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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14 일본-오사카, 교토 외(完)

오사카성 2

by 깜쌤 2014. 11. 1.

 

토요토미 히데요시를 뒤에 남겨두고 우리들은 다시 오사카성의 천수각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바깥에 있는 도리이를 벗어나면 내성으로 들어가는 다리가 나타난다. 멀리 오사카성의 천수각이 위용을 드러내며 하늘 한가운데로 치솟아있었다. 

 

 

출입구 역할을 하는 다리 양쪽으로는 해자가 설치되어 있을 것이다.

 

 

벌써 해가 기울고 있었다. 젊었던 날 같으면 이런 곳에서는 한잔 하면 좋으련만 술 끊은지가 워낙 오래되었으니 별로 마시고 싶은 생각이 나지도 않는다.

 

 

우리는 다리를 건넜다.

 

 

히데요시 시대에 쌓았던 성벽의 일부를 공개한다는 말일까?

 

 

그림을 잘보면 현재 우리 위치가 표시되어 있다. 성의 구조도 알 수 있을테고.....

 

 

입구 앞으로 다가가보니 규모를 짐작할 수 있었다. 낮아보여도 낮은 담이 아니었고 작아보여도 작은 문이 아니었던 것이다.

 

 

사쿠라몬이라고 불리는 성문을 들어섰다. 앞쪽에 육중한 돌담이 가로막고 있다.

 

 

성문을 들어서자마자 나타나는 돌담벽 한가운데 터억 버티고 있는, 저 어마어마하게 크고 무시무시하게 무게가 나갈 것같은 어마무시한 돌을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순간적으로 나는 크기와 무게감에 압도되고 말았다.

 

 

다시 그 옆으로 이어지는 거석들.....

 

 

나는 충격을 이겨내기 위해 내가 방금 들어온 사쿠라문(일본식으로는 사쿠라몬)을 되돌아서서 살펴보았다.

 

 

가이드는 학생들을 모아놓고 설명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영어로 된 안내문을 보면 이 석벽은 1624년 오카야마 영주로 있던 타다오 이케다에 의해 건설되었다고 분명하게 밝히고 있는데도 많은 여행기에는 히데요시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기록하고 있었다. 우리가 잘 아는대로 히데요시는 임진왜란이 끝나던 해(정확하게 말하자면 정유재란이 끝나던 해)인 1598년에 죽었다.

 

 

히데요시의 부하들이 도쿠가와를 중심으로 하는 동부세력과의 세력다툼인 세끼가하라 전투를 벌인 것이 서기 1600년의 일이고, 히데요시의 아들이었던 토요토미 히데요리가 오사카성 여름전투를 마지막으로 하여 자결한 해가 1615년의 일이므로 히데요시 당시에 이 벽을 건설했다는 말은 엉터리가 되는 것이다. 물론 오사카 성은 분명히 히데요시가 살아있을때 건축한 것이 맞긴 하지만 말이다.

 

진위가 어떻든 간에 그 엄청난 돌의 무게만도 약 108톤 정도라니 할말을 잃고 만다. 당시 일본의 기술력과 경제력을 가늠해볼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되지 싶다. 돌을 캐내야하고 가공해야 하며 운반해야하고 쌓아야 했으니 예사일이 아니었음이 분명하다. 

 

 

석벽을 보고 안으로 들어서면 3층으로 된 긴 건물이 나타나는데 우리나라 역사로 치자면 일제강점기하에 만들어진 건물이다. 일본이 세계를 상대로 하여 전쟁을 치룰때 이 건물은 일본 육군 4사단 본부건물로 쓰였다고 한다. 

 

 

일본군 안에서도 역사가 오래기로 유명한 4사단이지만 나중에는 워낙 자주 패배를 해서 멍청이부대의 표본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거기에는 영악한 오사카인들의 계산이 숨어있었는지도 모른다. 상인기질이 농후한 오사카사람들의 자제로 이루어진 부대라면 목숨걸고 싸워서 일왕을 위해 생명을 바친다는게 그리도 쉬운 일이었을까?

 

 

오사카성의 천수각이 앞에 나타났다. 옥색과 흰색, 그리고 황금색으로 조화를 이룬 멋진 건물이다.

 

 

한때는 오사카 경시청 건물로도 썼다고 한다.

 

 

여러가지 주전부리를 파는 가게가 나타났다.

 

 

트럭을 개조하여 이동가능한 매점을 만들었다.

 

 

슬슬 해가 빠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천수각으로 다가갔다.

 

 

위용이 대단하다.

 

 

이 천수각은 후대에 복원된 것이다. 원래 사용했던 건축재료를 사용하지 않고 현대의 재료를 사용했기에 문화재로서의 가치는 없다고 봐도 된다.

 

 

5층짜리 건물로서 지금은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단다.

 

 

안으로 들어가봐야 하지만 그럴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다. 관람객의 편의를 위해 엘리베이터를 설치한 것은 좋지만 미관을 다 버린 것이나 마찬가지다.

 

 

왜 그런 식으로 했는지는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이런 건물도 수백년의 세월이 흐르면 다시 문화재가 되는 법이다. 그게 역사의 아이러니다.

 

 

천수각에 입장하려면 입장료가 필요하다.

 

 

히데요시라는 인물은 알다가도 모를 인간이다. 무장들끼리 먹고 먹히며 죽고 죽이는 살벌한 전국시대에는 효용성이 높은 간악한 지장일지 모르지만 평화시에는 무엇을 해야 할지를 구별못하는 멍청이가 되고 마는 그런 인물일지도 모른다.  

 

 

이런 자료들을 보면 지금 우리가 보고있는 오사카성은 히데요시가 만든 오사카 성터 위에 만들어져 있음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이에야스가 적어도 오사카에서만큼은 히데요시의 흔적을 지워버리기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몇백년의 세월이 흐르고 나자 이에야스의 희망과는 반대로 히데요시가 오사카의 아이콘 겸 영웅이 되어 있었다. 아무렴 어떠랴? 어차피 인간사라는게 다 그런 것인데.....

 

 

히데요시 가문과 이에야스 집안간에 벌어진 오사카전투 당시의 부대배치도가 흥미롭게 묘사되어 있었다.

 

 

가로등에 불이 켜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다시 성을 빠져 나왔다.

 

 

나는 돌아서서 사쿠라문을 다시 한번 더 찍어두었다.

 

 

주차장까지는 제법 더 걸어가야한다.

 

 

오사카성은 한번쯤 발을 들여놓아 볼만한 장소다.

 

 

일본에 이런 아름다운 성들이 제법 남아있다는 것이 나는 너무 부러웠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