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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깜쌤의 세상사는 이야기 : '난 젊어봤다' - 자유 배낭여행, 초등교육, 휘게 hygge, 믿음, 그리고 Cogito, Facio ergo sum
  • 인생 - 그리 허무한게 아니었어요. 살만했어요
사람살이/세상사는 이야기 1 My Way (完)

따지고 보면 남의 덕에 살았다

by 깜쌤 2011. 5. 24.

 

남이 잘되면 배가 아픈게 보통사람들의 기본 심사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게 도를 넘어서 지나치게 되면 놀부처럼 오장육부를 가진 것만으로도 부족해서 심술보 하나를 더 차고 나온 인간이 되어 온갖 개망나니짓을 다하고 다니게 될 것입니다.

 

나는 사촌이 없이 살아왔습니다. 한분 계셨던 삼촌은 얼굴을 본적이 없어서 기억조차 나지 않습니다만 그 분은 625전쟁때 입은 부상으로 인해 결혼도 못하고 돌아가신 것으로 전해 들었습니다. 인생을 살아보니 사촌이라는게 참으로 가까운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만 우리네 심사가 얼마나 고약했으면 "사촌이 논을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속담이 생겼을까요?

 

 

사촌이 그렇게 가까운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표현이야말로 인간들의 기본 마음가짐을 너무나도 기가 막히게 묘사한 속담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남이 잘되는 것이 그렇게 배가 아픈 것일까요?

 

부모의 입장에서는 자식이 잘되는 것이 조금도 배가 아프지 않습니다. 오히려 못될까봐 노심초사하게 됩니다. 남이 잘되어도 배가 아프지 않는 또 하나의 경우가 있습니다. 바로 선생의 입장에서 볼때자기가 가르친 제자가 잘되는 경우입니다.  

 

 

나는 실력도 없고 모든 면에서 항상 부족하기만 했던 삼류선생이었습니다. 그러니 이 나이가 되도록 빛도 못보고 작은 중소도시에서 이렇게 살아갑니다. 제가 일류선생이 되지도 못했으면서 가르친 아이들은 크게 잘되기를 바랬으니 제 심보도 보통 고약한 정도가 아니지 싶습니다. 

 

안강에는 4년동안 근무를 했었습니다. 4년 동안 기차를 타고 출퇴근을 했으니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아름다운 시간을 보낸 셈이 되었습니다. 신설학교였던 곳에서 근무를 마치고 안강으로 전근을 갈때쯤엔 과로로 인해 거의 초죽음이 된 상태였습니다. 큰 학교에서 연구부장을 하며 6학년 담임하기를 7년 연속으로 했으니 온몸의 진이 거의 다빠진 상태가 되었던 것이지요.

 

   

다행히 윗어른들이 제 처지를 알고 조금 신경을 써주셔서 제 평생 처음으로 1년동안 3학년 아이들을 가르쳤습니다. 그렇게 쉽게 아이들을 가르쳐 본것은 제 평생에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습니다. 그때 컴퓨터로 영화에 관한 글을 썼는데 200자 원고지로 거의 2만장 분량이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몸과 마음을 새롭게 추스리며 즐거운 마음으로 아이들을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흐른 것이죠.

 

바로 어제의 일입니다. 키가 엄청 큰 청년과 날씬하고도 아름다운 아가씨가 점심시간에 교실로 찾아왔습니다. 처음에는 누군지를 몰라 도저히 짐작을 못했는데 누구누구라고 소개를 하는 것을 보고 단번에 옛생각이 떠올랐습니다.

 

6학년 담임을 하면서 2년에 걸쳐 남매를 가르친 적이 있었는데 그 남매가 찾아온 것이었습니다. 남동생은 군대에 가 있다가 휴가를 나왔고 누나는 대한민국 최고의 직장이라는 삼성LED에 취직을 해서 연수중에 잠시 시간을 내어 어리바리하기 그지없는 깜쌤을 뵈러 왔다는 것이었습니다.

 

  

 

마침 점심시간이어서 들어오라고 할 수도 없는 상황이 되어 문간에서만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오랫만에 만났으니 그 반가움은 말할 것도 없고 무엇보다 남매가 잘 자라나서 반듯하게 변한 모습을 보니 그 부모님이 생각났습니다. 남매의 어머니께서는 교양이 넘치면서도 아주 겸손하신 분이었습니다. 훌륭한 어머니가 아름다운 자식을 길러낸 것이죠.

 

 

갑자기 안강에서의 일이 생각나기 시작했습니다. 그 학교에 있을때 KBS에 기습촬영을 당해 전파를 탄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함께 촬영을 당했던 아이들이 2년전 여름에 모두들 한꺼번에 모여서 제가 섬기는 교회로 찾아왔더군요. 그 아이들에게도 평생 못잊을 추억이 되었던 모양입니다.

 

 

그냥 와서 얼굴만 봐도 충분할 터인데 남매는 기어이 큰 선물을 안겨주고 갔습니다. 땡볕에 제가 마구잡이로 다니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챙이 넓은 멋진 모자와 등산용 양말을 가지고 온 것입니다. 선물이 중요한게 아니라 그 마음이 중요한 것 아니겠습니까?

 

 

가만히 되짚어보면 나는 남의 덕에 사는 것 같습니다. 사실 5월 한달은 과로현상과 가슴앓이 때문에 너무 힘들었습니다. 교회일에다가 직장일, 거기다가 잡다한 일이 겹치니 몸이 견딜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견디다 못해 병원을 찾아갔더니 제가 아는 의사선생님께서는 특별히 신경을 써서 상담을 해주시기도 했고 어떤 한의사 선생님께서는 제가 그렇게 아프다는 사실을 알고 귀한 한약을 다려서 보내주시기도 했습니다. 또 어떤 제자는 귀한 약재를 보내주기도 했습니다. 그런 분들 덕분에 이정도나마 회복이 된 것 같습니다. 

 

 

지난 스승의 날에는 수십년전에 졸업시켜 보낸 제자들이 난을 보내오기도 했고 몇년전에 졸업을 시켜서 내어보낸 아이들의 학부모님들은 화분을 보내주시기도 했습니다. 스승의 날에 아무 것도 받지 않겠다고 해서 꽃한송이조차 드리지 못했으니 이제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보내드린다는 것이었습니다. 아이들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했던 어리석은 삼류선생을 기억해서 베풀어준 정성을 제가 어찌 잊을수가 있겠습니까?

 

사람살이는 베풀어준것 만큼 받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더 겸손한 자세로 더 많이 베풀면서 남을 섬기며 살아야하는데 그러지를 못하고 아직도 이기적이기만 한 제 자신이 부끄러워지기만 합니다. 제자가 선물해준 귀한 모자를 보며 제 자신을 다시 한번 더 채찍질해봅니다.

 

 

 

 

어리

버리