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눈에 이 장면을 이해할 수 있다면 한국인의 정취를 아는 사람이다. 초저녁 멀리서 귓가에 들려오는 또르락또르락하는 이 소리를 알아듣는 사람이다. 한밤에 들려오는 그 소리는 자장가소리도 되었다가 여인네들의 한서린 한숨도 되었다가 어머니와 누이의 서글픔이 되기도 했다.
참으로 오랫만에 귀하디 귀한 다듬이방망이 소리를 들어보았다. 완전히 손발이 척척맞는 신명나는 소리는 아니었지만 하도 드물게 듣어보는 소리여서 그런지 괜히 가슴이 뛰었다.
옷감의 주름살을 제거하고 부드럽게 하는 방법이 바로 다듬이돌 위에 옷감을 곱게 접어놓고 다듬이방망이로 때리는 것이다. 그것을 다듬이질이라고 했다. 어떤 이들은 다듬질이라고도 한다. 다듬이질을 하면 다림질한 것보다 옷감이 더 매끈하고 주름이 잘 지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네 여인들은 빨래를 곱게 개어 다듬이돌 위에 올려두고 둘이서 마주앉아 방망이질을 했다.
다듬이방망이는 박달나무나 대추나무같은 것으로 만들었다. 무척 단단해서 다듬이방망이나 홍두깨로 사람이 맞으면 골병은 기본이었고 심지어는 죽기도 했다. 오죽하면 오늘날의 경찰관에 해당하는 옛날 포졸들은 육모방망이를 들고 다녔을까? 원목을 깎아서 아녀자들이 들고 휘두르기 좋도록 깎아내어야 했으니 보통 정성으로는 만들기 어려운 물건이었다.
다듬이돌을 나무도 만들기도 했다. 배나무나 대추나무로 만든 것을 최상품으로 여겼다고 한다. 보통은 돌로 만든것을 썼다. 화강암같은 단단한 돌을 쪼아 모양을 만들고 그런 다음에는 표면을 매끈하게 갈았다. 다듬이돌 하나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과 정성과 힘이 들었는지는 상상만 해도 쉽게 알 수 있다.
다듬이질은 혼자해도 되지만 다듬이돌을 가운데 놓고 마주앉아 두드릴때 아름다운 장단이 만들어졌다. 호흡이 맍는 사람끼리 맞다듬이질을 하면 그리도 장단이 잘맞는 환상적인 소리로 들렸다. 보통은 부녀간에 하는 경우가 많았다. 익숙한 사람이 하면 그 소리가 예인(藝人)의 소리로 들릴 지경이었다.
홍두깨는 다음이방망이보다 훨씬 굵고 길다. 손칼국수를 만들때 쓰는 긴 나무몽둥이가 바로 홍두깨다. 홍두깨에다가 옷감을 감아서 홍두깨틀에다가 걸어두고 빙빙 돌리면서 다듬이질을 하기도 했다고 하는데 그런 모습을 본 기억은 없다.
지금 사진 속의 할머니들은 짚으로 짠 멍석위에 앉으셨다. 두더웠던 여름날 저녁, 마당에다가 멍석을 깔고 물반건더기반인 칼국수를 훌훌 들이마시고 불룩해진 배를 텅텅 두들겼던 날들이 그립기만 하다. 겨울철 긴긴밤에 듣던 다음이방망이 소리가 그리워지는 것은 무엇때문일까? 한국인의 심성을 깨우는 가장 한국적인 소리는 누가 뭐래도 다듬이질 소리임에 틀림없다.
어리
버리
'사람살이 > 옛날의 금잔디 Long Long Ago (고향)'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청의 추억 (0) | 2013.11.22 |
---|---|
늙은호박으로 만들어 먹는 호박전 (0) | 2013.10.22 |
누에고치에서 실을 뽑다니..... (0) | 2013.10.13 |
호박의 추억 (0) | 2013.09.09 |
추억이 물에 잠길 때 4 (0) | 2013.08.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