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이 가본 순간 나는 내 눈을 의심해야했습니다. 물위에 둥둥 뜬 녹색의 거대한 물질들은 과연 무엇인지 궁금하기도 했고 물빛이 과연 저래야만 하는지 의아했기 때문입니다. 가장 맑고 깨끗해야할 물이 걸쭉한 스프마냥 변해있다는 사실이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습니다.
부영양화 현상의 극치인지 아니면 또 다른 현상인지 정확하게 모르겠습니다만 저런 현상을 한 이십여년전에 경주시 아화 부근의 저수지에서 경험한바 있었기 때문입니다. 낚시를 하러갔다가 기절초풍할듯이 놀랐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습니다.
은행나무 구경도 좋지만 이런 것은 정말 아니라는 생각부터 먼저 들었습니다. 이런 물을 우리가 먹고 마시고 있다니.....
다리를 건너가면 용계은행나무를 볼 수 있습니다. 여기가 임하댐의 상류지점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은 명백합니다.
다리 건너편에 은행나무가 보입니다.
거대합니다. 저 정도로 자라나려면 기본적으로 몇백년은 살았지 싶습니다. DAUM 문화유산 자료에 의하면 아래와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용계의 은행나무는 나이가 700년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 31.0m, 둘레 13.67m이다. 원래는 용계초등학교 운동장에 있었으나 임하댐의 건설로 물에 잠길 위치에 있어, 15m의 높이로 흙을 쌓아 지금의 위치에 옮겨 심은 것이다.
이 나무에는 조선 선조(재위 1576∼1608) 때 훈련대장이었던 탁순창(卓順昌)이 서울에서 내려와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은행나무 계(契)를 만들어 이 나무를 보호하고, 매년 7월에 나무 밑에 모여 서로의 친목을 도모했다고 하는 이야기가 전한다. 현재 이 마을은 사라졌지만, 탁씨의 자손들은 해마다 나무에 제사를 드리며 보호하고 있다.
용계의 은행나무는 주민 단합을 이루게 하는 상징물로서의 역할을 하여 온 나무로서 가치가 크고, 우리 선조들이 나무를 사랑하고 보호한 것을 알 수 있는 자료이며 우리나라에 있는 은행나무 가운데 가장 크고 오래된 나무 중에 하나이므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임하댐이 만들어지면서 용계리의 상당부분이 물속에 잠겼던가 봅니다. 수몰되는 것이 너무 아까워 좀더 높은 곳으로 옮겨심었다는 이야기 속에 담긴 애틋한 마음이 이해가 됩니다.
이 은행나무는 우리나라에서 두번째로 굵다고 합니다.
애써 가꾼 흔적이 역력합니다.
나는 저 골짜기를 따라 자전거를 타고 내려온 것이죠.
좀 쉬어가기로 했습니다. 호반의 벤치로 가보았지만 작은 벌레들의 성화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물이 저 지경이니 온갖 벌레들이 극성을 부릴 것은 안봐도 뻔합니다.
호수물이 개구리밥이 가득 뜬 논처럼 보일 지경입니다.
우리 인간들이 자연에 대고 저지르는 무지막지한 범죄행위는 언제가 되어야만 끝날지 아무도 모릅니다.
호수물이 초록색으로 보이다니..... 몇해전에는 경주의 덕동댐물이 황토빛으로 변한 적이 있었는데 여긴 초록으로 변한 것입니다.
나는 은행나무를 끼고 시계반대방향으로 천천히 돌았습니다.
산자락 밑에 관리인의 집이라고 생각되는 가옥이 한채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은행나무 주위의 잔디밭이 아주 정갈하게 손질되어 있었습니다.
잔디밭 한쪽에는 화장실도 숨어 있었습니다.
관리인의 집에서 본 모습입니다. 세상의 모든 녹색식물이 이런 대접을 받는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내가 밖에서 기웃거렸더니 할머니 한분이 나오셨습니다. 안으로 들어오라고 하시더군요.
현관 오른쪽방은 전시실이었습니다. 정말 이런 모습의 공간이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위에서 잠시 인용을 했던 DAUM 문화재 홈페이지에는 은행나무에 대해 아래처럼 묘사를 해두었습니다.
은행나무는 살아 있는 화석이라 할 만큼 오래된 나무로 우리나라, 일본, 중국 등지에 분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중국에서 유교와 불교가 전해질 때 같이 들어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가을 단풍이 매우 아름답고 병충해가 없으며 넓고 짙은 그늘을 제공한다는 장점이 있어 정자나무 또는 가로수로도 많이 심는다.
젊었던 날 독일에서는 우리나라 은행나무잎을 대량으로 수입해간다는 신문기사를 본적이 있습니다. 독일에서는 은행잎에서 혈액순환 촉진제로 쓰이는 특수성분을 추출한다고 하더군요. 한때는 우리나라 은행잎이 세계최고품질을 자랑한다면서 모조리 긁어가기도 했습니다.
용계리 은행나무는 탁씨 집안에서특별히 신경을 써서 보호해왔던가 봅니다. 글 내용에 그런 사실이 아주 자세하게 밝혀져 있습니다. 다시 DAUM의 문화재 관련 내용을 한번 더 인용해보겠습니다.
조선 선조 때 훈련대장 탁순창은 낙향해서 뜻을 함께 하는 사람들과 ‘은행나무계’를 만들어 용계리 은행나무를 보호했고, 해마다 7월이면 나무 밑에 모여 서로의 친목을 도모했다고 한다. 탁씨 자손들은 이 후에도 매해 7월에 이 나무를 찾아 제사를 올리고 보호하고 있다.
마을 사람들은 용계리 은행나무를 신목(神木)이라 하는데, 이는 나라에 변고가 있을 때마다 소리 내어 울기 때문이라고 한다.
“15m 들어 올려 수몰에서 건져진 신목”
용계리 은행나무는 임하댐의 건설로 수몰 위기에 처하자 1990년 11월부터 1994년 10월까지 막대한 예산과 인력을 동원하여 주변에 높이 15m의 인공 산을 만들고, 그 위로 들어 올려 심은 나무이다. 탁씨네들이 해마다 나무에 제를 지내며 모셨던 나무였기에 수몰로부터 구출하려는 노력이 대단했음을 알 수 있다.
전시실 반대쪽의 방은 거실로 사용되는듯 했습니다. 그 방에서 유리창을 통해본 은행나무 경치가 일품이었습니다.
은행잎이 노랗게 물드는 가을이면 정말 환상적인 경치가 될것 같습니다.
나는 할머니께 공손히 인사를 드리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다음 행선지는 지례예술촌입니다. 촌장님으로 전화가 왔길래 받았습니다. 현재 어디까지 와있는지 궁금하셨던가 봅니다. 아직 찾아뵙지도 못한 어른으로부터 전화를 받게되니 너무 죄송하기만 했습니다.
예술촌에 오면 점심을 같이 하자는 말씀까지 하시길래 정말 몸둘바를 모르게 되었습니다. 생면부지의 처지인데 그런 제안을 받았으니 말입니다. 더 열심히 자전거 페달을 밟아야만 했습니다. 한번도 안가본 길이니 도대체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도저히 짐작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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