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동생의 이름이 김인문이다. 올해 그러니까 2011년 4월에 돌아가신 탤런트 김인문씨가 아니고 외교가이며 정치가였던 인물이다. 아버지는 김춘추이고..... 그 자신의 이름은 김법민!
그가 바로 문무왕이다. 신라의 제30대 임금이다. 그가 죽고난 뒤 화장을 했던 장소로 전해지는 곳이 바로 위 사진 속에 등장한다. 이름하여 능지탑지(陵只塔址)인데....... 경주 국립박물관에서 불국사로 가는 7번국도와 동해남부선 철로가에 자리잡고 있다.
능자탑지에 서서 서쪽을 보면 신라시대의 왕궁터였던 반월성터가 저 밑으로 드러난다.
경죽 영주에 가면 소백산 자락에 부석사라는 절이 있다. 부석사에서 해질녁에 내려다보는 경치가 일품이라고 하지 않는가? 의상대사로 하여금 부석사를 창건하게 한 분이 문무왕이다.
만파식적 이야기로 유명한 신문왕은 문무왕의 아들이 된다. 능지탑지에 남아있던 탑이 원래는 몇층이었는지 자세히는 모르지만 5층 석탑이 아니었을까 하고 추측을 한단다.
탑 사방에는 십이지신상이 새겨져 있는 화강암이 박혀있다. 1981년 2월 17일자 경향신문 기사에 의하면 발굴후 관리 소홀로 염소상과 토끼상 두개를 도난당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높이 1미터 너비 70센티미터 정도의 크기였다고 한다.
나는 길가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능지탑으로 다가가서 한바퀴 천천히 돌아보았다.
1400여년전의 작품이라는게 믿어지지 않는다. 이런 문화재를 돈으로 여겨 훔쳐갔던 사람도 대단한 사람들이다. 돈이 된다면 자기 조상묘도 파헤칠 사람들 아니겠는가?
탑부근에는 제자리를 찾지 못한 석재들이 쌓여있기도 하다. 나는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그늘에 앉아 숨을 고루었다.
그림이라도 남아있으면 꿰어맞출수도 있으련만 단순한 돌만 가지고는 원래 모습을 복원해내기가 지극히 어려우리라. 2층 모습으로 복원을 한 후 남은 석재들을 한곳에 가지런히 모아두었다.
산기슭아래에 뻗은 철로위로 기차가 지나갔다. 기적 소리를 남기고......
입장료는 없는 곳이다. 그냥 찾아가기만 하면 된다. 가서는 보면 되고......
능지탑지부근에는 가게도 없으므로 마실 물 정도는 알아서 준비해야 한다. 탑주위에 민가가 몇채 있기는 하다. 선덕여왕릉은 능자탑지에서 아주 가깝다.
잠시 나무 그늘에 쉬면서 경주시가지를 내려다 보는 것도 좋다. 십이지신상을 세밀히 살펴보는 것도 좋고.....
화강암에 새겨둔 연꽃잎을 보며 조상들이 추구했던 그 어떤 정신세계를 되새겨 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리라.
무슨 동물 같은가? 모르는 사람은 손오공이 여의봉을 들고 탄생한 장소가 여기라고 주장해도 될 것 같은 분위기다. 역사왜곡을 시도하는 중국 되놈들에게 그런 소리를 해서 약을 올려보면 어떨까? 그늘에 앉아 쉬면서 나는 별별 생각을 다 해보았다.
선덕여왕릉에 가는 길이라면 꼭 들러보는게 좋다. 그냥 지나치기엔 조금 아쉬운 곳이다.
저멀리 단정하게 서 있는 내 자가용이 보였다. 바퀴가 두개이고 오직 내힘으로만 갈 수 있다는게 약점인 내 자가용이다.
이제 저 길을 따라가서 왼쪽으로 방향을 튼 뒤 낭산을 넘어갈 것이다.
산들바람에 풀잎들이 마구 눕고 있었다. 온 몸에 솟아오른 땀이 날아가는 듯 했다. 시원했다.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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