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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깜쌤의 세상사는 이야기 : '난 젊어봤다' - 자유 배낭여행, 교육, 휘게 hygge, 믿음, 그리고 Cogito, Facio ergo s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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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살이/세상사는 이야기 1 My Way (完)

제자의 결혼식을 끝내고나서 이런 사례는 받아야할지 모르겠네

by 깜쌤 2012. 10. 15.

 

 

평생 시골 촌동네에서 선생을 하고 살았으니 사회적인 저명인사의 자녀를 가르칠 일이나 저명인사를 만나 교분을 맺을 기회는 거의 없었다. 가난한 서민의 자녀들이나 그렇고 그런 나같은 봉급쟁이 자녀를 가르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게 억울하다거나 부끄럽다거나 하는 말은 아니다. 선생이 어디 학부모를 골라가며 일하는 직업이던가?

 

좁은 중소도시 동네에 수십년을 살았더니 귀한 인연을 맺은 가정이 여기저기 만들어지기 마련이었다. 자주 못만나서 그렇지 가족처럼 생각하고 지내는 분이 있다. 그 분으로부터 아들이 결혼한다는 내용으로 된 청첩장을 받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결혼을 하는 신랑은 우리집 아들녀석과는 동네친구이기도 하다. 어쩌다가 그분의 아들을 가르쳤기에 새신랑과는 스승과 제자라는 관계를 맺게되었다. 거기다가 신랑의 여동생을 집사람이 아기일때부터 몇년간 기른 연분으로 인해 아가씨가 다 된 지금에도 집사람을 보고 엄마라고 부르며 따르기도 한다.

 

청첩장을 받아들고는 감회가 새로웠다. 세계가 인정해주는 초일류 기업에 다니는 어였한 직장인이 되어 결혼한다고 하니 세상없어도 꼭 참석해서 축하해주리라고 마음을 굳게 먹고 있었다. 문제는 그 다음에 발생했다.10월 6일이 결혼식날인데 그날 또 다른 결혼식에 꼭가봐야 할 처지가 된 것이다. 이런 경우를 두고 진퇴양난(進退兩難)이라고 하는가보다. 어느쪽으로 가서 축하를 해드려야하는가 싶어서 속으로는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신랑의 아버지께서 한번 뵙고 싶다며 전화 연락을 해왔을때는 어쩌면 예식장 입구에서 축의금을 접수하는 부조계(扶助係)를 맡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막상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게 아니었다. 그날 주례를 맡아달라는 것이었다. 아이고 맙소사! 주례라니.....  더 큰 문제가 발생한 것이나 다름없다.

 

사실 그동안 살면서 주례를 안해본 것은 아니다. 그 동안 결혼식 주례를 맡아달라는 부탁은 참 많이도 받았다. 물론 그때마다 어지간하면 좋은 말로 거절해왔다. 나같은 시골무지렁이 선생이 처녀총각들의 일생에 한번뿐인 고귀한 결혼식에 주례를 맡는다는 것이 어디 가당키나 한 일이냐며 거절을 했다.

 

 

 

그런데 전화기 속에 울려나오는 말씀 속에 담긴 느낌이 결혼식 주례를 거절한 것에 대해 너무 실망하시는 것같아 마음이 편치를 못했다. 결국 시간을 좀 더 달라는 부탁을 드려야했고 며칠 뒤에 이루어진 두번째 만남에서는 주례를 맡아드리겠다는 허락의 말씀을 드려야했다.

 

10월 6일, 토요일은 아침부터 마음이 편안해졌다. 결코 들뜨지 않으리라고 생각하며 며칠 전부터 새벽기도시간에 간절히 기도드린 보람이 있었던 모양이다. 나이가 있어서 그런지 사실 이제는 어지간한 일이 아닌 다음에야 마음이 항상 편안하고 고요하다. 그렇더라도 소중한 제자의 결혼식 주례를 맡았기 때문에 미리부터 마음가짐을 다잡아야했다. 

 

 

 

결혼식 시간이 오후 1시이기에 오전 열시 경에 시내에서 자전거를 타고 보문관광단지까지 간 뒤에 옷을 갈아입고 입장을 하겠다고 했다가 아내로부터 핀잔을 얻어들어야했다. 남에게 신세를 안지고 살겠다는 신조를 지키기 위해 꼭 그렇게 별스럽게 행동해야만 하느냐고 공격을 해대는데는 방어할  명분과 수단이 약했던 것이다. 별 수없이 집으로 찾아온 혼주와 함께 혼인식장으로 향했다. 

 

결혼식 내내 흐뭇하기만 했다. 철부지 아이가 커서 사회인이 된것만 해도 기분좋은 일인데 짝을 이루어 살 멋진 신부와 함께 선 모습을 보고있으니 어찌 흐뭇하지 않으랴? 혼주분들이 모두 점잖아서 그런지 식장 분위기도 더없이 좋았다. 그 동안 가본 많은 결혼식가운데 하객들이 그렇게 예의바르고 점잖은 경우도 드물었던 것 같다.   

 

 

 

식후에 아내가 별뜻도 없이 혼주로부터 덜렁 받아온 봉투속에는 사례금이 들어있었다. 아직까지 손도 안대고 그대로 보관중인데 돌려드려야겠다 싶어서 따로 전화를 드렸다가 혼주로부터 꾸중아닌 꾸중(?)을 들어야했다.

 

사실 말이야 바른 말이지만 제자 결혼식에 주례를 선것만 해도 나에게는 과분한 영광인데 사례금까지 받았으니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할지 모르겠다. 주례가 주례같아야 대접을 받지 나같은 어설픈 삼류가 무슨 사례를 받느냐말이다. 그러나저러나 신랑신부가 장장 7년동안이나 연애를 한 커플답게 평생을 아름답게 잘 살아가도록 기도나 해드려야겠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