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위를 잘 살펴보면 요즘 자라나는 신세대들이나 30대 정도 이하로는 쌀밥알기를 우습게 여기는 사람들이 제법 많습니다. 사람살이라는게 처음부터 당연히 풍부한 물질속에서 출발하는 것으로 인식하여 먹거리를 귀하게 여길줄 모른다는 것은 교만중에서도 가장 큰 교만이라고 봅니다.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안먹고 살 수 있는 인간이 있었던가요?
전세계에서 재배되는 쌀은 크게 두가지로 나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나 일본사람들이 주로 먹는 쌀은 기름기가 자르르 흐르고 찰기가 있어서 밥을 해두면 조금 끈적거리는 듯한 느낌이 납니다. 이런 쌀을 자포니카라고 합니다. 동남아시아 사람들이 주로 먹는 찰기없는 푸석거리는 듯한 느낌을 주는 쌀은 인디카라고 합니다.
바로 위에 보이는 볶음밥은 말레이지아의 말래카에서 사먹은 것인데요 한눈에 보아도 끈기가 없어서 입으로만 불어도 날아갈 듯한 모습임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인디카 종류의 쌀로 지은 밥을 가지고 만든 것이지요. 농촌진흥청의 공식 블로그에 가보니 자포니카와 인디카의 차이점에 관해 써놓은 전문연구가의 글이 있더군요. 잠시 소개를 하겠습니다. 이런 글이 부담스러운 분은 건너뛰어도 됩니다.
그런 학문적인 이야기를 시작하기전에 우선 쉬운 이야기를 먼저 해보기로 하겠습니다. 바로 위에 올려둔 사진속에 등장하는 나무를 보면 무엇이 생각나는지요? 사람마다 느낌이 다 다르겠습니다만 먹을 것이 너무 없었던 시대를 살았던 우리 조상들은 이 나무를 보고 쌀을 연상했습니다. 그러길래 이름을 이팝나무라고 불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꽃이 만발하면 멀리서 볼때 하얀 쌀밥처럼 보였던 모양입니다.
제가 어렸을때만해도 쌀밥이라는 말보다는 이밥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밥이라는 말의 어원을 이씨(李氏)가 먹는 밥에서 찾는 사람들이있습니다. 조선왕조를 건립한 사람이 이성계라는 사람임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요? 이성계의 본관은 전주이씨입니다. 조선시대에 왕족이라고 하면 소수를 제외하고는 먹는 것으로 고통받는 사람은 드물었기에 하얀 쌀밥을 이씨들이 먹는 밥이라고 해서 이밥이라고 불렀다는 속설이 있을 정도입니다.
당연히 다른 주장도 있습니다. 일년 24절기 가운데 여름기운이 들어선다는 날이 입하(立夏)입니다. 보통 양력으로 따지자면 5월 6일경쯤이 되는데 이 나무의 꽃이 입하 부근에 핀다고 해서 입하목이라는 말이 생겼다는 주장말입니다. 입하목에서 이팝나무라는 말이 생겼다는 것이죠.
저 위에서 꺼냈던 이야기를 다시 이어나가보겠습니다. 글의 출처는 아래 주소와 같고 일부만 인용하겠습니다. 글 속의 사진은 제가 임의로 삽입한 것임을 밝혀둡니다.
http://blog.daum.net/ricebreeding/4885431
인디카와 자포니카의 다른 점은?
농촌진흥청 작물과학원 호남농업연구소 김보경
인디카와 자포니카라는 Oryza sativa를 세분한 것으로 식물분류학상으로 Oryza sativa의 아종이다. 1928년 일본인 加藤(가토, 우리말로는 가등-깜쌤 덧붙임)박사가 벼를 이 두 가지 그룹으로 나누었다. 당시 벼 품종을 연구하고 있던 加藤박사는 종자의 형태와 엽색 등 형태적으로 다른 점과 화학물질에 대한 반응상태 즉 생태적인 성질의 다른 점 등으로부터 벼가 크게 두 그룹으로 나누어진다는 것에 착안하였다.
加藤박사는 이 두 그룹은 유전적으로 원연관계인 것으로 판단하여 그 당시에는 이를 각가 ‘인도형’과 ‘일본형’으로 명명하였다. 그 후에 현재와 같이 ‘인디카’와 자포니카‘로 부르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인디카의 쌀모양은 가늘고 길며 자포니카는 단원형이다. 인디카와 자포니카에는 이외에 어떤 다른 점이 있는가를 보면 다음과 같다.
