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경주 감포에 있는 깍지길이라는 길이 뜨고 있다. 이미 제법 알려져 길을 걸어본 사람들의 후기가 블로그와 카페에 등장하기도 했다. 깍지길은 걸을 수도 있고 자전거로 달려볼 수도 있으며 드라이브를 할 수도 있는 길이기에 나는 세가지 방법 모두 다 사용해서 도전해보기로 했다. 제일 먼저 자전거를 타고 도전해보았다.
감포는 경주를 대표하는 어항이다. 지금의 감포항은 동해안 바닷가에 자리잡은 그저그런 항구 정도로 아는 사람들이 대다수지만 예전에는 결코 그런 어수룩한 포구가 아니었다. 1937년 오늘날의 인천인 제물포와 함께 읍으로 승격될 당시만 해도 전국적으로 알아주는 주요 어업항이었던 것이다.
감포읍사무소에서 빌려준 자전거를 타고 나는 31번 국도를 달려 북쪽으로 올라갔다. 감포읍을 지나는 31번 도로와 평행으로 뻗어있는 포구의 작은 마을길은 깍지길 1구간으로 지정되어 있다. 해안을 따라 걷는 첫번째 구간 길은 나중에 시간을 내어 따로 걸어볼 생각이다.
읍면 행정단위조직에서 고장에 얽힌 온갖 이야기를 끄집어내어 관광자원화시킨 사례는 아마 감포읍이 전국 최초가 아닐까 한다. 시군이나 도같은 지방자치단체에서 중심이 되어 여러 종류의 길을 개발해낸 사례는 그동안 봇물터지듯이 많이 쏟아져 나왔다. 제주 올레길을 시초로해서 생긴 바람직한 현상이었지만 감포읍같은 사례는 정말 드물다고 본다.
나는 처음에 깍지길이라는 말을 듣고 생경스럽다는 느낌을 가졌다. 깍지라는 말은 우리가 자주 쓰는 말인데 두손의 손가락을 엇갈리게 끼운다는 뜻이다. 친한 친구끼리는 깍지를 끼고 장난을 치기도 하고 무엇인가를 간절히 빌고자 할때 사람들은 깍지를 끼고 두손을 모으기도 한다. 깍지걸이라는 말도 있다. 반가운 친구를 만났을때 두사람의 손가락을 끼고 팔짝팔짝 뛰면서 반가움을 표시할 경우에 쓰는 말이다.
깍지길은 그런식으로 반가움을 가득 안은 살가움으로 다가서는 길이다. 나는 물결치듯이 부드럽게 굽이치는 도로를 따라 달렸다.
작은 언덕을 넘어서지 멋들어진 해수욕장이 하나 나타났다. 오류리의 고아라 해수욕장이다. 원래는 오류해수욕장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관광객들에게 좀더 친밀감을 가지고 다가가기 위해서 오류 고아라 해수욕장으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해수욕장 입구 도로에다가 자전거를 세우고 안으로 들어가보았다. 고아라 해수욕장이 주는 첫느낌은 잘 관리되어 아주 깨끗하다는 것이었다. 화장실도 확실히 깨끗했다.
고아라 해수욕장의 백사장 길이만 해도 600m정도가 되니 작은 규모는 아니다.
폭은 55m 정도인데 솔밭쪽으로는 아주 고운 모래가 가득하다. 파도가 밀려오는 해안선으로는 햇살에 반짝반짝 윤을 내는 몽돌밭이 펼쳐져 있었다.
쓰레기 분리수거대가 곳곳에 비치되어 있어서 잘 관리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자전거를 타고 간 날은 빛의 조화가 놀라웠다. 바다 반대쪽 산으로는 진한 먹구름이 끼었는데 해변쪽으로는 흰구름이 동동 떠있어서 환상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줄을 맞추어 반듯하게 차려진 그늘막의 모습이 아무리봐도 멋지다.
해변 곳곳에는 텐트를 친 사람도 보였다.
요즘 들어 느끼는 사실인데 우리나라에도 이제는 지중해의 일류해변 못지 않다는 느낌이 드는 곳이 점점 늘어난다는 것이다.
