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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살이/옛날의 금잔디 Long Long Ago (고향)

추억이 물에 잠길 때 3

by 깜쌤 2013. 8. 20.

 

송승헌씨가 주인공으로 나온 드라마 <에덴의 동쪽>을 기억하지 싶습니다. 그 드라마에서 황지역으로 나온 역이 실제로는 평은역입니다.

 

 

그 평은역이 2013년 4월 28일 0시를 기해 폐쇄되었습니다. 인터넷으로 조사해보았더니 영주시민신문에 관련 기사가 떠 있더군요. 

 

 

관련자료는 아래 글상자 속의 주소를 클릭해보면 자세하게 뜰 것입니다.

 

 

 

1941년 7월부터 영업을 시작했다가 2013년에 문을 닫은 것이죠. 72년간 영업을 한뒤 문을 닫은 셈입니다.

 

 

영주댐이 건설되면서 이 기차역 건물도 물에 잠길 운명이 되어 중앙선의 일부 철로를 이설하면서 자동적으로 폐역이 된 것입니다.

 

 

폐역이 된 평은역 대합실 안은 휑함 그 자체였습니다.

 

 

긴 나무 의자가 놓여있던 벽면엔 나무가 붙어있던 흔적만 남아있었습니다. 

 

 

등받이가 남은 의자 하나가 대합실 안에 뒹굴고 있었습니다.

 

 

창문 너머로 화장실 건물이 보였습니다.

 

 

여기도 내 유년 시절에는 놀이터 가운데 하나였습니다만 이제는 아무 쓸모 없게 되었습니다.  

 

 

뒤돌아보았더니 역 뒷마당이 뜨거운 여름날 햇살에 녹아내리고 있었습니다.

 

 

나는 대합실을 지나 역구내로 들어갔습니다. 

 

 

폐역이 되면서 모든 것이 다 사라졌습니다.

 

 

아! 영원히 남아 있을 것으로 생각했던 철로들조차 모조리 걷혀지고 이제는 그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이 황량함과 쓸쓸함을 어떻게 표현해야할지 나는 그저 막막해지고 말았습니다.

 

 

나도 모르게 가슴이 먹먹해지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추억이 사라진다는 것만큼 슬픈 일이 또 있을까요?

 

 

역사무실에 들어가보았습니다.

 

 

남은 물건들이 이리저리 흩어져 있었습니다.

 

 

이 상태로 수몰되면 이런 쓰레기들이 천년이고 만년이고 물속에 잠겨있을 것입니다. 어떤 것들은 물위에 떠오를 것이고요. 나는 우리 한국인들의 전형적인 엉터리같은 뒷처리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분노가 마구 치밀어 올랐습니다. 이 정도면 해도 너무한 것입니다.

 

 

역 건물 중에서 앞쪽으로 튀어나온 사령실 공간입니다. 좌우로 다 둘러볼 수 있도록 튀어나와있는 공간이죠.

 

 

사령실에서 정면을 보면 내성천 건너편 마을이 보입니다. 금광이라는 이름이 붙은 저 마을도 당연히 물속에 들어가게 됩니다. 내성천 물줄기가 오메가 글자모양으로 마을을 감돌아가는 기막힌 곳이지만 물속으로 가라앉는 것이죠.

 

 

숙직실의 물건들도 이리저리 흩어져 있었습니다. 코레일에서는 새로 말끔하게 새로 청소를 하는 것이 도리일 것입니다.

 

 

플랫폼을 이루었던 구조물만 덩그라니 남았습니다.

 

 

나는 역 앞마당에 나와 섰습니다.

 

 

유년시절을 보냈던 낡은 추억들이 마구 스쳐지나갔습니다.

 

 

남이 보기에는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나에게는 정말 소중한 장소입니다.

 

 

역이름이 붙어있던 패찰도 사라졌습니다.

 

 

플랫폼에는 잡초가 자라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이 건물을 뜯어서 다른 곳에다가 옮기는지 남겨두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모든 것이 다 허무하기만 합니다.

 

 

평은역에서는 청량리에서 출발하여 부전으로 내려가는 기차와, 부전에서 출발하여 청량리로 올라가는 기차가 교행을 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때 친구들은 500원을 내고 2박 3일간의 서울 수학여행을 갔었습니다. 동기생 120여명 가운데 절반 정도만 갔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아, 나는 그 돈을 낼 수가 없어서 수학여행에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완행열차를 타고 수학여행을 가던 6학년 시절 친구들의 모습이 눈에 어립니다.

 

 

그런 추억이 녹아든 플랫폼입니다. 6학년 마지막 겨울방학때였던 1967년 1월, 나는 기차를 타고 여기를 떠났습니다. 여기에서 완행열차로 두시간이나 걸리는 곳으로 이사를 갔었기 때문입니다.

 

 

예전 일기장을 보았더니 환송을 나왔던 친구들의 이름이 적혀있었습니다.

 

 

내가 은근히 좋아했던 여학생의 이름도 적혀있었던 것으로 보아 십리 정도를 걸어 여기까지 찾아왔었던 모양입니다.

 

 

그런 일 모두가 꿈이 된 것이죠.

 

 

기차가 교행할때마다 플랫폼에 내려 만원열차 속에서 시달린 피로를 풀며 잠시 숨을 고르던 여행객들의 모습도 눈에 선하건만......

 

 

나는 저 고개를 넘어 학교에 갔었습니다. 같이 고개를 넘어다녔던 내 친구는 정신이상자가 되었다가 중3때 세상을 달리했습니다. 그 친구 생각을 하면서 나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나이가 이만해도 솟아오르는 눈물은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그 친구는 캐시어스 클레이를 자주 들먹거렸습니다. 당시만 해도 그는 이미 엄청난 선수였죠. 그는 나중에 회교신자가 되면서 이름도 회교식으로 바꾸었습니다. 무하마드 알리가 된 것이죠. 라디오에서 들은 캐시어스 클레이의 이야기를 내게 자주 해주었던 기억이 납니다.

 

꿈이라면 너무 덧없는 꿈이 인생길같습니다.

 

 

물에 잠기면서 새로 만들어질 인공호수를 감아돌 새도로가 산허리에 만들어지고 있었습니다.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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