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UM 국어사전에서는 큰애기란 처녀를 일컫는 방언이라고 한다. 울산큰애기란 사전적인 의미로 울산처녀라는 이야기가 된다. 울산 아가씨가 뭐 그리 대단하길래 노랫말에 나올 정도가 되었을까 싶어 인터넷으로 여러곳을 돌아다니며 검색을 해보았더니 그럴듯한 기사가 하나 눈에 들어왔다.
울산신문에 난 기사인데 제법 그럴듯했다. 보릿고개넘기가 그리도 힘들던 1960년대, 70년대에도 울산의 반구동 아가씨들은 품질좋은 반구동 배추와 산수박과 참외같은 과일덕분에 살림이 풍족해서 영양상태가 좋았기에 다른 지방 아가씨들보다 인물이 월등했다고 한다. 그래서 울산 큰애기라는 말이 생겼다는 것이다. 기사의 내용이 궁금한 분들은 아래 주소를 클릭해보기 바란다.
http://www.ulsanpress.net/news/articleView.html?idxno=105058
1970년대에 활동했던 가수가운데 고려대학교 법과대학을 나왔다고 해서 학사가수로 유명했던 김상희라는 분이 있었다. 1943년생이니까 이제는 일흔이 다되어가는 할머니가 되셨을터인데 그분이 불러 널리 알려진 노래로 <울산 큰애기>라는 곡이 있다. 그녀는 신장이 164cm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는데 당시로봐서는 키도 엄청 크고 많이 배운 분이었으니 인기가 대단했다.
이 노래비는 김상희씨의 <울산큰애기>의 노랫말을 새겨둔 것이다. 노래가사속에는 당시 사회상이 녹아들어 있다. 공업화가 한창 불을 붙이던 시기였으니 시골의 처녀총각들이 도시로 도시로 몰려들었다. 노랫말 속에 등장하는 총각 삼돌이는 좋아하는 아가씨를 동네에 남겨두고 서울로 갔던 모양이다.
노랫말이 세겨진 돌이 서있는 곳은 울산 온산지구 밑의 대송포구다. 1970년대와 80년대의 온산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중화학공업지대이면서 동시에 오염의 대명사로 알려졌던 곳이다. 지금은 많이좋아졌다고는 하나 아직도 그 여파는 남아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경상도 민요중에 울산아가씨라는 노래가 있다. 그 노랫말도 나는 좋아한다. 이젠 대중가요도 민요도 다 좋아할 나이가 되었나보다. 울산아가씨라는 노래는 1930년대에 만들어진 '신민요'라는 주장도 있는데 확인해볼 필요가 있겠다. 노들강변같은 노래는 확실히 신민요가 틀림없다. 중국 되놈들이 '아리랑'까지 자기들 문화유산이라고 우기는 기막힌 시대를 사는 우리들이기에 노래말 하나라도 우습게 여기면 안되기 때문이다.
어리
버리
'우리나라 안 여기저기 돌아다니기 > 나라안 여기저기 in Korea'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문국 - 가수 이야기가 아니다. 나라 이야기다 (0) | 2011.06.30 |
---|---|
너무 예쁘고 자존심 강한 것도 문제다 - 목화 그리고 미녀 (0) | 2011.06.25 |
'욕망의 불꽃'을 사르다 - 울산 간절곶에서 (0) | 2011.06.18 |
하얀 모래밭이 그림처럼 아름다운 내성천 (0) | 2011.05.12 |
운문사 2 (0) | 2011.04.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