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깜쌤의 세상사는 이야기 : '난 젊어봤다' - 자유 배낭여행, 교육, 휘게 hygge, 믿음, 그리고 Cogito, Facio ergo sum
  • 인생 - 그리 허무한게 아니었어요. 살만했어요
배낭여행기/15 중국-붉은기의 흔적:강소,호남(完)

가장 아름답다는 무원에서도 이갱이 으뜸이다 2

by 깜쌤 2015. 5. 14.

 

겨울이라고는 해도 햇살이 따뜻해서 바깥에 앉아 밥을 먹는데 지장은 없었습니다.

 

 

두부요리 한접시와.....

 

 

스텐레스 양푼에 수북하게 담아온 밥 한그릇......

 

 

채소를 넣은 계란탕 한그릇과.....

 

 

고기요리 한접시가 나왔습니다. 푸짐하게 먹었습니다.

 

 

우리가 식사를 하는 동안 주인양반은 아주 조용하게 토끼 한마리를 해치우더군요.

 

 

마당 한구석에 있는 작은 시멘트 물웅덩이에는 요리용 금붕어(?)들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이갱에는 식용으로 쓰는 붉은 잉어가 유명하다고 소개를 하기도 하더군요. 

 

 

식사후 우리는 촌두제일농가장(村頭第一農家庄)을 나왔습니다. 그집 음식은 괜찮았습니다.

 

 

마을 뒤로 이어진 농로를 따라 걸어보았습니다.

 

 

논밭에는 마늘과 시금치가 보였습니다.

 

 

마을을 벗어나자 전형적인 중국농촌 풍경이 이어집니다. 시골풍경은 중국이나 우리나 크게 다를 바가 없습니다.

 

 

산에는 대나무숲이 우거진 곳도 있었습니다. 마을 뒤로 난 도로에는 덤프트럭이 다니기도 했는데 채석장에서 돌을 운반하는 것 같았습니다.

 

 

아주머니 한사람이 밭을 다녀오는 것 같습니다. 대나무 광주리에 무엇인가를 가득 담아옵니다.

 

 

나즈막한 산을 양쪽에 끼고 슬금슬금 제법 걸었습니다.

 

 

밭에는 푸른 채소들이 가득했습니다. 따뜻한 기후를 가진 남쪽지방이 이래서 좋은가 봅니다.   

 

 

한 삼십여분 정도 검다가 우리는 다시 마을로 돌아왔습니다. 산골짜기 안으로 걸어들어가봐도 별다른 경치는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산길과 들길을 걷는것보다 마을을 구경하는게 더 나을 것 같습니다.

 

 

마을에는 골동품 가게도 있었습니다. 꼬맹이 혼자서 가게를 보고 있네요.

 

 

잔치를 치른 집에서는 청소가 한창이었습니다.

 

 

바깥 청소는 다했다쳐도 실내는 아직 정리가 덜 끝났더군요. 상위에는 손님접대용 음식이 남아있었습니다. 나는 어떤 음식이 나왔었는지가 궁금해서 사진을 찍어보았던 것이죠.

 

 

초대를 받아간 중국인들은 식당바닥에 지저분하게 음식찌꺼기를 흘려두어야 거하게 잘 먹었다는 표시가 된다는 이야기도 있더군요.

 

 

술도 나왔던가 봅니다. 상표로 보아서는 무원홍이라는 이름을 가진 술같습니다만.....

 

 

손님들이 돌아가고 난 뒤엔 설거지 할일만 가득합니다.

 

 

잔치상이 놓여진 바로 옆은 구멍가게였습니다.

 

 

우리는 이지성고거가 있는 골목속으로 들어가보았습니다. 중국 바이두에서 검색을 해보아도 이지성이라는 분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골목은 좁았고 이지성고거의 문은 닫혀있었습니다.

 

 

그의 집이라고 생각되는 건물 옥상에는 어린아이 빨래만 겨울햇살을 받아 말라가고 있었습니다.

 

 

사화(沙畵)라고 하면 모래그림이 될터인데 그게 무엇인지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았습니다.