인디카는 자포니카에 비하여 쌀의 길이가 길고 잎색이 옅으며 종자의 탈립이 심하고 초장이 길고 추위에 약하다. 그러나 품종개량이 진전된 현재에는 예외도 상당히 많다. 예컨대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재배되고 있는 벼에도 자포니카 타입이지만 쌀 모양이 긴 것도 있다.
인디카는 지포니카에 비하여 추위에 약하기 때문에 인도, 태국, 베트남, 중국 화남 등 열대아시아를 중심으로 재배되고 있다. 한편 자포니카는 한국, 일본, 중국 화중․화북, 미국서부 캘리포니아주, 호주, 이집트, 이탈리아 등 온대지역에서 재배되고 있다.
윗글의 출처 : http://blog.daum.net/ricebreeding/4885431
글이 조금 딱딱하게 흘러버리고 말았는데 하고 싶은 말은 이것입니다. 우리 조상들은 이팝나무를 보고 쌀밥을 연상했었다는 것이죠. 제가 어릴때만 해도 보리고개라는 말이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아무리 농사를 열심히 지어도 보통 농가(農家)에서는 1월이나 2월이 되면 쌀이 바닥나고 맙니다. 보리가 생산되는 5월까지는 어떤 일이 있어도 굶어죽지 않고 벼텨내야만 했는데 그 힘든 기간을 보리고개(=춘궁기)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살아남기 위해서 풀뿌리도 캐먹고 나무 껍질도 벗겨먹어야 했습니다. 나도 어릴적에는 소나무껍질을 벗겨 먹고 쑥을 뜯어먹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로 알았습니다. 봄이면 산에 올라가서 진달래꽃도 여사로 뜯어먹었더랬습니다.
보리고개라는 눈물어린 말을 요즘 세대들이 어찌 알 수 있겠으며 어찌 그 힘들고 처절했던 고통의 순간들을 이해할 수 있을까요? 꽃나무를 보고 힘들었던 시절을 먼저 떠올리는 세대가 있는가하면 단순히 아름답다는 모습으로만 받아들이는 세대가 있다는 것이 참으로 아이러니칼합니다.
위에서 장황하게 인디카와 자포니카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녹색혁명이 이루어지게되자 드디어 한많은 보리고개 이야기를 끝낼 수 있었습니다. 전설적인 통일벼가 본격적으로 재배되면서 쌀문제가 해결되었던 것입니다.
통일벼의 생산량이 식량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을 정도로 많았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자포니카든 인디카든 쌀이라고 생기기만 했으면 좋았던 시절엔 찰기가 떨어지는 통일벼도 하늘이 내려준 선물로 알았습니다.
이제는 벼품종도 상당히 다양해져서 찰기가 있으면서도 생산량이 많은 품종들이 속속 선보이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쌀이 남아돌아간다는 것은 쌀생산량이 늘어서 그렇다기보다는 쌀 소비량이 줄어들어서 생긴 일종의 착시현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쌀말고도 다른 종류의 먹거리를 많이 먹기때문에 생긴 일이라고 보는 것이 옳지 싶습니다.
위의 사진들은 경주 동남산밑에 자리잡은 통일전 건물 구역안에서 찍은 것들입니다. 이팝나무 꽃이 워낙 아름다웠기에 카메라에 담아본 것이죠.
<기와집에 살면서 이밥을 먹고 비단 옷을 입도록 하겠다>라고 큰소리를 쳤지만 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죽은 북한의 김일성은 이런 나무를 보면 무슨 생각을 했을지 궁금하기만 합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굶주림을 해결하는 것만큼 절박한 문제가 또 있을까요? 북녘의 우리 동포들이 하얀 쌀밥을 배불리 마음대로 먹을 수 있는 멋진 날이 하루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11년전인 서기 2000년에 중국 만주 심양에서 우연히 만났던 바싹마른 탈북 청년이 저에게 붙여왔던 말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도와 주시라요, 제발 좀 도와주시라요. 중국돈도 좋고 남조선 돈도 좋으니 좀 도와주시라요 "
이팝나무 꽃이 떨어진 것을 가만히 살펴보면 마치 조금 길쭉하게 생긴 쌀알이 바닥에 가득한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여러분들 눈에는 이팝나무 꽃이 쌀알처럼 보이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저게 모두 다 진짜 쌀이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 나무는 언제쯤 만들어질지 모르겠습니다.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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