로 양삭현 행정정부가 바로 부근에 있었다. 양삭현 행정정부청사 바로 옆에 서비홍이 살았던 집이 있다. 황비홍이 아닌 서비홍!

 

 

식사를 하고 난 뒤 나는 부근에 있는 광오객잔에 들어가 방이 있는지를 물었는데 카운터의 아가씨가 우리말을 능숙하게 잘 하는 것이었다. 물론 방이 있단다.

 

 

혹시 조선족이 아닐까 싶어 아가씨의 고향을 물어보았더니 놀랍게도 장가계다. 천하절경을 자랑하는 장가계말이다. 고향이 장가계라니 호남성사람이다. 중국 근대사에서 호남인 가운데 출중한 인물이 많이 등장했다. 그녀는 인물도 좋고 실력도 있었다.

 

 

골목쪽으로 붙은 방이 80원이었다. 온풍기도 있었으니 한번 묵어보기로 했다. 짐을 싸서 한시간 뒤에 새로 와서 체크인하기로 약속하고 광오객잔을 나왔다. 아리산호텔로 돌아가서 짐을 챙겨 체크아웃을 한 뒤 보증금을 받아가지고 나왔다.

 

 

아가씨 이름은 순작옥씨다. 대학생이었고 계림까지 와서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했다. 한국어는 학원에서 배웠다는데 수준급이었다.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손님 가운데 한국인이 한분 계시다고 해서 관심을 가졌는데 나중에 만나게 되었다.

 

 

체크인을 하고 짐을 풀어놓은 뒤 일단 광오객잔 바로 옆에 있는 서비홍 고가에 가보았다. 서비홍(徐悲鴻)은 화가다. 이름에 슬프다는 뜻을 가진 비(悲)를 쓰다니 참 으로 신기한 인물이라고 여겼다.

 

 

황비홍은 무술가며 한의사였고 항일투쟁운동가이지만, 서비홍은 화가며 항일투쟁운동가였다. 우리말로 하면 비홍이라는 같은 소리가 나는 이름이 되지만 한자로는 다르다. 황비홍은 날 비(飛)자를 쓰고 서비홍은 슬플 비(悲)를 쓴다 홍(鴻)자는 같은데 기러기라는 뜻이다.

 

 

황비홍은 중국 남쪽 광동성 불산(佛山) 출신이고 서비홍은 중국 동쪽 강소성 출신이다. 둘 다 중국 근대사의 거목이 되었다. 

 

 

그가 살았던 집은 소박했다. 단층이었고 수수했다.

 

 

입구에 서비홍고거라는 글씨가 새겨진 현판이 달려있었다.

 

 

안으로 들어갔더니 신산한 삶을 살았던 그의 흔적이 조금 남아있었다.

 

 

한쪽 벽면에 그의 사진이 걸려있었다.

 

 

바로 이 사람이다. 우리나라 화가였던 이중섭이 소 그림으로 유명하다면 서비홍은 말 그림으로도 유명하다. 그의 작품이 어느 정도의 가격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다면 아래 글상자의 주소를 눌러보기 바란다. 1951년에 그린 작품이 440억원에 팔렸다는 기록을 참고로 하기 바란다.

 

 

 

 

실내를 둘러보고 난 뒤 나는 다시 마당으로 나갔다.

 

 

그리 크지도 않은 마당에는 전각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몇 사람이 둘러앉아 잠시 차라도 한잔 나눌 수 있는 돌탁자가 마당 한가운데를 장식하고 있었다. 

 

 

서비홍이라는 이름이 뚜렷한 이 작품은 누구의 것일까?

 

 

호남(好男) 모습으로 잘 생겼다. 어찌보면 얼굴에 시인 박인환의 느낌이 들어있기도 한 것 같은데.....

 

 

서비홍이 말그림을 잘 그린 것으로 유명하다고 했는데 황비홍은 사자춤을 잘 추었던 것으로도 널리 알려졌다. 황비홍은 무술인답게 사자 탈춤에 일가견이 일가견이 있었다고 한다. 서비홍은 일찌감치 프랑스유학을 다녀온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1895년생이었다. 

 

 

 서비홍고거를 나오면 바로 앞에 양삭현 행정정부 건물이 보인다.

 

 

뒤로 더 나가면 이강이 자리잡고 있고......

 

 

나는 다시 서가로 나갔다.

 

 

서비홍 고거 앞을 지난다.

 

 

비가 그치고 있었다.

 

 

광주에서 추위를 피해 중국에 혼자 여행을 오신 그 선생님은 잘 계시는지 모르겠다. 계림을 떠난 뒤에는 남녕으로 간다고 하셨는데.....

 

 

자, 이제 자전거를 빌리러 간다.

 

 

양삭 부근의 흥평도 유명하지만 그보다 더 알아주는 멋진 진경산수화를 보러 가야한다. 서비홍은 중국인 최초로 유화로 중국산수를 그렸던 인물로도 알려져 있다.

 

 

중국인들이 즐겨그리는 산수화의 배경이 되는 풍경을 보려면 계림으로 가야하지만 계림 안에서는 양삭이 더 낫고 양삭 안에서는 우룡하가 최고라는 평이 있다.

 

 

나는 지금 자전거를 빌려타고 우룡하 탐방을 떠나려는 것이다.

 

 

자전거를 빌리려면 서가에서 시도하는게 최고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우룡하 탐방을 떠나므로 어떤 일이 있어도 경험해보야야한다.

 

 

거듭 강조하지만 계림을 가게되면 반드시 양삭과 흥평, 우룡하를 봐야한다.

 

 

양삭에서 숙박을 하려면 서가부근에서 머물면 된다.

 

 

서가에는 온갖 편의시설과 오락시설, 음식점들이 몰려있어서 불편함을 모르게 되어있다.

 

 

방콕에는 전세계의 배낭여행자들이 몰려드는 카오산로드가 있다. 서가는 중국판 카오산로드라고 보면 된다.

 

 

나는 골목에서 자전거대여점을 찾아냈다.

 

 

자전거 한 대당 보증금이 400원이다. 보증금을 중국에서는 야진이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절대 여권을 맡기지 말라. 차라리 야진을 주는게 낫지 어떤 일이 있어도 여권은 맡기는 법이 아니다.

 

 

나는 내 체격에 맞는 자전거를 골랐다. 브레이크가 잘듣는지를 꼭 확인해두고 고장 여부도 꼼꼼하게 살펴두는게 좋다.

 

 

쉽게 결정하지 말고 그 자리에서 반드시 타보고 결정할 것이며 자물쇠 부착여부도 반드시 확인해야한다.

 

 

자전거 분실과 고장을 대비해서 나는 사진을 찍어두었다.

 

 

내가 빌린 자전거는 23번이었다. 자전거 대여료로 하루 50원을 불렀지만 끈질기게 20원을 불러 한 대당 20원에 하루를 빌리기로 했다. 두대 보증금으로 400원을 주었더니 400원 표시가 된 카드를 내어주었다. 카드를 지갑에 넣고 자전거를 끌고 서가 거리로 나갔다. 

 

 

자, 이제 출발이다. 어제 흥평으로 갈때 걸어갔던 길을 이번에는 자전거를 타고 달렸다. 우룡하! 얼마든지 기대해도 좋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