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깜쌤의 세상사는 이야기 : '난 젊어봤다' - 자유 배낭여행, 초등교육, 휘게 hygge, 믿음, 그리고 Cogito, Facio ergo sum
  • 인생 - 그리 허무한게 아니었어요. 살만했어요
사람살이/옛날의 금잔디 Long Long Ago (고향)

누런 강(江)도 그립다 3

by 깜쌤 2012. 7. 12.

시골에 사람이 없다는 것은 비극이다. 큰 비극이다. 인간이 자기 이익과 편리를 추구하며 살아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보다 나은 편리한 삶과 자녀교육을 위해 시골에서 도시로 이주한 사람들을 보고 욕을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나부터도 도시로 갔다. 그리고는 도시에서 터를 잡고 살아왔다. 시골이 피폐해진 것은 결과적으로 정책의 실패다. 도시와 농어촌 구별없이 골고루 발전을 했더라면 이런 현상은 발생하지 않았다.

 

 

독일같은 나라들이 그런 사실을 증명해주고 있다. 도시와 시골이 골고루 발전한다면 인구는 분산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도시에서의 삶이 빡빡할지언정 한단계 도약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다면 그리로 몰려가는 것을 누가 어찌 막으랴?

 

 

여기에는 이제 사람 발걸음이 아예 끊어지고 말았다. 물속에 들어가야 할 동네이므로 남아있는 사람들도 떠나야 하는 것이다.

 

 

철길 바로 바로 밑으로 모래가 아름다운 강이 흐른다. 그 강의 모래는 이제 다 사라지고 말았다.

 

 

산중턱에 자라는 나무를 베어내는 것으로 보아 순환도로는 저 산허리로 지나갈 모양이다.

 

 

개찰구 부근에 작은 사과나무가 보였다. 벌써 사과가 제법 컸다.

 

 

배롱나무에 벌써 꽃이 피었다. 하지만 모두 물속으로 가라앉을 위기에 처해있다.

 

 

나는 대합실을 기웃거려보았다. 대합실 문이 열려있기에 밀고 들어갔더니 드라마를 촬영한 장면을 찍은 사진들이 게시판에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에덴의 동쪽>이라는 드라마의 상당부분을 여기에서 찍은 모양이다. 평은역이 황지역으로 둔갑해 있었다.

 

 

교복입은 여학생이 등장했던 모양이다. 나는 그 연속극을 안보고 살았다.

 

 

진작에 알았더라면 열심히 보았을지도 모른다. 워낙 털레비전을 안보니 까마득히 모르고 살았다.  

 

 

대합실에는 침묵만 존재했다. 오가는 이가 아무도 없으니 인기척이 있을 수 없다.

 

 

대합실 문을 열고 나가면 플랫폼이다. 적막강산이라는 말이 실감났다. 나는 돌아서기로 했다. 더 있기가 무서웠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구석에는 아쉬움이 맴돌았다.

 

 

동네도 완전히 다 사라지고 말았다. 한때는 여기에 철도관사도 있었고 집들도 제법 있었다. 지금은 남아있는 집이 없다. 딱 한채가 남아있지만 가정집이 아니고 자갈을 채취하는 회사의 사무실로 쓰고있는 집이었다.

 

 

나는 고개넘어로 이어지는 도로를 걸어올랐다. 등에서 땀이 마구 솟아남을 느꼈다.

 

 

고개마루에 올라서자 농협창고가 보였다.

 

 

그냥 막 내려가기가 아쉬워서 뒤를 돌아다보았다. 나는 저길을 6년간 넘어다니며 초등학교를 다녔다. 그땐 포장안된 좁은 길이 나있었을 뿐이었다.  

 

 

고개를 다 내려오자 인삼포가 보였다.

 

 

장터마을이 나타났다. 면소재지지만 휑하기는 마찬가지다. 아직도 이주하지 못하고 남아있는 사람들이 어쩌다 몇몇 보이기도 했지만 사람 그림자보기가 그리 힘들었다.

 

 

물속으로 들어가야할 초등학교 담장에는 온갖 현수막이 붙어있었다. 이제 와서 댐공사를 중단하라고 요구한들 무엇하랴?

 

 

내성천가에 붙은 몇마지기 논밭뙈기도 이제는 다 묵어 자빠졌다. 덕분에 망초와 개망초들이 살판을 만났다.

 

 

버스정류장에서도 이제는 버스표를 팔지 않는다. 나는 도로가 작은 대합실 벽에 붙은 시간표를 보면서 영주로 가는 시내버스를 기다렸다.

 

 

면사무소 이전 작업도 진행중인 모양이다. 작은 시골교회도 옮겨가야하고 학교도 옮겨가리라. 학교는 어쩌면 폐교가 될지도 모른단다. 옹천에서 오는 시내버스를 타고 영주로 향했다.

 

 

 

종점에서 내린 나는 영주역을 향해 걸었다.

 

 

영주에서 4시 50분에 안동, 영천, 경주를 거쳐 부전(부산)으로 가는 기차가 있다. 강릉에서 내려오는 기차다. 기차는 빠른 속도로 내가 살았던 마을 앞을 스쳐 지나갔다.  

 

 

기차는 송리원 철교위를 달려간다. 원래는 이 부근에 댐을 건설하려고 했던 모양이다. 그랬다가 댐 위치가 더 아래로 내려가면서 내 유년기 삶의 터전이 모조리 다 물속에 들어가는 비극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송리원 철교부근에도 참 많이 돌아다녔다. 물고기를 잡으러 다니기도 했고 찔레순을 꺾어먹기 위해 오가기도 했다. 이제는 세월 속에 모든 것을 묻어버렸다. 붉은빛이 살짝 감도는 누런 물만 하염없이 무심하게 흘러가고 있었던 것이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