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덕위로 올라왔더니 옹기아카데미로 들어가는 마을 입구가 보였다.
언덕위에 서서 보니 마을의 배치가 한결 더 정겹게 느껴졌다.
입구쪽으로 오면서 기찻길 위로 지나온 것은 기억나는데 철길이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고 마을 곁을 지나가는지는 몰랐다.
마을을 참 아름답게, 그러면서도 세련되게 재단장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누가봐도 이 마을은 부촌같았다. 이렇게 단정하게 정리된 시골마을은 드물지 않을까?
나는 마을 안내센터로 들어갔다. 무료입장이다.
옹기마을 시설 안내판이 붙어있었다.
안으로 들어서자 접수대가 보였고 오른쪽으로 전시실이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옹기역사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살아온 역사를 망각하면 현실을 모르는 자가 되고, 결국은 미래를 꿈꿀 수 없는 자가 될 수 있기에 처음부터 역사관에 대한 기대가 컸다.
나혼자뿐이었기에 어느 누구의 방해도 없이 전시물에 몰두할 수 있었다.
마을 전체의 배치도가 보였다. 마을은 산을 의지하여 남향으로 자리잡았다.
온갖 종류의 옹기가 모여있었다. 각양각색이라는 말은 이럴때 쓰는가 보다. 사실 옹기라는 것은 엄밀히 말할때 한가지 색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옹기마다 미세한 색깔의 차이가 드러나보인다.
장인마다 가지고 있는 가마가 다른 것 같다. 이 공간에는 장인들이 자기 이름을 걸고 만든 상급의 작품을 전시해둔 것 같았다.
온갖 종류의 작품들이 수두룩했다. 옹기란 것이 그저 그런 것 아니냐는 식으로 말하면 곤란하다.
현재까지 활동을 하는 옹기 장인들은 거의 다 자기 이름을 걸고 작품을 만드는 것같았다.
크지 않은 공간이지만 아기자기하게 배치되어 있었다. 울산광역시에서 의도적으로 신경을 써서 세밀하게 잘 만들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옹기를 격이 낮은 흙그릇 정도로 인식하는 분들도 제법 있는 것 같지만 알고보면 그리 만만한 존재가 아니다. 우리 생할 곳곳에 깊숙하게 파고 들어온 존재가 옹기다. 따라서 옹기는 우리의 삶이요 전통이며 역사다. 그런 존재가치를 지닌 옹기를 제작하는데는 보통 7단계를 거쳐 만든다고 한다.
1단계 - 흙반죽하기 : 찰흙을 메로 치고 발로 짓이긴 다음 찰흙을 가래떡처럼 길게 뭉쳐서 흙띠를 만든다.
2단계 - 모양 만들기 : 물레 위에 찰흙을 올려놓고 납작하게 옹기 밑판을 만든다. 그 다음 흙띠를 두드려가며 쌓아올려서 옹기모양을 만들어간다.
3단계 - 수레질 : 3~4단으로 쌓아올린후 수레와 도개로 면을 다듬는다.
4단계 - 옹기 말리기 : 굽는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균열과 파손을 막기 위해 통풍이 잘되는 그늘에서 서서히 말린다.
5단계 - 유약 바르기 : 건조를 마친후 잿물과 약토를 섞은 잿물 유약을 입힌다.
6단계 - 문양 그리기 : 옹기의 유약이 마르기 전에 다양한 문양을 그려 넣는다.
7단계 - 옹기굽기 : 가마안에 잘 재어 넣은 후 불을 지펴 900도에서 1200도정도까지 온도를 높인다. 이후 불문을 막고 서서히 식힌다.
자료촐처 : 외고산 옹기마을 안내 팜플렛
옹기마을의 역사를 보니 마음이 아팠다.
옹기마을의 전성기는 1950년대부터 80년대 초반까지였다고 한다. 그러다가 아파트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장독대가 사라지게 되었고 결국은 심각한 불황이 찾아오게 되었다.
우리들 생할 속에 플라스틱 용품이 늘어가면서 옹기의 수요가 급속하게 즐어든 것이 사실이다. 그러다가 참살이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이제 새로이 부활의 기지개를 켜고 있는 것이다.
지금부터약 50여년전에 영덕에서 옹기 제조를 하던 허덕만이라는 분이 여기에 터를 잡기 시작한 것이 외고산 옹기마을의 시작이라고 한다. 옹기를 구울 수 있는 적당한 양질의 흙이 존재하는데다가 가마를 설치하기에 적합한 경사도를 지닌 산이 있었고, 옹기를 구울때 절대적으로 필요한 땔감을 쉽게 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당시 옹기의 최대수요지였던 부산이라는 거대도시가 인근에 자리잡았으니 옹기산업의 최적지로 점찍게 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옹기마을의 역사를 대강 살펴본 나는 안내센터를 나왔다.
정확한 실태와 내막은 잘 모르지만 이제 여기는 부촌(富村)이라는 느낌이 든다. 전문기술을 가진 분들이 잘 살아야 하는 것은 정말 바람직하고도 좋은 일이다.
집집마다 구워놓은 작품들이 즐비했다.
모든 장인들이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다. 옹기는 살아숨쉬는 그릇으로 대접받는다. 이는 발효식품을 즐겨먹는 우리민족에게는 꼭 필요한 생활도구라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이야기다.
나는 다시 마을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는 언덕으로 올라갔다.
장인이 살고 있음직한 소박한 집 벽에 그려진 옹기그림이 눈에 쏙 들어왔다.
마을은 평화롭기 그지 없었다.
조형물 하나도 예사로운게 없었다.
나는 이 마을의 분위기가 점차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내가 평소에 추구하는 그 어떤 것을 이마을 사람들은 이미 가지고 있는듯 했기 때문이다.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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