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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14 일본-오사카, 교토 외(完)

교토로 간다 6 - 이총(미미즈카)

by 깜쌤 2014. 9. 25.

 

이번 글에서히데요시라는 인간의 이야기를 아주 조금만 해보자. 나중에 오사카 성을 이야기할때 그자의 이야기를 한번 더 꺼내야하기 때문에 지금은 조금만 해도 되지 싶다. 풍신수길(=토요토미 히데요시)! 그는 우리 역사에서 커다란 비극으로 흔적이 남아버린 임진왜란을 일으켜 온갖 악한 일을 다 저지른 인간이다.

 

우리나라에서 히데요시처럼 인기가 없는 왜인이 또 하나 있는데 그자가 바로 이등박문(=이토 히로부미)다. 그런데 일본인들에게는 이 두사람이 최고 인기순위 1,2위를 다툰다는게 문제다. 일본의 젊은이들이 가장 본받고 싶어하는 위인들이라는 말이다.

 

 

잘 알다시피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일으킨 장본인이다. 일본에서는 임진왜란을 '분로쿠(文祿)의 역'()이라고 부르며 정유재란은 '게이초(慶長)의 역()'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 두번의 전쟁을 일본인들이 무엇이라고 부르든지 간에 토요토미 히데요시라는 인간은 전범이었으며 역사에 남긴 행적 또한 간악했던 인물임이 확실하다.

 

 

자신의 더러운 욕망을 위해 수많은 인민을 죽음의 구렁텅이로 몰고간 끔찍한 전쟁인 임진왜란을 일으킨 히데요시는 조선에 출병한 군인들에게 전공의 표시로 조선인의 수급(首級)을 요구했는데 그게 부피가 커서 운반하기 어렵자 나중에는 조선인들의 귀나 코를 베어 소금에 절여서 일본으로 가져오라고 요구했다고 전해진다.  

 

 

그렇게 베여진 수많은 코와 귀를 묻은 무덤이 이총(耳塚 미미즈카)이다. 억울하게 희생당한 조선들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만든 무덤이 아니라 자신의 전공(戰功)을 자랑하기 위해 만든 무덤인 것이다. 우리는 이총을 찾아갔다.

 

이총은 청수사로 알려진 기요미즈데라에서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있다. 정작 분통을 돋우는 것은 비극의 현장인 이총이 히데요시의 영혼을 위로하는 신사인 토요쿠니신사(豊國神社 풍국신사) 앞쪽 낮은 곳 길가에 있다는 것이다. 히데요시는 그런 인간이었다.  

 

 

이총 앞에 있는 철문은 잠겨져 있었는데 이를 관리하는 일본인이 부근에 산다고 한다. 일본인가운데도 양심적인 사람은 있게 마련이어서 조선인들의 억울한 희생을 위로하는 의미에서 무덤을 정성껏 관리해오는 분이 계셨다는데 돌아가신지 얼마되지 않았다고 한다. 현재는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부인이 무덤을 관리하고 있다는데 가이드는 그 할머니를 찾아서 열쇠를 빌리러 갔지만 못만나고 돌아왔다.

 

 

할 수없이 우리들은 담장밖 도로 인도위에서 간단한 추념행사를 치뤘다. 가이드가 이총에 얽힌 상세한 내력을 이야기한 뒤 우리는 묵념을 하기로 했다. 

 

 

귀무덤에 얽힌 진실을 알면 알수록 가슴아픈 일이 된다.

 

 

히데요시가 일본인들에게 인기가 있는 이유는 미천한 최하층계급에서 몸을 일으켜 최고관직인 관백(=간빠꾸)의 자리에 올랐을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교토를 만드는데 지대한 공을 세운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영웅이겠지만 이웃 나라 국민들에게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 악질적인 인간의 대표적인 표본이 된 것이다.  

 

 

나는 이번 여행의 안내를 맡은 가이드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젊은이의 역사인식이 똑바르게 박혀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바른 역사관이니 어쩌니 하는 것 자체가 내 자신의 주관에서 나온 판단이지만 그는 엉터리 역사의식을 가진 많은 젊은이들과는 기본 바탕이 다른 사람이었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 나라를 어지럽힌(?) 몇사람의 인물 가운데 세사람은 경주출신이었다. 이 여행기가 아무리 사적인 글이라고 해도 관련자들이 두눈 시퍼렇게 뜨고 경주에 많이 살고 있으니 그 인물들누구라고 선뜻 이름을 밝히진 않겠으나 그들의 행적은 한마디로 가관이었다.자기들의 말과 행동이 다른 것은 기본이고 자기들만이 절대선을 가진듯이 행동을 했기에 나는 그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내가 싫어하는 그런 사람들을 존경하고 좋아하기도 한다. 그게 역사를 바라보는 개인의 시각차이인 것이다. 누구 눈에는 영웅으로 보이는 사람이 누구 눈에는 인간같지도 않아보인다는 것!  그만큼 인물과 사건을 보는 시각차가 큰 것이 역사이지만 과거사를 보는 눈은 비슷해야 정상이 아니던가?

