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남방지방의 절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다. 몇번 가본적은 있지만 남보타사같은 남방의 큰절은 처음이지 싶다. 낙양과 정주 사이의 소림사를 가본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지금은 어떻게 변했는지 모르겠다. 소림사를 가본 것도 벌써 15년전의 일이다.
천왕전 입구에서부터 요란했다. 남보타사 경내에는 들어왓지만 아직 법당이 있는 곳까지는 도달하지 못했다.
남보타! 절강성을 여행하면서 주산군도에 있는 섬 보타산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듣고 책에 쓰여진 자료를 보았었지만 끝내 가보지는 못했다. 남보타라는 말은 보타산의 남쪽에 있는 큰절이어서 붙인 이름이던가?
많은 분들이 무릎을 꿇고 무엇인가를 기원하고 있었다.
우니라나의 절로 말하자면 사천왕상에 해당될지도 모른다.
좌우에 둘씩 있으니 모두 넷이다.
여기를 들어서면 드디어 절이 나온다.
석탑을 좌우로 거느린 이층 건물이 나타났다. 대웅전이다.
지붕위를 장식한 조각상들이 엄청 화려하다.
한쪽 옆은 공사중이었다.
2중 지붕 형식을 지닌 대웅전이다.
우리가 방금 통과해서 들어온 문이다. 좌우로 사천왕상이 있다고 보면 된다.
절마당은 사람들로 초만원이었다. 나는 그 사이에 끼어들 엄두를 내지못해서 대웅전 구경을 포기하고 통로를 따라 옆으로 돌아가보았다.
많은 불자들이 함께 서서 불경을 낭독하고 있었다.
표정들이 매우 진지하다.
그 옆에는 황금색으로 칠한 나한상들이 유리상자 속에 갇혀있었다.
다같이 독경하는 소리가 굉장했다.
무슨 내용일까?
절 안에 있는 건물들은 하나같이 현대식이었다.
건물들을 연결하는 회랑들의 규모도 엄청 크다.
여긴 절이라기보다는 관광지라는 느낌이 들었다.
대웅전 뒷면에서도 합장을 하는 분들이 보였다.
남보타사는 곳곳에 많은 건물들이 배치된 큰 가람이었다.
대비전이라..... 대자대비라고 할때의 그 대비다.
깃발을 든 안내인을 따라 다니는 단체관광객들로 인해 절 안은 인산인해다.
방장이 거처하는 공간은 출입금지였다.
거긴 현대식 건물이었다.
대비전 뒤로 올라가니 법당이 보였다. 법당 2층은 장경각이라고 한다. 장경각은 절 도서관이라고 봐도 크게 틀린말은 아니다.
남보타사의 전체 구조도이다. 대강 이해가 되리라.
법당 뒤로는 산이다. 절 뒤에 있는 산봉우리가 오로봉(五老峰)이다.
여기까지 왔으니 올라가봐야 한다.
장경각과 법당으로 함께 쓰고 있는 건물을 뒤로 남겨두고 우리는 산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중국 남쪽에서 알아주는 절인만큼 규모도 굉장히 커서 산으로 올라가는 길 양편에도 온갖 시설물들과 글씨들이 가득했다.
법당의 뒷모습이다.
오로봉으로 오르는 길에는 바위들이 많았다. 하나같이 잘 생긴 바위들인데 글씨들이 가득했다.
등산로를 알리는 표시들이 많아서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통로 하나하나마다 돌로 포장했다.
어지간한 곳은 계단을 깔아두었고.....
이러니 말끔한 곳이 없다.
오로봉 기슭 곳곳에는 숨겨진 시설물들이 제법 많다.
아까 밑에서 보았던 쌍동이 건물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저 정도면 하문섬의 랜드마크가 되리라.
그 오른쪽 옆으로 고랑서가 보였다.
희미하게 정성공 석상도 보인다.
하문은 항구로서 좋은 조건을 고루 갖춘 곳이다.
그러니 서양의 제국주의 세력들이 여기를 탐냈던가보다.
경사가 가파른 길이 아니어서 오르기에는 무리가 없었다.
산에는 부겐빌리아 꽃이 여기저기 흩어져 자라고 있었다.
좀더 오르자 하문대학교의 캠퍼스가 한눈에 잡히기 시작했다.
캠퍼스가 아름다운 대학교라고 소문이 났는데 과연 빈말은 아닌듯 하다.
남보타사의 가람배치가 한눈에 들어왔다.
신축중인 건물의 구조도 눈에 잡힌다.
이제 하문(샤먼, 아모이)은 다시 한번 번성일로에 접어든 것 같다.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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