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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살이/좋은 세상 만들기 To Make Better

요즘 세상에 이런 사람들이 사는 동네가 있다니.....

by 깜쌤 2015. 5. 19.

 

중앙선 옹천역은 영주댐 건설로 인해 철길을 옮기는 바람에 이사를 가면서 신호장으로 격하되었다. 언제나 정겨운 모습으로 손님을 맞이하던 예역건물은 이제 폐쇄되어 기차역으로서의 기능을 대부분 상실했다. 열차를 이용하는 손님들이 줄어든 것도 그 한가지 이유가 되었으리라.   

 

 

나는 옹천역 부근의 시내버스정류장에서 안동으로 나가는 시내버스를 탔다. 영주에서 경주로 내려가는 기차표를 사두었지만 내성천의 경관을 사진찍느라고 시간을 맞추다보니 어찌어찌하다가 옹천까지 오게 된 것이었다. 천혜의 모래강인 내성천의 경관이 궁금하다면 아래 주소를 클릭해보시면 된다.

 

  

 

안동에서 경주로 내려가기 위해서는 어쨌거나간에 옹천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안동역까지 가야만 했다. 옹천정류소에서 안동행 시내버스를 탔을때는 자리가 엄청 많았다. 아마 종점 겸 출발지여서 그랬던 모양이다.

 

요즘은 시골길을 달리는 시내버스가 초만원이 되는 경우는 극히 드문 일이기에 자리가 많은 것은 당연한 일로 여겼다. 버스가 출발하기 전에 체육복차림같은 간편한 복장을 갖춘 고등학교학생들이라고 짐작되는 여학생들이 너댓명 올라왔다.

 

 

나는 의아하게 생각했다. 시골인 옹천에서 도회지인 안동으로 나가는 시내버스에 여학생들이 이렇게 몰려들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오전이라면 등교하는 학생들이라는 생각을 해볼 수 있겠지만 지금은 오후다. 더구나 오후 4시반에 출발하는 버스가 아니던가?

 

 

요즘 내가 아는 여학생들이라면 버스에 오르면서부터 큰소리로 떠들고 안하무인격으로 마구 까불어야하는데 그 아이들은 그렇지 않았다. 조용히 작은 소리로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고 참 잘 배운 아이들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시내버스 운전기사도 제법 젊은 양반이었는데 여학생들에게 시내로 나가는 이 버스를 안타고 남은 아이들은 무슨 연유냐고 물었다. 기사와 아이들간의 짧은 대화를 통해 나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대강 짐작했다. 여학생들은 고등학생들이었다. 지역사회를 위한 봉사활동을 나와서 봉사활동을 끝내고 귀가하는 중인데 같이 온 여학생 가운데 한명이 휴대전화를 어디엔가 놓아두고 버스정류소까지 가버렸던 모양이다.

 

 

휴대전화를 잃어버린 여학생은 혹시라도 휴대전화를 찾을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시내로 돌아나가는 버스를 타지 못하고 옹천버스정류소에 남아서 발을 동동 굴러야하는 처지가 되었다. 젊은 버스운전기사는 그 사실을 알고 연신 여학생 걱정을 했다. 이 버스를 못타면 다음 버스는 1시간 10분이나 기다려야 한다면서 말이다.

 

 

사실 나도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휴대전화기를 분실한 것도 그렇지만 다큰 여학생이 낯선 시골버스 정류장에서 한시간 십분동안이나 하염없이 기다려야한다는 사실이 더 안타까웠다. 다행하게도 낮이 가장 긴 하지를 향해 달리는 시기여서 조금 안심이 되긴 했다. 그런데 정작 신통한 일은 그 다음부터 벌어지기 시작했다. 

 

 

내가 탄 버스가 안동시내로 나가는 시내버스다보니 버스정류장에서 타는 사람들은 대부분 시골 할머니들이나 영감님들이었는데 자리에 앉아서 창가를 내다보고있던 여학생들은 어른들이 버스에서 타기 전에 이미 자리에서 슬금슬금 일어서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나이많은 노인들이 버스나 지하철을 탈 경우 중고등학교 학생들을 포함한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애써 외면하거나 눈을 감고 자는 척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 아이들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 너무 신기하기만 했다. 

