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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생 - 그리 허무한게 아니었어요. 살만했어요
경주, 야생화, 맛/경주 돌아보기 Gyeong Ju 1 (完)

왜 팔우정이라고 하는지도 모르고 살았다

by 깜쌤 2011. 6. 1.

서울 청진동 해장국, 평양냉면, 춘천 닭갈비, 안동찜닭, 전주비빔밥, 통영김밥(=충무김밥), 대구 따로국밥하는 식으로 지역과 도시를 대표하는 음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그 지역사람들에는 큰 자랑거리가 될 수 있습니다. 음식이라고 하는것을 그냥 한끼 떼우면 된다는 식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있는가하면 음식 그 자체로 인생살이의 척도를 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우리가 잘아는대로 프랑스 사람의 음식사랑은 정말 대단합니다. 음식을 예술로까지 승화시킨 사람들이 그들 아니겠습니까? 최근 들어서 각강을 받기 시작하는 일본 음식들은 또 어떻고요? 비주얼이 판치는 시대의 흐름에 편승하여 그들은 음식을 시각화화는데 성공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제가 만나보았던 외국인들 중에 일본음식을 비하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경주에 대해 평소 아쉽게 생각하는것 가운데 하나는 경주를 대표할만한 전통음식이나 현대적인 음식이 너무 드물다는 것입니다. 전통음식의 복원을 위해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을 하는 분들도 계십니다만 문헌적인 자료들이 너무 부족해서 복원하기에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그런 상황이니 경주를 대표하는 음식은 쌈밥이나 해장국 정도로 그치는게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사실 해장국 같은 것은 전국 어디에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것이라고 볼때 그나마 내세울 수 있는 것은 쌈밥 정도가 아닐까 합니다. 쌈밥에 대해서는 언제 따로 기회를 봐서 소개를 해드리겠습니다. 사실 오늘 이야기의 핵심은 그게 아니고 팔우정이라는 곳입니다. 팔우정하고 음식하고 무슨 관계가 있는냐고 물어올 분도 많이 계시라 생각합니다만 다 이유가 있습니다.  

 

 

팔우정은 한자로 八友亭이라고 씁니다. 경주사람들에게는 팔우정이라는 정자보다 팔우정 로타리와 해장국거리로 더 잘 알려져 있을 정도입니다. 팔우정하면 원래의 유적을 떠올리기보다는 해장국 거리로 더 잘 알려져 있다는 것이죠. 그러니 음식과 쉽게 연관지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사실 경주에 사는 저도 팔우정의 유래에 대해 잘 몰라서 인터넷으로 자료를 검색해보았습니다. 아시다시피 블로그에 올라와 있는 글들은 신빙성과 신뢰성, 그리고 객관성의 문제때문에 인용하지 않는 것이 이런 잡글이나마 쓰는 사람들의 도리일  것입니다. 하지만 어떨 땐 정말 귀중한 자료를 구할때도 있습니다.   

 

 

여러 곳을 뒤졌습니다만 팔우정에 대해 수집할 수 있는 정보는 제한되어 있었습니다. 

 

                                      http://blog.daum.net/purmiri/16157764

 

위 주소의 블로그에서 제법 귀중한 정보를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그대로 인용해보겠습니다. 문장의 간격은 제가 조금 줄였습니다만 원문은 훼손하지 않았습니다. 푸른 색부분으로 나타난 글이 인용해온 부분입니다.

 

팔우정은 경주최씨 배반파 선대의 유허지로 조선시대 선조 때 무과에 급제해 임진왜란에 창의유공하고 서생첨사와 람포헌감에 오른 육의당 최선생(휘 계종)의 옛터로 슬하에 아들 셋을 양육하면서 팔우정 로터리 남서쪽에 정자를 짓고 주위에 괴목 여덟 그루를 심었는데 큰 아들인 성훈랑 동노가 팔형제 국준, 국필, 국흠, 국장, 국빈, 국첨, 국성, 국시을 두었다. 

 

이 여덟 그루가 무성함에 따라 팔형제 모두 이 정자에서 예의와 학업을 닦으니 효우학행(孝友學行)이 당세에 저명하였으며, 이에 정자 이름도 팔우정(八友亭)이라 부르게 되었다. 조선 광해군 6년(1614년)에 창건되고 130년 후인 영조 27년(1751년)에 후손인 모암공(휘 사진)이 중수하여 비석을 세웠다.

 

다시 140년 후인 대한제국 광무 3년(1899년)에 후손 정수가 개수하였으나 오랜 풍마로 정자는 무너지고, 팔우정 비만 남게 되다가 1960년 경주시 도시계획에 따라 팔우정 로터리가 축조되면서 비만 로터리의 한 가운데 세워져 있었다.

 

이후 1993년 11월 22일 로터리(도로)를 철거하면서 비를 옮기게 되었으며, 2009년 12월 문중의 중지를 모아 팔우정 삼거리 북서쪽에 팔우정이라는 정자를 신축하고 공원을 조성한데 이어 2010년 1월 21일 舊 팔우정비를 개축하고 3월 1일 제막식을 갖고 영구 보존하게 되었다.

 

 

팔우정의 유래를 알게 된 것이 고마웠습니다. 한때 이 부근에는 '대번'이라는 이름을 가진 나이트클럽이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젊었던 날에 한두번 가본 기억이 납니다. 그 나이트 클럽이 영업을 하지 않게 된 이후로 건물 잔해가 흉물스럽게 남아있었는데 최근들어 깔끔하게 손을 보았습니다. 경주시민의 입장에서 보아도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릅니다.

 

 

작년 그러니까 2010년 3월에 깔끔하게 정리를 완료한 모양입니다. 최씨 문중에서 세운 정자가 있었다는 사실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새로 세운 비석의 뒷면을 자세히 읽어봤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사진만 찍고 돌아서서 와버렸기에 생긴 현상입니다.

 

 

글의 앞부분에서 이야기를 한것처럼 팔우정이라는 정자가 있는 건너편에는 해장국집들이 몰려 있습니다.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경주를 대표하는 해장국집들이 한줄로 나란하게 줄을 서 있는 것이죠. 경주 팔우정부근의 해장국집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가지는 견해가 다르더군요.

 

 

 

    큰지도보기를 누르시면 더 자세하게 볼 수 있습니다.

 

 

정자도 제법 단정하게 만들어서 다시 세웠습니다.

 

 

예전에 세웠던 기념비석도 다시 단장한 좌대위에 반듯하게 새로 올려세웠습니다.

 

 

제가 갔던 날은 일요일이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방문했던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가 사방에 날려 인상을 찌푸리게 만들었습니다.

 

 

작은 공원이지만 이렇게 단장해두니 한결 보기가 좋습니다.

 

 

문제는 사용하는 시민들의 질서수준이겠지요. 확실히 지방자치제를 실시하고 난 뒤에는 여기저기 달라지는 모습이 보입니다.

 

 

팔우전 로터리 인근의 해장국집에도 사람들이 많이 몰려들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시민들과 관광객 모두로부터 사랑받는 구역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