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로 곳곳에는 조난을 대비한 안내판들이 붙어있었다. 사람 일이란 참으로 알 수 없는 것이기에 나는 만약의 경우를 대비하여 현재 위치를 나타내는 안내표지를 촬영해나가며 걸었다.
참 좋은 세상이다.
디지털 카메라나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을 경우 이런 표지를 찍어가며 걷는 것이 여러모로 유용하다. 나는 지금 혼자 걷는 중이기에 이 정도의 자기보호의식은 가지고 있어야 한다. 내가 미끄러져서 다리를 다쳤다고 가정해보자.
그럴 경우 현재의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해서 119에 전화를 하기가 어려워진다. 디지털 카메라라 스마트폰으로 미리 찍어둔 사진이 있으면 몇번 지점과 몇번 지점 사이에서 사고를 당했으니 도움을 바란다고 이야기하는게 훨씬 더 효과적인 일이 아닐까?
온 산에는 잎떨어진 나무들만 가득했다. 산등성이에 자라는 나무들의 키가 고르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자연의 신비에 속하리라.
저 멀리 토함산 정상부가 보였다. 제법 먼곳 같지만 얼마 안되는 거리다.
나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걸었다. 세상일은 잊어버리고 자연의 신비함을 주로 생각한다.
꾸덕꾸덕하게 마른 참나무 수피엔 세월의 흔적이 가득했다. 초등학교 시절 뒷산에 올라가 땔감으로 참나무를 베어 왔던 기억이 새록새록 솟아나왔다.
이제 겨우 500미터 정도 왔나보다.
워낙 안내판이 잘 되어 있으므로 길을 잃을 염려는 거의 없었다.
산비탈에는 진달래나무들이 가득했다. 봄에는 온 산이 진달래로 덮일 것이다.
오래 묵은 진달래나무들은 제법 크게 자란다.
진달래 나무 사이로 오솔길이 끊어질듯 이어지고 있었다.
어느해 풍우(風雨)엔가 무너진 곳이 보였다.
제법 걸어온 셈이다.
나는 '옛동산에 올라'라는 노래를 떠올렸다. '옛 동산에 올라'는 우리나라 가곡의 제목이다.
내 놀던 옛 동산에, 오늘 와 다시 서니
산천의구란 말 옛시인의 허사로고
예 섰던 그 큰 소나무 베어지고 없구려
지팡이 던져 짚고 산기슭 돌아서니
어느 해 풍우엔지 사태져 무너지고
그 흙에 새 솔이 나서 키를 재려 하는구료
노산 이은상 선생이 지은 현대시조에 홍난파 선생이 곡을 붙였다.
나는 가사를 생각하며 걸었다.
그렇다. 산천도 자꾸만 변하고 사람들도 자꾸만 바뀌어지고 있는 중이니 정녕 인생무상이련가? 나는 인생이 허무하다는 식의 표현을 싫어하는 사람이다. 얼마 살진 못했지만 그래도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정녕 짧은게 아니었다. 길다면 정말 긴 시간이었다는게 평소의 내 생각이다.
첩첩이 누운 산들이 아득하기만 했다.
내가 걸어온 길들이 까마득하게 뒤로 물러나 있었다.
경주에서 감포로 이어지는 산길에는 차들이 달리고 있었다.
밑에 일직선으로 난 길이 새길이다. 추령에 터널이 뜷리고 꼬불꼬불하던 길이 직선화되면서 경주에서 감포와 양남으로 가는 시간이 엄청 단축되었다.
한국수력원자력 본사 건물이 들어설 장항 골짜기가 저 산 밑에 보였다.
이런데서 조난을 당하면 살아나기가 어려울 것 같다.
처음 산에 오를때 만난 무선기지국 탑이 저 밑에 보였다.
나는 앞을 보며 계속 걸었다.
산에 오른날은 바람이 그다지 매섭지 않아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이리저리 휘어지고 구불텅거리던 길이 마침내 막바지에 이른듯 했다.
길이 좋아지면서 정상에 거의 도달한 느낌이 들었다. 드디어 석굴암주차장에서 올라오는 길까지 걸어온 것이다. 다른 지방에서 온듯한 분들이 줄줄이 정상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나는 정상 바로 밑의 헬리콥터 착륙장을 거쳐서 정상으로 올라갔다.
산 정상 부근에는 말라버린 풀들이 수북했다.
드디어 다왔다.
토함산 정상이다. 약 두시간쯤 걸렸나보다.
해발고도 745미터다.
경주 인근에서는 가장 높은 산봉우리 가운데 하나다. 경주남산보다 훨씬 높다.
저멀리 남산이 누워있었다.
저 멀리 희미하게 누에처럼 누운 산이 남산이다.
나는 석굴암 주차장 쪽으로 내려가기로 했다.
내가 처음 출발한 곳이 까마득하게 보였다.
토함산 정상에서 석굴암 주차장으로 가는 길은 아주 평탄한 편이다. 거꾸로 말한다면 석굴암 주차장에서 토함산 정상을 오르기는 아주 쉽다는 말이다.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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