 

   

자리를 미리 양보해준 아이들은 버스 뒷부분으로 몰려들었다. 문제는 이런 일을 하는 아이가 달랑 한명뿐만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다른 버스정류장에서도 같은 현상이 일어났다. 어른이 타기전에 아이들은 자기들이 앉았던 자리에서 먼저 일어났고 노인들은 자연스럽게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나는 그런 장면을 감동적인 눈으로 살펴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버스가 안동으로 향하는 몇번째의 버스정류장에 도착했을때 어떤 장년의 젊은 신사가 버스에 오르더니 스마트폰을 꺼내 흔들며 큰 소리로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혹시 여기에 스마트폰을 잃어버린 안동여고 학생 없나?"

그러자 아이들은 스마트폰 주인 여학생은 버스정류소에 남아있다고 대답을 해주었다. 그러자 중년의 신사는 운전기사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천천히 가이소. 곧 따라 올게요."

 

 

버스정류장을 출발한 버스는 운전기사는 그 다음부터 속도를 줄여 천천히 달리기 시작했기에 나는 이 일이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 주시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스마트폰을 주은 장년의 신사는 휴대전화기의 임자가 안동여고학생임을 직감해서 차를 몰고 시내버스를 따라와서 돌려주려 했던 것인데 정작 임자는 아직 출발점에 남아 있는 것을 확인한 셈이니 실망이 컸을 것이다.

 

 

나는 그 신사가 다시 승용차의 방향을 돌려 처음 시내버스가 출발한 출발점으로 되돌아가서 여학생을 찾아 전화기를 돌려줄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사실 나는 거기까지만 생각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일은 그 다음에 발생했다. 

 

 

다음 다음 버스 정류장에서 앞쪽에 멈춰선 승용차에서 여학생이 내리더니 시내버스에 올라타는 것이었다. 나는 시내버스에 탄 여학생에게 스마트폰을 찾았는지를 물어보았다. 여학생은 발그레진 볼에 미소를 띠며 찾았다고 했다. 나는 비로소 이 모든 사실의 진행을 이해할 수 있었다. 휴대전화기를 찾아준 그 중년신사는 차를 몰고 따라와서 여학생이 다른 친구들과 함께 시내버스를 타고 귀가할 수 있도록 태워준 것이 틀림없었다. 

 

 

나는 학생들에게 어느 학교에 다니는지 확인도 할겸해서 다시 물어보았다. 안동여고에 다니는 학생들이 틀림없었다. 요즘 세상에 이런 미덕이 살아있는 지역사회가 존재한다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여학생들은 어른들을 위해 스스럼없이 기꺼이 자리를 양보하되 자기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고, 어른들은 아이들의 처지를 이해해서 따뜻한 마음으로 사랑을 베풀 줄 아는 곳이 아직도 남아있었던 것이다. 그런 곳이 안동이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 줄 아는 곳이 존재한다는 것은 분명 아름다운 일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우리 사회가 당연히 이렇게 되어야 하는 것이지만 내가 겪은 이런 경우가 아름다운 일로 소개되어야 할 정도로 변해버린 우리사회의 현주소가 안타까울 뿐이다.

 

 

안동여고는 예전부터 경상북도 북부지방에서 이름을 날리던 명문학교라고 알고 있다. 평준화의 여파로 지금은 그 명성이 많이 퇴색되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아름다운 전통은 사라지지 않은 것 같다. 별것 아닌 글만 가득한 내 블로그지만 이런 사이버 공간을 통해서라도 내가 만난 학생들과 어른들의 아름다운 심성을 진심으로 칭찬해드림과 동시에 세상사람들에게 널리 알리고 싶다. 내가 나이들어 안동에 살고싶어하는 이유는 바로 그런데 있다.

 

글속에 등장하는 사진들은 전에 찍어두었던 것임을 밝혀드립니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