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깜쌤의 세상사는 이야기 : '난 젊어봤다' - 자유 배낭여행, 초등교육, 휘게 hygge, 믿음, 그리고 Cogito, Facio ergo sum
  • 인생 - 그리 허무한게 아니었어요. 살만했어요
우리나라 안 여기저기 돌아다니기/나라안 여기저기 in Korea

안동에서의 자전거 라이딩 3 - 묵계서원

by 깜쌤 2011. 9. 3.

 

만휴정에서 묵계서원으로 가기 위해 왔던 길을 되돌아나오는데 숲 사이로 기차 비슷한 것이 보였습니다. 호기심이 발동해서 가보았더니 정말 기차가 수두룩했던 것입니다.

 

 

누가 어떤 목적으로 여기에다가 지하철용 기차를 가져다 놓은 것일까요?

 

 

여기는 예전에 묵계초등학교가 있었던 자리로 알고 있습니다. 시골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줄어들면서 폐교가 된 것입니다. 우연히 만난 마을 어른께 기차가 저렇게 모여있는 연유를 여쭤보았지만 잘 모른다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나는 도로를 건너 마을길로 들어섰습니다. 묵계서원은 마을 입구에서 300여미터 정도 떨어진 언덕배기 위에 있습니다.

 

 

자전거를 끌고 언덕 비탈길을 올랐더니 저만치 앞에 모습이 나타났습니다.

 

 

서원 문을 열어두었더군요. 이런 작은 마음 씀씀이 하나하나가 어떤 지역 사회에 대한 이미지를 결정합니다. 경주시내 부근의 어느 서원은 일년내내 문이 닫혀있는듯 하더군요. 제가 갈때마다 문이 닫혀있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안동김씨대종중 홈페이지에서는 묵계서원에 대해 이렇게 기술해두었습니다. 글의 출처가 되는 곳 주소는 다음과 같습니다.

 

                                      http://www.adkim.net/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19호 - 3동, 안동시 길안면 묵계리 705번지에 소재


이 서원은 1687년(숙종 13) 영남사림(嶺南士林)이 발의하여 서원을 창건하고 보백당 김계행 (金係行, 1431~1571)선생과 응계(凝溪) 옥고(玉沽, 1382~1436)선생의 위패(位牌)를 봉안(奉安) 하고, 후학을 교육하였다. 이 서원터는 갈암(葛庵) 이현일(李玄逸)선생이 잡았다고 한다.


그후 1869년(고종 6)서원철폐령에 의하여 철폐되었다가 1998년 다시 복원하였다. 사당은 청덕사(淸德祠)이고 강당은 입교당(入敎堂)이며, 누는 읍청루(揖淸樓)이고, 문은 진덕문(進德門), 재(齋)는 극기재(克己齋)라 한다.


강당은 정면 5칸, 측면 5칸의 口자형 주사(廚舍)가 있다.



이제 '진덕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갑니다.

 

 

읍청루라는 이름을 가진 누(樓)가 제일 먼저 나그네를 환영해줍니다. 묵계서원에서는 고택을 활용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가 봅니다. 오늘따라 방문객이 없어서 그런지 구경꾼은 어리바리한 깜쌤 혼자뿐이었습니다.  

 

 

읍청루 왼쪽편에 자리잡은 반송 한그루가 나를 반겨줍니다. 담장 너머로 서원을 관리하시는 분이 사는 주사(廚舍)가 보였습니다.

 

 

누의 기둥들이 우람합니다. 기둥을 받치고 서있는 주춧돌도 아주 정성들여 손질을 한것 같았습니다.

 

 

나는 올라가보기로 했습니다. 아무도 보는 이가 없지만 나는 대청 입구에서 신발을 벗었습니다.

 

 

누에 올라섰더니 서원 전체구도가 한눈에 잡혔습니다. 묵계서원이라는 현판이 붙은 곳이 강당인가 봅니다.

 

 

강당 옆 담장에는 주사로 통하는 쪽문이 있습니다.

 

 

흙담 밑에는 맨드라미와 봉숭아가 피었고 배롱나무(백일홍)도 좌우로 몇그루 보였습니다.

 

 

전체적으로 수수하면서도 단정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하기사 교육기관이 지나치게 화려하다면 문제가 조금 있는 일이 되겠습니다. 이름이 바뀌기전의 일이라고 기억합니다만 빠리의 소르본느 대학에 가본적이 있었습니다. 명문이라고 소문난 명성에 걸맞게 대학건물에서 나는 진정한 예술성을 찾았습니다.     

 

 

미음자(ㅁ)모습으로 생긴 주사가 보였습니다. 주사의 모습은 나중에 자세하게 소개해드리겠습니다.

 

 

강당을 중심으로 해서 좌우에 건물이 있는 것이 일반적인 모습인 것같은데 여기는 오른쪽에만 재사 건물이 있었습니다. 대신 왼쪽 담장 밖에는 주사가 있었던 것이죠.

 

 

이제 누마루에서 내려가야합니다.

 

 

제가 들어온 대문의 모습입니다.

 

 

여름에서 가을까지는 예전에 누마루가 톡톡히 제 구실을 했지 싶습니다. 더위를 피할 수 있는 곳으로 혹은 학습공간으로 사용되지 않았을까요?

 

 

담장너머로 보백당 선생의 신도비가 있는 건물이 보였습니다.

 

 

누를 내려온 나는 강당이 있는 중간 마당으로 걸음을 옮겨봅니다.

 

 

이제 돌계단을 올라가봅니다. 내가 조선시대의 선비가 된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오른쪽의 재사 건물이 제법 검박하면서도 단아합니다.

 

 

묵계서원은 화려하지 않아서 좋았습니다. 조선시대 말기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지시로 인해 서원이 철폐될 당시의 모습과 복원한 현재의 건물 모습이 얼마나 닮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수수해서 더 정감이 갑니다.

 

 

담장밑에 가득한 꽃들이 주는 정감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오른쪽 재사에는 극기재라는 현판이 붙어있었습니다.

 

 

강당 안쪽 대청 마루 위에 붙은 편액에는 입교당(立敎堂)이라는 글씨가 선명합니다. 강당 정면 처마밑의 현판에는 묵계서원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대들보와 서까래의 선이 정말 아름답습니다.

 

 

공부를 하는 선비의 입장에서는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 큰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 뜻에서 극기재라고 했을까요?

 

 

 

강당마루에는 기왓장에 그린 그림 몇점이 보였습니다. 신발을 벗고 올라가보았습니다.

 

 

연과.....

 

 

범이었습니다. 범이라.......   안동댐 부근의 전시장에서 본 기왓장 그림이 문득 생각났습니다. 혹시 그때 그분이 그린 그림일까요? 궁금하신 분들은 아래주소를 눌러보면 됩니다.

 

                            http://blog.daum.net/yessir/15866137

 

세상에는 재주 많은 분들이 즐비합니다. 무림소설의 방식으로 말하자면 강호엔 알려지지 않은 절정고수들이 수두룩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