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전 뉴스를 통해 10월 8일에는 개기월식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보름달이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난다니 은근히 기대가 되었다.
내가 월식을 처음 본것은 초등학교 3학년때의 일이다. 여름방학을 맞아 할머니 집에 가서 머물러 있을때의 일인데 할머니께서 차려주신 저녁을 먹고 마당에 나섰다가 달이 붉게 변하길래 기겁을 할 정도로 놀랐다. 정작 더 무서운 일은 그 다음에 일어났다. 지나치게 붉게 변한 달이 달이 무엇에 의해 점점 파먹혀 가는 일이 터진 것이다.
두려움에 떨던 내가 할머니께 여쭈어보자 할머니께서는 커다란 불개가 달을 먹어서 그렇다고 하셨다. 불개가 달을 잡아먹다가 차가워서 뱉어낸다는 것이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우리 조상들은 그런 식으로 월식을 해석하고 있었다. 일식현상을 두고는 불개가 태양을 먹다가 뜨거워서 뱉어낸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했단다.
할머니께서는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늦가을에 돌아가셨다. 당신 삶의 마지막을 짐작해서인지 5학년 여름방학때는 손주들과 함께 수십리 길을 걸어 기차역까지 따라오셨다. 기차역에 쌓아둔 철도용 침목더미 뒤에 숨어서 기차를 타고 떠나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고 훔쳐보고 가셨다. 그게 할머니와의 마지막 작별이었다.
나는 월식을 볼때마다 할머니 생각을 한다. 이제 할머니는 어디 가서 다시 만나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할머니께서 낳으신 둘째 아들은 한국전쟁에서 입은 부상으로 결혼도 못하고 총각으로 돌아가셨다. 참전용사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보상조차 받지 못하셨다. 첫째 아들인 아버지도 돌아셨으니 할머니 소생은 다 돌아가신 셈이 된다.
할머니께서 혼자 사시던 집은 무너진지 오래고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벌초를 할때마다 한번씩은 찾아가보지만 확신을 가질 수가 없다.
나는 요즘 죽음을 자주 떠올린다. 이제는 죽어도 아무 여한이 없을 것 같다. 따지고 보면 정말 오래 살았다는 느낌이 든다. 아직 환갑도 안된 나이지만 그래도 나는 오래 살았다고 여기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이제부터 새로운 청춘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십일 붉은 꽃이 없고 달이 차면 기운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게 인생이다. 인생의 철칙과 자연의 법칙을 어기고 천년만년 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는 천국에 간다는 확신을 가지고 살지만 할머니와 아버지와 어머니를 다시 만나뵐 수 있을까 하는 것 때문에 어떨 땐 슬퍼지기도 한다.
외출을 하다가 다리 난간에 서서 사진을 찍었다. 이럴 때 좋은 카메라가 있으면 좋으련만 똑딱이 카메라로 찍어야 하는 처지니 그게 그거다. 예전에는 정월 대보름땐 개들을 굶겼다고 들었다. 한두번씩 불개가 달도 잡아먹고 해도 잡아먹고 하니 정월 대보름날에는 개들을 보고 굶으라고 했단다.
월식과 일식같은 자연현상 때문에 애꿎은 개들만 하루 종일 굶었다니 안됐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는 정월 대보름에 굶는 개는 거의 없을 것이다. 다 지난 일이지만 부질없는 헛일이라는 느낌만 가득하다.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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