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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15 중국-붉은기의 흔적:강소,호남(完)

소주성의 석양

by 깜쌤 2015. 7. 6.

 

나는 인민대로 위로 올라갔습니다. 서주성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대로가 인민대로입니다.

 

 

다리위로 올라서니 해자 양쪽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다리 밑에는 배들이 몇척 떠있었습니다.

 

 

다리를 지키라는 의미에서 돌사자상을 만들어 두었을까요?

 

 

이동 만두장사 아주머니가 도로 위에서 잠시 쉬고 계셨습니다. 인도와 자전거도로와 자동차도로가 명확하게 구별되어 있었습니다. 

 

 

도시에서 석양을 만나는 것은 행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리를 다 건너가자 운하쪽으로 접근할 수 있는 산책로가 보였습니다.

 

 

금추원이라는 이름을 가진 정자의 처마는 하늘로 곧장 날아 올라갈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운하겸 해자 건너편에 소주기차역이 보였습니다.

 

 

멀리서 보니 그 웅장한 자태가 유감없이 드러납니다.

 

 

우리가 방금 건너온 다리입니다. 다리 위에 인도통행자를 위한 건물을 올릴 줄 아는게 중국인들의 의식구조인가 봅니다.

 

 

우리는 성벽에 걸린 해를 보며 아래로 내려갔습니다.

 

 

소주역의 모습입니다. 잘 접은 듯한 느낌이 드는 지붕선이 단정한 느낌을 줍니다.

 

 

석양빛을 받은 인민대로위의 다리가 성채같은 느낌을 주었습니다.

 

 

해자 건너편은 소주역입니다만 현대판 성루처럼 여겨졌습니다.

 

 

우리는 성문을 향해 걸었습니다.

 

 

역시 물가에는 수양버들이 제격입니다.

 

 

소주참이라는 글씨가 눈앞에 다가왔습니다. 참()은 기차역이나 버스터미널을 의미하는 글자입니다.

 

 

이제 성문까지 다왔습니다.

 

 

운하에서 낚시를 즐기는 태공이 보입니다.

 

 

소주역을 수호하는 자세로 우뚝선 거대한 인물상이 인상적입니다.

 

 

기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해자가로 내려와서 시간을 죽이고 있었습니다.

 

 

여기서는 어떤 고기가 잡히는지 궁금합니다.

 

 

중국의 여러 도시에는 옛날 성벽이 온전하게 남아있더군요.

 

 

소주의 성벽은 언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소주성의 최초 흔적은 오나라때 건축된 것이 시초라고 전해집니다. 기록은 있지만 정확한 위치에 관해서는 '글쎄올시다'가 되겠지요.

 

 

처음은 이런 모습이 아니었겠지요.

 

 

이 성문의 이름이 평문입니다.

 

 

평문(平門)! 평화를 만들어가는 문이라는 말일까요?

 

 

평문 바로 맞은편이 소주기차역입니다.

 

 

서쪽하늘이 조금씩 붉게 물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저멀리 다리쪽에서부터 걸어온 것이죠.

 

 

평문 안으로 들어가보았습니다.

 

 

성벽이 엄청 두텁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성문 안으로 들어서면 도로가 나옵니다. 시가지가 되는 셈이죠.

 

 

우리는 성벽위로 올라갔습니다. 계단이 아닌 비탈길입니다.

 

 

소주성벽위의 길도 엄청 넓긴 하지만 서안에 있는 명나라시대의 성벽이 소주성벽보다 더 넓고 웅장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성벽위 길도 단정하게 돌로 포장되어 있었습니다.

 

 

성벽을 둘러본 뒤 성문 위 누각에 가봅니다.

 

 

누각에 오르니 소주기차역의 모습이 더 확실하게 드러납니다.

 

 

산책나온 현지인들이 강아지를 끌고 왔네요. 개들도 평문위에서는 으르렁거림없이 서로간에 평화로워지는가 봅니다.  

 

 

정말 평화로운 모습입니다.

 

 

나는 성벽위에 붙어서서 소주역을 살폈습니다.

 

 

'태평천국의 난'이 벌어졌을때 태평천국군이 소주성을 점령합니다.

 

 

물론 나중에는 청나라 군대가 다시 점령하는 것이지만 말입니다.

 

 

이 부근에서도 전투가 벌어졌겠지요.

 

 

대포가 등장하면서 성벽의 중요성과 기능과 의미는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이제는 상징성만 남은 셈이지요. 앞에 보이는 이 운하가 산당가로 연결됩니다.

 

 

산당가 방향으로 해가 떨어집니다.

 

 

평문 위 성루에서 잠시 시간을 보냈으니 이제는 시내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습니다.

 

 

시내로 돌가가서는 저녁식사부터 해결해야지요.

 

 

우리는 이번에도 걸어가기로 했습니다.

 

 

벌써 몇번씩이나 걸어본 거리이니 이제는 꽤 익숙합니다.

 

 

소주성안의 건물들은 한결같이 높이가 낮습니다.

 

 

귀가하는 사람들이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만치 앞에 북사탑이 나타났습니다.

 

 

아무래도 일정상으로 보아 탑위로는 올라가보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하면 밑에서라도 봐두어야지요.

 

 

"지은보은"!  '은혜를 알고 은혜를 갚는다'라는 뜻이겠지요.

 

 

살아보니까 과연 그렇더군요. 부모님의 은혜만큼 큰게 또 있을려구요?

 

 

나는 돌아가신 부모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길을 걸었습니다.

 

 

지하철 공사장 옆을 지나고......

 

 

호텔부근 가게를 지나 관전가로 걸어갔습니다. 화려한 관전가에서 저녁이라도 찾아먹고 호텔로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