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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15 중국-붉은기의 흔적:강소,호남(完)

강만에서 효기를 찾아 걸어갔습니다

by 깜쌤 2015. 5. 25.

 

우리는 내부를 개방해둔 청나라 시대의 학자 강영(江永)의 옛집에 들어갔습니다.

 

 

자꾸 보아서 그런지 이제는 휘파건축물 내부에 조금 낯이 익었습니다.

 

 

손님이 오면 제일 처음에는 이런 공간에서 맞이할 것입니다. 문간을 들어서서 제일 먼저 마주하는 이 공간은 이 집의 얼굴이나 마찬가집입니다. 

 

 

뒤로 들어가보았더니 부엌이 나옵니다. 상태로 보아 최근에는 거의 활용을 하지 않은듯 합니다.

 

 

내부 공간은 전시실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우리에게는 약간 낯선 이름일지도 모르지만 강영은 청나라 때의 대학자입니다. 그가 강만 출신이라는 것은 처음 알게된 사실이었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휘주 건물은 내부가 어두웠습니다. 까맣게 세월의 때를 뒤집어쓴 옛가구가 아무 상관도 없는 낯선 나라에서 온 이방인의 호기심어린 시선을 감당하고 있을뿐이었습니다. 

 

 

우리는 다시 골목으로 나왔습니다. 골목을 누비는 물길에는 잔잔한 세월의 흐름이 흘러가고 있을뿐이었습니다. 대학자 강영의 발자취는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휘파건축물의 특징인 마두벽과 하얀 색깔의 담벼락이 학자다운 단정함을 더욱 강조하고 있었습니다.

 

 

골목 어디에도 빈틈이 없을 정도로 돌로 포장을 해서 풀 한 포기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어디에도 잡초 한포기 자라지 않았습니다.

 

 

이런 단정함과 깔끔함은 어디에서 그 원천이 샘솟아나는 것일까요?

 

 

중국이 그저 더럽고 지저분한 곳이라고요? 어설프게 몇군데 돌아다녀보고 함부로 평가하는 것은 교만일지도 모릅니다.

 

 

나는 도덕심이 무너져버린 우리나라 젊은이들과 부패할대로 부패해버린 우리 지도층의 도덕적 해이가 더 무서운 현실로 다가옴을 느낍니다.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말은 명언 중의 명언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지도층의 도덕적 해이는 나라를 망치는 지름길일 것입니다. 나는 중국 시골을 돌아다녀보며 그들의 저력과 오천년 역사를 이끌어온 문명인으로서의 자부심을 느꼈습니다.

 

 

큰 골목으로 다시 돌아나온 나는 어느 가게의 진열대에서 꼬챙이에 꿰여 맛있게 익어가는 통닭을 보며 군침을 삼켰습니다.

 

 

어떤 집 앞에서는 스티로폼 상자 속에 우리나라 붕어와 똑같은 모습을 한 물고기들이 담겨있음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현지인들의 생활공간 속으로 들어온 것입니다.

 

 

자전거에 매달린 바구니는 텅 비어 있었습니다. 무엇을 담았던 것일까요? 

 

 

문구점이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이런 가게에서는 간단한 음식을 파는 모양입니다.

 

 

속이 소박한 가게들이 많았습니다.

 

 

 조금만 더 올라가면 사거리를 만날 것입니다.

 

 

패방을 지나쳤더니 거기는 물건 거래가 이루어지는 생활공간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시장바닥은 아니었습니다.

 

 

어떤 이는 자동차 바닥에 돼지고기를 깔아두고 팔기도 했고........

 

 

누구는 과일을 팔기도 했으며......

 

 

누구는 생활 도자기를 팔기도 했습니다.

 

 

경덕진에서 숱하게 만나본 고급 도자기와는 다른 그런 도자기들이었습니다.

 

 

여러 사람들이 몰려들어 자기 취향대로 물건을 고르고 살펴보기도 했습니다.

 

 

나는 중국 춘란들이 눈에 자주 들어왔습니다. 나도 한때는 족보가 있는 중국 춘란 명품들을 칠십여 분 이상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다 처분했습니다. 그것도 다 지난 시절의 일입니다. 

 

 

나는 한번씩 생활가구들에게 눈이 가기도 했습니다. 저런 작은 의자는 하나 정도 가지고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다시 입구 쪽으로 갔습니다.

 

 

강만을 볼만큼은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세히 생각해보니 우리는 큰동네의 일부분만 둘러보았다는 것을 나중에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밖으로 나갔습니다.

 

 

이 문밖으로 나가버리면 다시 들어오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도 큰 아쉬움은 없었습니다. 다음 목적지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강만은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강만을 뒤로 남겨두고 우리는 도로를 따라 무원 방향으로 걸었습니다.

 

 

우리들이 향하는 곳은 효기( 샤오치)입니다.

 

 

안내도에서 효기의 위치를 확인해두었습니다. 문제는 어디에서부터 첫걸음을 걸어 들어가야하는지를 잘 모른다는 것입니다.

 

 

종이에 효기()라고 써서 보여주었더니 사람들이 방향을 가르쳐주었습니다. 알고보니 강만 여유중심 앞을 지나는 산골로 향하는 도로를 따라가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육 킬로미터쯤 된다니 한시간 반만 걸으면 될것입니다. 우리는 도로를 따라 슬금슬금 걸어갔습니다. 아래 지도를 보겠습니다.

 

 

 

위 지도를 클릭해서 크게 만들어두고 보는게 좋습니다. 우리는 2번으로 표시된 강만에서 1번으로 표시된 효기를 향해 걸어가는 중입니다. 녹색점을 따라 가는 것이죠. 파란색 화살표는 이갱(혹은 무원) 방향이고 3번은 황산 방향을 의미합니다. 황산시로 이어지는 지방도로인 셈이죠. 나중에 우리는 그 도로를 따라 황산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도로를 따라 걷다가 만나게 되는 마을들도 하나같이 휘파건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몇번이나 이야기를 하는 것이지만 나는 이런 단정함과 깔끔함이 좋습니다. 

 

 

아주 작은 마을이지만 단정해서 더 정이 갔습니다.

 

 

아주 옛부터 전해지는 건물과 최근에 손을 본 집들이 함께 공존합니다. 

 

 

어떤 집에는 장작이 소복하게 재여져 있었습니다.

 

 

뒷산에는 대나무 숲인데.......

 

 

우리는 부지런히 걸었습니다.

 

 

가야할 길이 멀기에 부지런히 움직였습니다.

 

 

채소들로 가득한 밭이 나타났다가 사라져갔습니다.

 

 

몇개의 작은 마을을 지났습니다.

 

 

쉼터에서 잠시 쉬기도 했습니다. 도로 표시판이 의미하는 것은 구강에서 황산으로 이어지는 고속도로가 나타난다는 말이겠지요.

 

 

우리는 걷고 또 걸었습니다.

 

 

날이 슬슬 흐려지기 시작합니다.

 

 

마침내 효기로 가는 길의 방향을 찾았습니다. 이 앞으로 난 길로 바로 가면 항주로 가는 고속도로와 마주치게 되겠지요. 

 

 

산밑에는 작은 마을들이 자리잡았습니다.

 

 

우리는 효기쪽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슬슬 지쳐가기 시작합니다. 시골마을 하나 찾아가기가 그렇게도 힘이 들었습니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