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 발생빈도가 높기로 소문난 도로 가운데 하나가 경북동해안을 따라 가는 7번 국도이다. 울산에서 경주를 지나 포항으로 연결되는 구간에서 대형사고가 잘 발생하는 것으로 악명이 자자하다. 7번 국도가 악명만을 가진 도로는 아니다.
경주시를 통과하는 구간안에는 멋진 유적지들이 도로가에 즐비하다. 물론 알려지지 않은 유적지들도 제법 된다. 그 중에 하나는 경주국립박물관과 황룡사터가 이 멀리 보이는 벌판안에 자리잡은 구황동 모전석탑지가 아닐까 한다.
유적지에 관심이 없는 분이라면 도로가에 유적지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상태로 지나칠 수밖에 없게 되어있다. 교통량이 많기로 소문난 7번 국도에 차를 세우고 유적지 탐방에 나선다는 것은 죽음을 초래하는 자살행위와 마찬가지이므로 아예 처음부터 차를 세우겠다는 마음을 먹지 않는게 현명하다.
7번 국도와 (주)경농 경주 중앙연구소 사이를 잘 보면 논벌 가운데 안내판이 하나 서있음을 볼 수 있다. 바로 거기다. 구황동 모전석탑지인 것이다. 구황동은 당연히 행정지명이니까 이해하기가 쉬울테지만 '모전석탑'이라면 문제가 달라질지도 모른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의 내용을 참고자료로 인용해보면 모전석탑에 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해두고 있다.
<모전석탑>
"돌을 벽돌모양으로 다듬어 쌓은 탑. 건조재료는 석재이지만 형태가 전조탑파(塼造塔婆, 줄여서 塼塔)의 양식을 보이고 있는 탑을 일컫는다. 일반적으로 전탑을 축조하는 데는 건탑(建塔)에 앞서 벽돌을 만들어내는 작업이 우선되어야 하는데, 이러한 작업과정에서 진흙을 빚어 벽돌을 구워내는 일이 곧 석재를 다듬어 모전석(模塼石)을 생산하는 일로 바뀌어져, 이러한 연유에서 결국은 모전석탑을 축조하게 되었던 것이다.
모전석탑은 우리 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특이한 현상으로서 한국석탑의 하나의 이색적인 양식으로 정착되었다. 전탑의 축조는 많은 수고와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석탑에 비하여 극히 적게 조성되었고 모전석탑 또한 많이 조성되지는 못하였지만, 통일신라시대와 고려시대에는 전탑에 비해서 모전석탑이 많이 건립되었음을 현존하는 유구를 통해서 알 수 있다. 그것은 아마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돌을 좋아하였고, 또한 돌을 다루는 기술이 발달하였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그래서 그런지 여기서는 탑을 이루었던 탑신이 무너진채로 널려있음을 볼 수 있다. 화강암 덩어리에 새겨진 조각들을 보면 예사로운 솜씨가 넘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부근에는 차를 세워둘만한 마땅한 곳이 없다. 굳이 차를 세우려면 보문으로 올라가는 길에 작은 공원이 있는데 그 이면도로에 차를 세우고 조금 걸으면 되겠다. 시내버스는 유적지 쪽으로 가지 않는다.
몸동작에서는 인왕역사같은 냄새가 난다. 역동성이 넘친다.
불끈 쥔 주먹과 험상궂은 인상을 보면 잡귀들을 물리치기 위해서 조각한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무너져 내린 탑신주위로 개망초꽃이 피어났다.
궂이 둘러볼 생각이라면 자전거를 타고 접근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다.
유적지에서 남쪽을 보았을때 벌판 끝자락에 보이는 작은 산이 낭산이다. 사진에서 보이는 낭산 왼쪽 모퉁이를 돌아서면 황복사터가 있는데 그 곳에서 아름다운 탑을 구경할 수 있다.
도로에서 모전석탑지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논둑을 10여미터 정도 걸어야 하므로 특히 조심하기 바란다. 잘못하면 미끄러져 논바닥에 나가떨어지는 수가 생길지도 모른다.
경주! 알고보면 재미있는 곳이다. 숨은 유적지들이 여기저기 즐비한 곳이므로......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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