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다시 출발해야 한다.
지금까지 내가 밟아온 길의 궤적은 위와 같다. 지도를 클릭하면 크게 뜬다.
나는 자전거를 한번 타기 시작하면 7시간 정도는 계속 탄다. 아무데나 마구 가보기 때문이다. 성격이 그렇다. 뭘 한번 하기 시작하면 끈기있게 해본다. 지겨울때까지 한다. 하지만 처음부터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미치지는 않는다.
크게 무리하는 법도 없다. 사진만해도 그렇다. 좋은 카메라를 사서 마구 돌아다니는 그런 짓은 하지 않는다. 똑딱이 카메라로도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싸구려 카메라가 지니는 한계 정도는 알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거금을 들여 내가 지닌 경제적인 수준에 무리가 갈 정도로 멋진 카메라를 사는 일은 없다.
나에게 주어진 능력범위 안에서만 즐기는 것이다.
잔잔한 물이 거울구실을 한다는 것은 자연의 놀라운 능력이며 비밀이다.
이제 출발 준비를 거의 마쳤다.
새로 만든 무넘이가 보였다. 공사가 거의 다 된 모양이다. 완공되었는지 아닌지는 모른다.
나는 중앙선 철교 밑으로 빠져 나갔다.
이 길을 따라 가면 와룡면을 거쳐 도산서원방면으로 갈 수 있다.
보조댐으로 흘러드는 개울물이 제법 말랐다. 여기도 물이 가득차 있어야 정상이지 싶은데.....
경사가 급해서 자전거를 끌고 갔다. 비가 와서 그런지 개울물이 맑았다.
작은 교회가 보였다.
여름 같으면 갈겨니나 피라미가 보일텐데 고기들은 잘 보이지 않았다.
도로를 따라 올라가다보니 양궁장이 보였다. 땀이 나기 시작했다. 산마루를 넘어서서야 자전거를 탈 수 있었다.
와룡으로 내려가는 길목에 안내판이 보였다.
와룡을 지나 예안과 도산으로 올라가면 제법 참한 유적지들이 많다. 도산서원까지 21킬로미터 정도면 자전거를 타고갈만도 하지만 오르막이 계속된다는 약점이 있다.
나는 중앙선 철로 밑으로 도로가 지나가는 곳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렇게 가면 중앙선 기찻길을 따라가게 된다. 지금은 간이역 신세가 되어버린 이하 기차역을 가 볼 생각이다.
도로를 따라 작은 개울물이 흐르는데 물이 맑았다. 최근에 비가 온 덕분이리라.
가끔씩은 개울에 너럭바위들이 보이기도 했다. 이 부근의 산은 마사로 되어있다. 어떤 곳은 모래로 되어있기도 하다. 그러니 개울이나 강에는 모래들이 그득하다.
도로에는 아직까지 물기가 남아있었다.
이제는 시골에도 참한 집들이 많다.
개울가에서 작은 샘을 발견했다. 이따가 내려오는 길에 목이 마르면 조금이나마 축여볼 생각이다.
논에는 모심기가 시작되고 있었다. 이제는 시골에서도 손으로 모내기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게 되었다. 몇 모퉁이를 돌았더니 이하역이 나왔다. 나는 철도관사 마을을 보고 싶었다.
일제 강점기에 놓여진 철로의 기차역이 있는 곳에는 거의 어김없이 철도관사마을이 존재한다.
철도관사는 철도에 근무하던 직원들을 위해 만든 사택이라고 보면 된다.
이제는 거의 모두 불하를 해서 개인소유로 넘어가 있다.
나에게는 철도관사에 얽힌 아련한 추억들이 제법 존재한다.
어렸을때 살아본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유년기의 추억을 떠올리는데는 이런 집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기차를 타고 지나가다가 우연히 이하역 부근에 철도관사가 아름답게 보존되어 있는 모습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랐다.
이런 식으로 부속건물까지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는 곳은 정말 드물다.
일본인들이 만든 집이라고 해서 무조건 나쁜 것이라고 매도할 필요는 없다. 오해를 막기 위해 미리 밝혀두지만 나는 지독한 극일주의자다. 일본을 이기면 우리가 바로 세계 초일류가 된다는 견해를 가진 사람이다. 독도가 우리 땅이라고 하는 사실에 대해서는 추호도 양보할 생각이 없다.
다만 유년기의 추억이 얽힌 집과 같은 모양을 지니고 있으므로 그냥 한번 보고 싶었기 때문에 찾아온 것이다.
아주 튼실하게 지어진 집이다.
내 짐작이 맞다면 이런 식으로 지어진 건물은 1940년대 초반에 지어진 것이다.
70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잘 벼텨내고 있는 것이다.
나무로 만든 창고는 이제 쇠락을 거듭하고 있는 중이었다.
누가 봐도 일본식 건물임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집 부근으로 중앙선 철로가 지나가고 있다. 왼쪽에 보이는 작은 굴다리는 철도를 만들때 같이 건설한 것이다. 오른쪽은 최근에 만든 것이고.....
도로로 다시 내려온 나는 철로쪽 건물을 살펴보기로 했다.
그러니까 이 건물은 두가구가 살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이다.
이제 확실히 구별될 것이다. 좌우가 대칭이 되도록 지어진 집이다. 이런 양식은 하급직원을 위한 집이고 조금 높은 직위를 가진 분들이 살던 집은 생김새가 다르다.
나는 앞에서 보았을때 왼쪽 모습과 같은 집에서 살았다.
갑자기 선친의 모습이 떠올랐다.
속 모습이 궁금해졌다.
유감스럽게도 두 집 모두다 문이 잠겨 있었다.
내형편상 여기에 자주 올 수 있는게 아니다. 오늘처럼 문이 잠겨 있으면 안을 볼 기회를 잡기란 거의 불가능하리라.......
70여년 전에 지어진 집이지만 속에는 두칸의 방과 마루, 목욕탕과 화장실이 들어있다.
당연히 부억도 건물 안쪽에 있다.
이런 집은 간부직원용 사택이다. 역장이나 선로반의 수장 정도가 살 수 있었다.
역시 내부가 궁금해졌지만 구경할 길이 없다.
나중에 다시 와서 구경했으면 좋겠다.
나는 다시 와서 볼 수 있다는 희망을 안고 돌아섰다.
인간은 미래를 보면서도 추억을 안고 사는 동물이다. 그러기에 머리 속에 간직한 기억은 소중한 것이다.
특히 유년기의 추억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정도로 가치있는 것이기에 어릴때는 누구든지 행복해야만 한다. 그게 옳바른 길이다.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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