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운동장으로 내려왔습니다. 그리 크지도 않은 운동장이지만 어렸을때는 바다처럼 광활해보였던 곳입니다.
이 운동장과 언덕길을 밟은 아이가 저혼자였겠습니까만 지금 이 장소에서 느끼는 감정은 모두 다 비슷할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지금 보는 이 풍경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면에서는 말이죠.
제가 이 학교를 다닐때는 오른쪽 계단이 없었습니다. 가운데 한군데만 돌계단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나는 교문을 나와 도로로 내려섰습니다. 어쩌다가 자동차 한대 지나갈 때마다 먼지가 뽀얗게 마구 날리던 길이었습니다.
측백나무가 듬성듬성 심어져 있던 담장밑에는 도랑이 있었고요......
나는 등하교때마다 걸었던 길을 따라갔습니다.
아침마다 우체국에 가서 어린이 신문을 받아보기도 했었습니다.
나는 자신도 모르게 교회로 올라가는 언덕길을 따라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때 친구의 전도로 처음 가본 교회 건물이 아직도 남아있었습니다.
흙벽돌 가에다 시멘트를 발랐네요. 그때도 그랬는지는 이제는 기억하지 못합니다.
출입문을 조금 열고 안을 보았더니 여러가지 물건들이 쌓여있었습니다.
고등학교때였던가 나중에 찾아가 보았더니 교회를 새로 지어 옮겨갔더군요.
나는 쓸쓸히 돌아섰습니다.
그때 시작한 신앙생활이 결국 지금까지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가슴아픈 사연도 많았던 곳이지만 말입니다.
나는 다시 언덕 밑으로 내려왔습니다.
이런 이발관은 언제 생겼는지 기억할 수도 없습니다.
내가 여기를 떠난 것이 워낙 오래전의 일이니 당연한 결과이겠지요.
나는 고개를 넘어가볼 생각입니다. 4,5학년때였던가? 왼쪽 빈터에서 5일장이 열렸던 기억이 납니다.
아쉽게도 곧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이 모이지 않아서 그랬는지 자세한 이유는 알 수 없습니다.
이집은 아직까지 남아있습니다. 거주민들이 옮겨갈 이주단지 공사가 아직도 진행중이라고 들었습니다.
제가 초등학교를 다닐때 4H운동이 한창이었습니다. 그때는 제가 살던 시골에 금융기관 농협이 없었다는 말이지요.
4H운동은 외국에서 들어온 농촌 살리기 운동이었던 것으로 압니다. 나중에 새마을운동이 시작되었지요.
나는 뙤약볕을 하염없이 맞으며 고개길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미술시간에 사용했던 검은색 찰흙이 나오던 장소도 이부근 도랑옆 어딘가에 숨겨져 있었습니다.
미술시간에는 그걸 캐서 사용했었습니다. 흰색찰흙이 나오던 곳도 있었습니다. 그런 흙을 사투리로 쪼대라고 했습니다만....
골재를 운반하는 덤프 트럭이 줄을 지어 오르내리고 있었습니다.
고개 부근에 목화밭이 있었습니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다가 배가 고플땐 덜여문 목화열매를 따서 씹기도 했었는데.......
고개를 넘어 산을 내려가면 평은역 마을이 있었습니다. 나는 거기에 살았습니다.
구만이(구마이)라는 이름을 가진 마을이었지만 이제는 이 마을도 다 사라져버렸습니다.
뭐 하나 남은게 없었습니다.
옛시조에 등장하던 '산천은 의구하되'라는 표현도 이제는 틀린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우리집 뒷마당에서 보면 뒷산 꼭대기 부근에는 매가 하늘에 떠서 맴돌고 있었습니다. 그 봉우리 꼭대기까지 자갈을 채취한다고 파먹기 시작하더니 급기야는 마을까지 없애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는 마침내 물속에 가라앉혀버리는 횡포를 부린 것은 나와 같은 인간들이었습니다.
논밭이 있었던 곳도 수십년전부터 저런 식으로 변했습니다.
기차역으로 가는 길가에도 몇채의 집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동네가 있었던 곳에는 골재무더기만 동산처럼 솟아올랐습니다. 물에 잠기기 전에 이 모래산을 다른 곳으로 옮겨가 사용할 모양입니다. 그래서일까요? 대형 덤프 트럭이 부지런히 드나들고 있었던 것이죠.
뒷산 골짜기를 가로지르는 새 다리가 한창 공사중이었습니다. 저 다리밑 어디까지 물이 들어찬다는 말이겠지요.
나는 기차역이 있는 곳까지 왔습니다.
같이 놀고 자랐던 친구들 가운데 이제는 못본지가 수십년이 되는 친구들이 수두룩합니다.
저 옆산에 올라가서 북쪽을 보면 산너머 저멀리 소백산이 보이곤 했습니다.
더위에 지치기 시작한 나는 땀을 흘리며 기차역 안으로 들어섰습니다만......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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