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폐교가 되어버린 청운국민학교 입구 왼쪽에 멋진 한옥건물이 보였다. 철구조물로 앞면을 둘러쳤기에 들어가볼 수가 없었다.
쇠창살사이로 카메라를 넣어서 사진을 찍어보았다. 건물 이름은 파서정(巴西亭)이다. 인터넷으로 조사를 해보았더니 여기 청운리는 평해황씨의 집성촌으로 알려져 있다는 것이다.
평해 황씨의 후손들이 지은 건축물이 꽤 되는 모양이다. 문살에 바른 창호지가 다 떨어져있어서 나그네의 마음을 안타깝게 했다.
파서정에서 용전천을 내려다 본 모습은 아름답기만 했다.
멋을 즐길줄 알았던 선인(先人)들은 이 부근의 멋진경치를 골라서 취동팔경(翠洞八景)이라고 이름지어 불렀다고 한다. 남의 글을 함부로 인용할 수 없어서 자세히 소개하지 못하는 것이 유감이다.
그냥 척봐도 경치가 정말 아름답다. 현동에서 청송으로 이어지는 도로가 이 밑을 지나간다. 파서정을 보고난 뒤 나는 마을 안으로 들어섰다.
옛 정취를 불러 일으키는 고택이 한채 남아있다고 해서 마을 안길로 들어선 것이다.
돌을 박아넣은 토담을 바깥벽으로 아우른채 흙벽돌로 쌓아올려 만든 이런 집은 이제 구경하기조차 어렵다.
모퉁이를 돌아서자 햇볏짚으로 지붕을 올린 초가가 한채 나타나며 눈길을 끌었다.
이 집이 바로 청운리 성천댁이다. 대문간 옆에 안내판이 서 있었다.
대문간 행랑채는 초가지만 마당 안쪽에는 기와집이 자리잡고 있었다. 문이 잠겨있어서 안으로 들어가볼 수가 없었다.
나는 담장에 붙어서서 안을 살폈다.
저 멀리 장독대가 보였고 처마밑에는 짚으로 짠 멍석들이 곱게 돌돌 말려서 벽을 의지하여 매달려 있었다.
성천댁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안내판을 참고로 하기 바란다.
나는 다시 골목길로 내려섰다. 교회를 지나쳐서 31번 국도로 다시 나왔다. 이젠 청송까지 걸어갈 차례다. 시간을 보니 주왕산을 다녀오는 것은 무리인 것 같았다.
나는 용전천 옆으로 난 도로를 따라 걸었다. 기분이 상쾌했다.
강바닥과 강변에는 갈대가 많았다. 누런 색으로 변한 갈대가 초겨울의 정취를 살려주었다.
청송까지는 십리밖에 되지 않는다. 나는 발걸음을 빨리했다. 이런 길은 자전거를 타고 달려야 제맛이겠다. 지난 여름 라이딩을 했던 도로도 여기서는 크게 멀지 않다.
도로가를 장식한 이런 나무들은 애기사과나무일까? 열매들이 찬바람과 서리에 그냥 녹아가고 있었다.
가을철이었다면 열매 색깔이 제법 참했었으리라.
강변으로 펼쳐진 벌판이 제법 넓은 축에 들어갔다. 제방 보강공사를 하는 것인지는 몰라도 대형 덤프트럭들이 건너편 둑길을 부지런히 달리고 있었다.
조금 걸어가다보니 야산 한쪽에서 장례식이 벌어지고 있었다.
또 어떤 집에서 슬픔을 당했을까 싶어서 괜히 마음이 울컥해졌다.
도로가에는 붉게 단풍이 든 남천들이 즐비했다. 그 사이에 끼어든 연두색 남천은 또 어떤 연고로 여기에 자리잡았을까?
아직 나이가 적어서일까? 붉은 열매가 보이지 않았다.
조금 더 걸어갔더니 마침내 청송읍내가 희미하게 살짝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저 멀리 산밑으로 보이는 곳이 청송읍이리라.
이제 한구비만 돌아가면 된다.
시골길을 걷는 것은 지겹지가 않다.
정감있는 풍광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나는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상류쪽을 돌아보았다.
여기도 도로변 공사를 하고 있었다. 아마 자전거 도로를 만드는게 아닌가 싶었다.
이런 길을 자전거로 달리면 그 상쾌함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지 싶다.
맑은 물이 흐르는 용전천에 구름속에서 방금 빠져나온 햇살이 내려 녹아들고 있었다.
이제 저 모퉁이만 돌아가면 된다.
어리
버리
'우리나라 안 여기저기 돌아다니기 > 나라안 여기저기 in Korea'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청송은 아름다웠다 4 - 향교 (0) | 2011.12.20 |
---|---|
청송은 아름다웠다 3 - 향교 (0) | 2011.12.16 |
청송은 아름다웠다 1 - 폐교에서 (0) | 2011.12.11 |
안동에서의 자전거 라이딩 12 - 기차역으로 B (0) | 2011.10.01 |
안동에서의 자전거 라이딩 11 - 기차역으로 A (0) | 2011.09.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