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라고는 해도 내가 사는 경주에는 그리 많은 비가 오지 않았다. 중부지방에는 연일 호우주의보가 내리고 물난리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지만 여긴 그렇지 않았다. 내가 보기에 올해 장마는 건들장마 같았다. 그래도 장마랍시고 하늘이 우중충했던 날이 제법 되긴 되었다.
모처럼 아침 하늘 한구석이 푸르게 개인다싶어서 밖으로 나왔더니 현관에 장수잠자리 한마리가 목을 꺾고 늘어져 있었다. 가만히 살펴보니 죽은 것 같다. 손으로 잡아도 반응이 없었다. 곤충계의 왕은 사마귀와 잠자리 정도가 아닐까 싶은데 그 용맹한 녀석이 어쩌다가 이렇게 맥없이 생명을 다했는지 모를 일이다.
덩치로 보아서 아직 완전히 다 자란 녀석은 아닌 것 같았다. 탈피해서 우화한 후에 잠자리몸이 더 자라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하여튼 녀석은 다른 장수잠자리에 비해서 조금 작은 것 같았다. 이 녀석은 워낙 몸이 빨라서 빗자루로 잡는 것도 힘이 들었다. 어렸을때는 포충망 구경하기조차 하늘의 별따기였으므로 시골아이들은 길다란 마당빗자루를 휘둘러 잠자리를 잡았는데 이 녀석을 잡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목이 꺾인것 같다. 조심성없이 날뛰다가 유리창에 부딪혀 죽은 것일까? 만약 그랬다면 아이고 어른이고 할것없이 경망스럽게 촐삭대는 것은 항상 문제거리를 만들어 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우리 나라 몇몇 정치인들의 가벼운 입놀림과 경박한 언행은 더 큰 문제고......
모처럼의 푸른 하늘에 먹구름이 끼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허무하게 죽기 위해 물속에서 몇년간 버틴 것은 아니었으리라. 잠자리 유충인 수채는 물속에서도 제법 무서운 녀석이다. 들은 풍월에 의하면 보통 잠자리 유충은 물속에서 1년 정도를 산다는데 장수잠자리 유충은 몇년씩 버텨낸단다.
녀석은 인간세상의 용어로 말하자면 일찍 요절한 편이다. 아이구, 불쌍하기도 해라. 하기야 곤충의 세계든 짐승의 세계든 야생의 세계는 강한 놈이 약한 녀석을 인정사정없이 먹어치우는 약육강식의 험난한 세계이니 내가 베풀어주는 작은 동정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마는 그래도 마음이 아팠다.
녀석이 못다 날아오른 하늘이 이 아침따라 유난히 높게 느껴졌다.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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