 

 

나는 가슴이 짠해져옴을 느꼈다. 치밀어 오르는 분노와 안타까움, 그리고 슬픔이 가슴언저리를 맴돌았다.

 

 

우리가 간단한 의식을 가지는 동안에 일본인들은 자기 일들을 하고 있었다. 그들이 어찌 우리 기분을 이해할 수 있으랴?

 

 

남의 속을 뒤집어 엎고 부글부글 끓도록하는데 뛰어난 재주를 가진 왜인들이 바다 건너옆에서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 한국인들의 기분을 이해나 할 수 있으랴? 잊을만하면 한번씩 극우적인 망언을 퍼부어대는 아베같은 놈도 결국은 마찬가지 인물 아니던가?

 

나는 시오노 나나미라는 여자의 책을 참 좋아했다. 그녀의 글속에 극우적인 성향이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 것은 아니었으나 위안부 문제를 두고 한 그녀의 최근 발언내용은 반드시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총참배를 마친 뒤 우리는 토요쿠니 신사앞에까지만이라도 가보기로 했다. 짧은 거리였으므로 차를 타지 않고 걸어가기로 했다.

 

 

여기다! 히데요시를 모신 신사가 바로 토요쿠니 신사다. 도로가 삼거리로 만나는 지점에 자리잡고 있다.  

 

 

 

위 그림지도를 클릭하면 확대되어 새로 뜨게 된다. 오른쪽의 빨간색 네모테 위치가 기요미즈데라(청수사)를 나타낸다. 왼쪽에는 토요쿠니신사의 위치와 이총의 위치가 나타나있다. 순전히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일본의 교토 정도는 반일감정을 잠시 접어두고라도 한번쯤은 다녀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입구에서 신사모습만 눈에 넣었다. 들어가볼 시간적인 여유까지는 없었던 것이다. 히데요시의 모습은 나중에 오사카성을 살필때 소개할 생각이다.

 

 

신사건물을 보면 가운데 부분이 아치모습으로 휘어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저런 형식은 히데요시가 일본을 다스릴때 유행했던 양식이라고 하여 모모야마(桃山 도산)문화의 유산이니 모모야마 양식이니 하는 식으로 이름을 붙인단다.  

 

 

이름을 어떻게 붙이든 하여튼 히데요시라는 인간이 교토와 일본 역사에 미친 영향은 엄청 크기만 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이총 부근에 대기중인 버스에 올라서 다음 장소로 이동해야 했다.

 

 

길거리에 쓰레기를 내다놓은 일본인들의 요런 얄미울 정도로 깔끔한 행동은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여야할까?

 

 

우리는 이런 면에서 일본에게 지고 있는 것이다. 깨끗한 환경을 만들어나가며 조직 속에서 정직하고 치밀하고 빈틈없이 일을 해치우는 면에서 우리가 너무 모자란다는 말이다.

 

 

다수의 일본인들이 이총 앞을 지나고 있었다. 그들에게 이총은 히데요시가 남긴 역사의 전공(戰功) 정도로 여기는 유적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우리를 태운 버스는 시내로 들어갔다.

 

 

니조성 부근인것 같은데 정확하지가 않다. 이런데서 배낭여행과 차이점이 생기는 것이다.  

 

 

내힘으로 찾아다니는 배낭여행이라면 방향감각이 확실히 만들어질텐데 여행사를 통한 이런 인솔여행은 방향감각조차 가지기가 어려운 것이다. 

 

 

왼쪽 앞으로 니조이 나타났다. 저번에는 여기까지 찾아왔지만 시간이 모자라서 안을 구경하지 못하고 돌아섰었다.

 

 

점심을 먹기전에 간단한 기모노쇼를 보기로 했다. 니시진회관 1층에서 벌어지는 행사다.

 

 

1층은 기념품 판매장 정도에 해당된다.

 

 

우리는 이 쇼를 보고나서 점심을 먹게 된단다.

 

 

오전 11시 45분에 시작한다.

 

 

1층의 열린 공간에서 벌어지는 기모노쇼이므로 위층에서 봐도 된다.

 

 

일본 전통의상의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소개하는 멋진 프로그램이다.

 

 

나는 이런 쇼를 볼때마다 마음아픈게 있다.

 

 

우리는 왜 이런 것을 기획하고 실시하지 못하는가 하는 데서 오는 안타까움과 마음 아픔 말이다.

 

 

기모노 한벌 값은 엄청 비싸단다.

 

 

여러명의 모델이 순서대로 나와서 기모노의 아름다움을 선보이고는 들어갔다.

 

 

화려한 색상의 옷이 있는가하면 은은하고 점잖은 색상도 있다.

 

 

교토는 예로부터 직물산업이 고도로 발전한 도시였다. 모델들이 입고 나온 기모노에서는 그런 느낌이 가득 묻어났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