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9일 아침 일찍 청송에 갔다가 저녁에 돌아올 일이 생겼다. 청송교육지원청에 가서 선생님들을 모시고 학급경영에 관해서 강의를 해야만했는데 문제는 차편이었다. 제일 쉬운 방법은 무궁화호 기차를 타고 안동까지 간 뒤에 버스로 진보까지 가고 다시 시내버스로 갈아탄 뒤 청송으로 가는 것이었다.
아니면 기차로 영천까지 가서 영천에서 청송으로 가는 시외버스를 타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 여겼다. 8일 저녁 일기예보를 보니 경북 북부지방에도 많은 양의 눈이 예상된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청송에도 눈이 올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가 된다. 눈때문에 도로가 막혀 강의 시간에 늦어지면 큰일이다. 내가 늦어져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것은 생각만해도 너무 끔찍한 일이기에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나는 결국 다른 방법을 택하기로 했다. 경주에서 안동으로 가는 우유회사 트럭에 얹혀가는 방법이 떠올랐다. 트럭 기사분을 잘 알기에 아내를 통해 밤늦게 전화를 드렸더니 그 분은 선선히 허락해주셨다. 아침 7시까지 우유회사에 나오라는 것이었다.
새벽 일찍 아침을 챙겨먹고 6시 40분에 집을 나왔다. 택시를 타고 회사에 가서 기사어른을 만나 인사를 나누고는 곧 조수석에 올라탔다. 대형 탱크로리차여서 운전석이 엄청 높았다. 지난 여름에도 이 차를 타고 안동부근의 길안까지 가서 하루종일 자전거 라이딩을 즐긴 적이 있었다.
경주를 출발해서 7번 국도를 타고 강동까지 간뒤 안강을 거쳐 죽장면을 지난 뒤 현동을 지나 청송으로 가게 되었다.
아침 일찍 시골길을 달리는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상쾌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포근하던 날씨가 어제부터 기온이 뚝 떨어져서 조수석에 앉아있어도 추웠다. 오늘따라 날씨가 유난히 차가워진 것 같았다.
산골짜기를 흐르는 물이 제법 맑게 보였다. 아직까지 개울물이 얼어붙지는 않았다.
포항과 청송사이를 가르는 꼭두방재를 넘었다. 트럭은 계속 달려나간다. 그런데 눈 올 기미는 어디에도 보이지 읺았다.
청송군으로 들어서서 마침내 청송 자연휴양림 부근의 고개를 넘어가기 시작했다. 도로가에 해둔 조경 솜씨가 일품이었다. 하늘에 구름이 깔리기 시작했지만 눈은 오지 않았다.
일부 구간은 4차선으로 말끔하게 정비되어 있어서 제법 드라이브 하는 분위기를 풍기기도 했다. 시계를 보니 아직 아홉시도 되지 않았다. 강의는 오후 한시반부터 예정되어 있는데 너무 일찍 온 셈이다. 그렇다고 해서 무료하게 시간을 보낼 내가 아니다. 정말이지 오늘은 천금같은 기회를 잡은 날이다.
나는 청운 삼거리에서 내리기로 했다. 버스시간만 잘 맞춘다면 청송 주왕산을 둘러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며 트럭에서 내렸다. 현재의 바깥기온이 2도란다. 영하가 아니니 그나마 다행이다. 이정표를 보았더니 청송까지는 4킬로미터였다. 그정도 거리는 한시간이면 걸어갈 수 있다. 동네 수퍼에 들러 일단 시내버스 시간표를 확인하고는 왔던 길을 되돌아 걸었다.
도로를 따라 용전천이 흐르고 있었다. 이 물은 흘러서 안동 임하댐으로 인해 만들어진 임하호로 흘러 들어갈 것이다. 지난 여름에 보았던 임하호의 물가운데 일부지역에서는 왜 그리 녹조현상이 심했던지......