 

 

이갱의 집들은 무척 높습니다. 기본이 이층이고 밖은 높은 담으로 둘러쳐서 골목에서 안을 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열려진 대문을 통해서만 안을 살펴볼 수 있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휘주뿐만 아니라 중국 전역이 이런 식으로 발전해왔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습니다.

 

 

골목 끝에는 대나무숲이 등장했는데 그 밑으로 개울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아주머니 한분이 맑은 개울물에서 채소를 씻고 있었습니다. 개울은 그들에게 생활의 터전으로 자리잡은지 오래인것 같습니다.

 

 

실개천 앞쪽으로는 작은 산이 있습니다. 산으로 올라가는 길이 잘 만들어져 있었는데 간단한 다리로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이런 순서대로 구경을 다니면 된다는 뜻으로 안내판을 붙여둔 모양인데 거기에 이지성이 남송시대때 장원을 했다는 말이 나오네요. 어떤 나무에 관한 내용도 보입니다.

 

 

어떤 사나이가 다듬은 목재를 어깨에 들쳐매고 대나무숲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무엇인가를 만들려고 하는 모양입니다.

 

 

나는 실개천을 건넜습니다.

 

 

작은산 바로 밑에는 작은 우물이 있었습니다. 돌로 정성스럽게 사방을 단장한 것으로 보아 오래된 우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물의 이름은 초천이었습니다. 이 부근에 파초가 유명한 모양입니다.

 

 

스며나온 물을 나뭇잎 두장으로 아래로 흘려보내는 잔잔한 멋이 인상적입니다. 

 

 

내가 우물을 둘러보고 있는 동안 중국인 관광객들이 다리를 건너오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들을 앞장세워 보내고.....

 

 

될 수 있으면 천천히 걸었습니다.

 

 

산길을 조금 오르자 동네의 윤곽이 그만큼 더 드러납니다.

 

 

길은 대나무 숲사이로 이어져가고 있었습니다.

 

 

대숲을 벗어나자 모처럼 푸른 하늘이 얼굴을 보여주었습니다.

 

 

중국 양자강 아래 남쪽 지방의 농촌풍경은 아름답기만 합니다.

 

 

작은 창고를 지나자 어떤 사나이가 지붕에 올라앉아 수리를 하고 있는 집이 나타났습니다.

 

 

방금 나를 스쳐지나간 사나이는 대숲으로 난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작은 언덕에 서보니 이갱 마을의 전모가 이해되기 시작했습니다.

 

 

이갱진은 영어의 Y자 모습으로 흐르는 개울을 따라 만들어진 Y 모양 동네입니다. 주위는 낮은 야산으로 둘러싸인 동네죠. 

 

 

하얀 벽과 검은 지붕을 가진 휘주파 건축물이 마을안에 가득하고 입구쪽으로는 고속철도와 고속도로가 지나갑니다. 입구부근에는 제법 수량이 많은 강이 골짜기를 구불텅구불텅하게 누비며 흐릅니다.

 

 

무원부근의 산하는 그런 식이었습니다.

 

 

집들은 물길을 중심으로 하여 빽빽하게 모여있습니다.

 

 

이 정도로 자세하게 안내해드렸으니 글을 읽는 분들도 이젠 대강 이해가 될 것입니다.

 

 

나는 이런 시골마을이 좋습니다.

 

 

우리네 1970년대처럼 이갱에도 마을에 사람들이 들끓어서 더욱 더 정감이 넘쳐납니다. 이 마을에도 도시화의 바람이 불어오면 사람들은 고향을 등지고 도시로 몰려갈 것입니다. 그런 변화의 바람이 곧 몰려오겠지요.

 

 

그러면 집들은 비게 될 것이고 곧 퇴락하게 될 것입니다.

 

 

중국정부도 우리나라처럼 도시화가 만들어내는 각종 다양한 문제때문에 골머리를 앓게 되겠지요.

 

 

밭에는 우리가 자주 보아왔던 채소들이 넘실거리고 있었습니다. 아! 여긴 겨울 속의 봄을 즐기고 있었던 따뜻한 남쪽나라였습니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