어리바리하기 그지없는 깜쌤이지만 그동안 살아오면서 배낭을 메고 다양한 나라들의 유명한 장소를 약간은 쏘다녀 보았으므로 사물을 보는 어느 정도의 눈은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두사람의 유능한 공무원이 지역사회를 변화시키는 모습은 그리 흔한 것이 아니다. 이런 자원을 잘 활용하여 아름다운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관광자원화시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알이 아니다. 깍지길이라는 정감넘치는 낱말을 찾아내고, 땀흘려가며 온갖 난관을 물리치고 열심히 일을 해낸 감포읍사무소 직원분들이 새삼 존경스럽다.
자그마한 해수욕장이지만 관리실태를 보면 행정을 맡은 분들의 노고가 여과없이 드러나게 되어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것을 알기에 나는 마음속으로 깊은 고마움을 느꼈다.
나는 자잘한 자갈이 깔린 몽돌밭을 지나 해변으로 다가가 보았다.
세계3대 미항으로 꼽히는 대표적인 곳은 오스트레일리아의 시드니와 브라질의 리우 데 자네이루, 그리고 이탈리아의 나폴리라고 한다. 나폴리의 해변도 아름답지만 배를 타고 앞바다로 나가면 로마 공화정시대부터 이름난 휴양지였던 카프리섬이 나온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던 로마 총독 빌라도는 티베리우스에 의해 유대 총독으로 임명받은 사람이다. 성경에 디베료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 로마황제가 바로 티베리우스이다. 아우구스투스의 뒤를 이어 로마를 다스린 티베리우스의 별장이 위에서 말한 카프리 섬에 있었다.
카프리 섬 선착장 부근에는 몽돌밭 해수욕장이 있는데 규모만을 가지고 비교하자면 여기 고아라해수욕장보다 훨씬 작다. 내가 보기로는 이 정도만 해도 카프리섬의 자갈밭 해수욕장보다 몇배나 낫다는 느낌이 든다. 문제는 조화로운 개발이고 운영이고 홍보다. 아무리 좋은 것을 가지고 있으면 뭐하는가? 남이 안알아주면 아무 소용없는 일 아니던가?
카프리 해변에는 그림같은 집들이 가득했다. 너무 아름다워서 들고 올 수만 있다면 몇채라도 가지고오고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남의 것을 탐내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이다. 우리가 가진 것을 남이 탐낼 정도로 아름다운 모습으로 가꾸어나가는 자세가 필요하다.
나는 해수욕장에서 그런 생각을 해보았다.
한두사람의 의식있는 사람이 앞장서면 나머지는 따라가게 되어있다. 남이 한것을 보고 시기하고 질투해서 깎아내릴 일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깍지길을 만들어낸 감포읍사무소 직원들과 읍장님을 진심으로 칭찬하고 싶다.
해변을 서성이던 나는 다시 자전거를 타기 위해 발길을 돌렸다.
아이들을 위한 물놀이시설인 모양이다.
색감이 너무 좋아 사진을 찍어보았다. 무엇보다 촌스럽지 않아서 좋았다.
31번 도로를 따라 달리다가 해수욕장 전체를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에 자전거를 세웠다.
해수욕장으로 흘러드는 작은 민물개울과 솔밭이 어우러져 그림을 만들어내었다.
동해안으로는 해송(海松)이 많다. 바닷가 솔숲이 만들어내는 경치가 한없는 정겨움을 더했다.
짙푸른 바닷물이 넘실거리는 도로변에 자리잡은 하얀색 건물들은 정말 아름답다.
나는 깍지길 첫구간에 해당하는 도로에 멈춰서서 발아래로 펼쳐지는 그림같은 경치를 즐겼다. 이러다가 두번째 구간에는 언제 갈지 모르겠다.
내가 자전거로 달리고 있는 오류리는 포항시와 맞닿은 곳이다. 조금만 더 올라가면 행정구역상으로는 포항시가 된다.
도로 밑으로는 그림처럼 예쁘고 아기자기한 작은 해수욕장이 여기저기 숨어있어서 모르고 그냥 지나치면 엄청 손해다.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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