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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교육, 초등교육/교육단상(敎育短想)

성과급을 받고나서 3 - 초등학생들까지 교사를 평가할때

by 깜쌤 2012. 7. 18.

 

 

"선생아, 즐거웠쌈."

 

몇년전 여름방학을 하던날, 같이 근무했던 선생님들이 모여 점심을 먹은 뒤 어떤 선생님의 교실에 들렀더니 아이가  칠판에 백묵으로 휘갈겨놓고 간 글을 보고는 모두들 기겁을 했다. 물론 다른 반에서 일어난 일인데 젊은 여선생님의 어이없어 하던 얼굴 표정이 아직도 눈앞에 선하다. 학교 현장에서 일어나는 이 정도의 사건은 이제 사건축에도 끼지 못하는 일이 되었다.

 

1980년대말부터 시작된 권위주의의 파괴는 온갖 권위의 파괴까지 같이 불러오고 말았다. 권위주의를 파괴한 것이 나쁘다는 말이 아니라 무너지지 않았어야 할 권위까지 한꺼번에 무너뜨린 후유증이 예상보다 크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다. 학교에서 교사의 권위가 무너지면 교사가 설 자리는 사라지고 만다. 교사의 설자리가 문제가 아니고 교육의 효과가 실종되고 만다. 사실 요즘과 같은 이런 현실 속에서 교육자의 권위를 찾는다는 것 자체가 뉴스가 될 정도다.  

 

이제 학교에서 스승의 권위를 찾겠다고 하는 사람은 바보가 되는 세상이 되었다. 스승이라고 불러주는 사람도 없거니와 스승인척 하는 사람도 보기 힘들다. 스승과 제자간의 아름다운 관계를 기대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 되었고..... 이런 식으로 교직사회의 건전한 권위를 무너뜨린 당국이 과연 누구였던가? 지금까지의 내 경험으로 보자면 첫번째는 교육을 담당하는 기관이었고 두번째는 언론매체였다. 그 생생한 실제 사례를 들어보자.     

 

교사평가라는 미명(美名)하에서 벌어지는 대략적인 이야기는 앞글에서 조금 언급했으므로 이번에는 학생들과 학부모가 실시하는 교사평가제도를 가지고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잘은 모르지만 프랑스의 고등학교에서는 교사가 학생들에게 반말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되어있다고 한다. 고등학생 정도가 되면 어느 정도 사리를 판단할 줄 아는 연령이 되었기에 준성인대우를 해준다는 말이기도 하다.

 

고등학생이면 사리판단이 명확하고 중학생이나 초등학생은 사리판단을 잘못한다는 식으로 몰아부칠 아무런 근거도 존재하지 않는다. 초등학교 아이들도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명확하게 아는 아이들도 있기 때문이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고등학교 학생들이 교사의 강의나 수업을 평가하는 것에 대해 크게 반대하지 않는다. 대학생이라면 성인이므로 교수의 강의를 두고 수준을 평가하는게 조금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교사평가를 실시함에 있어 현실은 어떤가? 현행제도로는 초등학교 4학년부터 교사를 평가하게 되어 있다. 나는 6학년 담임을 스물여덟번째 하는 중이다. 평생에 3학년을 한번 가르쳐 보았고 5학년을 세번 정도, 4학년을 세번 정도 가르쳐보았으니 아이들 발달단계의 변천에 관해서는 어느 정도 감을 잡았다면 잡았다고 할 수 있는 경험자가 되었다.       

 

6학년이 되면 그 나이에는 어느 정도로 신체가 성장하고 아이들이 어떤 생각을 하며 어느 정도의 의식수준을 가지는지에 대해서는 이제 거의 전문가가 되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지 싶다. 그러니 4학년 아이들의 수준을 파악하는것도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4학년 아이들부터 담임선생을 평가하도록 제도를 만든 것에 대해서는 한마디로 기가차서 말이 안나올 지경이다.

 

초등학교 아이들이 교사를 평가를 하는데는 진정성과 객관성이 우선이다. 진정성이라는 말은 다 알지 싶다. 만약 아이가 장난기를 발동시켜서 평가를 해버린다면 결과는 어느 정도의 신뢰성을 가지게 될까? 아이가 교사에게 벌받은 것이나 꾸중들은 것에 앙심을 먹은 상태에서 불편한 심정을 가지고 '최하'라고 평가를 해버리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서른 명의 아이들 가운데 5명이 교사를 평가했는데 그 중 서너명이 짜고서 교사에게 최하점수를 주었다면 결과는 뻔하다. 담임교사는 단번에 문제교사로 낙인찍히게 되고 자질 함양을 위한 연수대상자가 될 것이다.

 

그것으로 끝나는가? 교사가 받는 배신감과 마음의 상처는 평생을 간다. 물론 교사가 아이에게 주는 마음의 상처도 평생을 가는 것이므로 둘다 쌤통이라는 식으로 말을 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교사와 학생이 서로 감정을 가지고 상처를 주도록 하는 그런 관계가 되어야 하는가? 그게 교육자와 피교육자가 할 짓이란 말인가? 요즘 아이들은 워낙 영악해서 교사 평가철이 되면 아주 대놓고 노골적으로 협박아닌 협박(?)을 하기도 한다.

 

"선생님께서 우리에게 그렇게 하시면 저희들도 다 생각이 있어요."