햇살이 완전하게 나지 않아서 그런지 슬금슬금 추위를 느끼기 시작했다. 나는 추위에는 특별히 약한 편이다. 이럴때는 따뜻한 자판기커피라도 한잔 마시면 좋겠지만 도시에서 그렇게 흔한 자동판매기조차 여기서는 콧배기도 보이지 않았다. 장갑을 끼고 온것이 그나마 도움이 되었다. 서류가방을 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용전천을 감싸고 돌아가는 절벽위에 오두커니 자리잡은 한옥을 발견하고 찾아가 보았다. 재실인지 가정집인지 구별조차 되지 않는다. 담장밖에는 보리가 심겨진 작은 고랑이 보였다.
앙상하게 하얀 줄기만 남긴 나무가 차가운 겨울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이젠 시골에도 아름다운 집들이 제법 많다. 결과적으로 시골 풍경조차 아름답게, 그러면서도 윤택하게 바뀌어 나가는 중이다.
태양열을 이용하기 위한 집열판이 남향을 보고 있었다.
나는 용전천을 따라 난 도로를 조금 걸어보았다.
이정표를 살펴보았더니 포항까지 78킬로미터라고 했다. 그 정도면 제법 되는 거리다. 나는 경주에서 왔으니 경주까지의 거리는 조금 더 될 것 같다.
요즘 청송을 대표하는 특산물은 사과다. 청송 꿀사과는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졌다. 노란색을 띄는 작은 점같은 것이 사과 핵심부에 박혀있는 꿀사과는 소비자들로부터 얻는 인기가 대단하다.
강변을 따라 만든 제방에 사과그림을 만들어 넣었다.
산자락을 감아 돌아가는 물줄기가 절벽 아래에다가 깊은 소를 만들었다.
맑은 물이 만들어낸 여울과 소가 멋진 풍광을 선사해준다.
개울을 가로지르는 저 다리를 따라가면 청송이 자랑하는 주왕산으로 나그네를 안내해줄 것이다.
이런 곳에는 어떤 고기들이 사는지 궁금하다. 물속 바위 덩어리 밑에는 꺽지같은 것이 웅크리고 있지나 않을까?
우리나라의 산천은 아기자기함으로 넘쳐난다. 그게 우리네 산하의 특징이지 싶다.
조금만 때가 덜묻었다면 구채구 만큼이나 아름다울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엇다. 구채구는 중국 서부 사천성의 민산 깊은 줄기속에 자리잡아 동화같은 풍경을 자랑하는 곳이다.
여행깨나 다녔다는 사람들은 구채구 정도는 쉬이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도로 위쪽 산자락에 폐교가 보였다. 학교로 들어가는 길을 따라가 보았더니 청운국민학교라는 이름패가 붙여진 작은 바위가 나왔다. 기증자의 이름도 함께 보였다.
지금은 학교가 다른 용도로 쓰이는 것 같았는데 관리 상태가 그리 좋아보이지 않았다.
교문 앞에는 게시판으로 쓰였던 것이라고 짐작되는 시멘트 구조물이 남아있었다. 괜히 마음이 아려왔다.
우편배달부가 남겨둔 우편물이 찬공기에 떨면서 주인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혹여 바람에라도 날아가지 말라고 돌로 콕 눌러두었는데.......
학교 운동장에는 온실용 자재가 남아있었다.
언덕위에는 학교 건물이 한줄로 길게 누워있었는데 깨어진 유리창이 을씨년스러운 풍경을 연출해내고 있었다.
한때는 시골아이들이 여기에서 '청운(靑雲)의 푸른 꿈'을 가꾸었으리라.
중앙 현관의 유리창도 깨어진 것 같았다. 여기 이 학교터도 어느 누구에게는 유년시절을 생각나게할 소중한 추억의 장소이건만 휑한 모습올 남아있으니 세월의 무상함을 느낀다. 내가 졸업한 초등학교도 조금 있으면 물에 잠길 판이어서 그런지 안타까움만 가득했다.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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