 

이게 무슨 소린가? 아무리 막가는 세상이지만 사제지간이 이런 식으로 변해야 하는가 말이다. 위에서 예를 든 이야기는 교사들 사이의 사적인 모임에서 들은 이야기다. 지어낸 이야기가 아닌 것이다.  초등학교 아이들이 그런 말을 하도록 만든 제도가 과연 옳은 제도라는 말인가? 그런 식으로 평가해서 나온 점수를 가지고 교사를 평가하고 성과급을 지급하는 자료로 삼는다면 어이가 없어서 말이 안나올 지경이다.  

      

 

 

 

현실이 이렇다. 교사를 평가하는 철이 되면 교사는 아이들의 눈치보기에 급급하다. 중고등학교에서는 아예 대놓고 위협(?)을 하는 모양이다. 이런 상황에서 무슨 교육을 한다는 말인가? 그러고서도 교육이 바로 되기를 바란다는 말인가? 기대할 것을 기대하고 바랄 것을 바라야한다. 중고등학교에서는 생활담당교사들의 수난시대가 벌어지고 있는 모양이다. 교사들도 바보는 아니어서 생활지도업무를 맡으려 하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아이들이 잘못해도 못본척하고 넘어가게 되니 갈수록 학교가 엉망이 되어가는 것이다. 결국 피해는 모든 학부모들과 아이들이 다함께 보게 된다. 

 

초등학교라고 예외는 아니다. 나는 본의아니게 6학년 아이들의 생활지도담당 비슷한 신분(?)을 가지고 있다. 나는 나름대로의 노우하우를 가지고 있어서 큰소리 안하고 조용조용하게 아이들을 휘어잡을 줄 안다. 하지만 다른 선생님들은 골머리를 단단히 앓는 모양이다. 아이들을 진심으로 감복하게 만드는 다양한 기법과 카리스마를 모든 선생들이 다 가질 수는 없는 법이다.

 

얼마전에 출장을 가는 길에 어떤 학교의 6학년 담임교사를 만났다. 같은 학교에도 근무를 해보았으므로 어떤 인품을 가졌는지 잘 아는 분인데 올해 자기가 맡은 학급의 아이에게 폭력교사로 경찰에 신고를 당한 경험을 했다고 한다. 사연을 들어보니 기가차서 말이 안나올 지경이었다. 신고를 했다는 그 학생이 수업시간에 자꾸만 다른 아이들을 못살게 굴어서 그러면 안된다고 꿀밤 정도를 준 모양인데 아이는 휴식시간에 휴대전화로 경찰서에 전화를 걸어서 폭력교사로 신고한 것이다. 

 

사정이 이런데 어느 선생이 고학년 아이를 가르치려고 할까? 저학년 담임을 하면 아이들로부터 평가를 받을 일도 없고 수업시간부담도 적고 교육과정내용도 쉬운 편이어서 부담이 한결 적은데 무엇때문에 고학년 담임을 맡아한단 말인가? 아이들로부터 미움을 받아 평가항목에서 최하를 받은 항목이 많아지면 무능교사로 찍히고 재교육을 받아야하고 동료교사들로부터 낙인을 받아야하는 현실이 언제부터 존재했던가 말이다.

 

 

어떤 분들은 아이들에게 잘보이면 되지 않느냐는 식으로 이야기를 할 수도 있겠다. 우리는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는 포퓰리즘(populism)의 폐해가 어떤 것인지 역사를 통해서 대강은 알고 있다. 중우정치(衆愚政治)가 역사에 어떤 모습으로 등장했다가 사라졌는지도 알고 있다.

 

아이들은 의외로 단순해서 마음대로 떠들고 싶어하는 존재이며 장난치고 놀고 싶어하는 존재들이다. 함부로 마구 떠들어도 가만히 놓아두고 수업시간에 잠을 자도 가만히 놓아두면 아이들에게 좋은 소리 듣는 것을 누가 모르랴? 하지만 안되는 것은 안되는 것이며 정해놓은 규칙을 준수하도록 가르치는 것은 원칙의 문제이다. 원칙을 가르칠줄 모르는 교육은 교육현장과 국가장래를 황폐화시킬 뿐이다.

 

이런 현실을 만든 장본인이 과연 누구인가? 아이들 인권도 중요하고 학력도 중요하며 국가간에 벌어지는 무한경쟁도 좋다. 하지만 교실은 아래에서부터 처참하게 무너져내리고 있는 중이다. 이렇게 만들어간 사람들이 누구인가? 언제부터 교사가 공공의 적이 되어 온갖 욕을 얻어먹고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 했으며 무능집단으로 낙인찍혀 개인간 학교간 상호경쟁의 대상이 되어야했던가?

 

말로만 인성교육을 부르짖는 정책입안자들이나 고위관료들의 모습을 보면 어이가 없다. 현실을 직시해보라. 6학년 아이들부터도 학년초부터 국가수준 시험을 쳐서 성적올리기에 급급한데 언제 어떻게 인성교육을 한다는 말인가? 그나마 인간다운 교육을 할 수 있는 시기가 초등학교 고학년일텐데 이런 식으로 몰아부치니 숨쉴 여가라도 있던가? 교사와 아이들 모두가 학력신장에 내몰리고 있는데 무슨 재주로 인성교육까지 한다는 말인지......

 

"교육이 국가의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고?"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